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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고성 산불’ 피해 소송 최대 변수는 '강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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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들 집단 손배소 준비 / 고압선 ‘불티’ 화재원인 규명 불구 / 강풍 인한 천재지변 판단 가능성 / 한전측 최초 발화 과실 인정돼도 / 피해지역과 인과관계 규명 난관 / 강원경찰청, 한전 지사 2곳 압색 / 사고 전신주 설치·점검 등 수사

세계일보

강원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에서 산불 피해를 본 한 주민이 불에 타 무너진 집 주변에 서 있다. 연합뉴스


강원도 대형 산불 피해자들은 피해를 온전히 보상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 않다. 이달 초 강원도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 원인이 전신주 특고압 전선이 떨어지며 생긴 ‘아크(전기적 방전으로 인한 불꽃 현상) 불티’라고 경찰이 발표하면서 한국전력을 상대로 집단소송이 제기될지 관심이 쏠린다. 법조계에서는 전신주 관리 주체인 한전 측 과실이 인정돼도 이재민들이 화재 피해를 100% 보상받긴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 원인을 수사 중인 강원경찰청은 23일 한국전력 속초지사와 강릉지사 등 2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산불 원인과 관련한 사고 전신주의 설치와 점검, 보수 내역 등 서류 일체를 압수해 과실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한전 속초지사는 발화지점으로 지목되는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주유소 인근 전신주를 관리하고, 강릉지사는 24시간 지능화 시스템 등 배전센터의 설치·운영 책임을 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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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5일 산불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강원도 속초시 장천마을을 방문해 피해 주민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지역민들은 한전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추진 중이다. 고성 산불 피해자들은 ‘고성 한전발화 산불피해 이재민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이번 산불을 ‘인재’(人災)로 규정해 한전과 정부를 상대로 투쟁, 소송을 준비 중이다. 2017년 11월 포항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자 지역민들은 정부와 관련 지열발전소 등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한전을 상대로 집단소송이 제기될 경우 최초 발화된 불이 강풍을 타고 실제 피해지역까지 번진 과정에서 한전 측 책임을 규명하는 일이 관건이라고 내다본다. 즉 한전 과실로 전신주에서 발화가 이뤄졌다고 해도 이에 따른 피해보상은 아크 불티로 인해 직접 연소된 전신주 주변만 해당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달 초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속초까지 번지면서, 지난 18일 기준 산림 700㏊와 주택 547채를 태웠고 1139명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출신 김한규 변호사는 “최초 발화가 한전 과실로 인정돼도 이재민들이 피해를 100% 인정받기 힘들다”며 “화재로 인해 피해가 커진 것은 강풍 때문인데 이것은 천재지변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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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경상남도 사천시 한 공장에 발생한 화재가 대표적이다. 당시 한전에서 관리하는 계량기에서 불꽃이 튀어 화재가 발생해 공장 건물과 내부 사업체를 연소시켰다. 공장 주인과 사업체 대표가 각각 한전을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했다. 2년이 넘는 재판 동안 화재전문가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결국 재판부는 한전 과실로 인한 화재는 인정하면서도 책임에는 제한을 뒀고, 사업체 대표의 경우 청구액의 약 10%인 3356만원가량만 한전이 지급하도록 선고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는 “최초 발화로 인한 불이 다른 곳으로 번져 피해자 재산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은 원고인 피해자가 입증해야 해 쉽지 않다”고 전했다. 다만 전신주 관리에 한전 측 중과실이 인정될 경우 집단소송은 이재민들에게 약간이나마 유리하게 진행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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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집단소송이 제기될 경우, 최초 발화시점인 전신주가 설치된 부근과 실제 피해지역 사이의 발화물질 존재 등 인과관계 성립 여부가 중요한 법적 쟁점이 될 전망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최초 발화시점과 피해 지역 사이에 발화물질은 없었는지, 초기 대응은 어땠는지 등을 따져 피해 확산과 한전의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것도 피해주민들이 재판에서 입증해야 해 재판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염유섭 기자, 박연직 선임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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