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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걸 "형님은 아버님의 분신, 맏이가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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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4월 22일 (월요일)

■ 대담 : 김홍걸 민화협 의장

김홍걸 “형님은 아버님의 분신, 맏이가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이 지난 20일, 향년 71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1971년,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고문을 받았고, 5.18 당시에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얻으면서 말년에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 또 영광보다는 고통이 컸던 대통령 아들의 삶이었습니다. 故 김홍일 전 의원의 유족인 민화협 김홍걸 의장 연결해보겠습니다. 의장님?

◆ 김홍걸 민화협 의장(이하 김홍걸)> 네, 안녕하십니까. 김홍걸입니다.

◇ 이동형> 우선 위로 말씀 드리고요.

◆ 김홍걸> 네, 감사합니다.

◇ 이동형> 경황이 없으실 텐데,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께서 지병으로 오랜 생활 투병 생활을 하신 거죠?

◆ 김홍걸> 네, 제가 알기로 증세가 처음 나타난 것이 20년이 훨씬 넘거든요. 지난 10년 동안은 거의 자리에 누워서 거동을 못했었죠.

◇ 이동형> 지난 토요일 오후에 자택에서 쓰러지셨다고 하는데, 최근 들어 건강이 조금 더 안 좋아지셨던 겁니까?

◆ 김홍걸> 그랬다고 할 수는 없고요. 그동안에 계속 누워만 있었기 때문에 쓰러졌다는 표현은 맞지가 않고, 계속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는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서서히 심장이 약해지다가 어느 순간에 멈춘 것이 아닌가, 이렇게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언론 보도를 보면, 지금 이희호 여사님도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던데, 어떻습니까?

◆ 김홍걸> 네, 지금 안정은 되셨는데, 의사들도 앞으로 상태가 어떻게 될지 장담은 못하는 상황입니다.

◇ 이동형> 혹시 어머님께서 김홍일 전 의원 사망한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 김홍걸> 네,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충격 받으실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 이동형> 아직 알려드리지 않았고요. 알겠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과거에 자서전 등을 통해서 나 때문에 자식이 고통을 당하는 게 보기 힘들다, 이런 이야기를 하셨었는데, 선친께서 그런 말씀을 평소에도 주변에 하셨습니까?

◆ 김홍걸> 네, 저희 큰형님이 아무래도 장남이고, 또 아버지께서 한참 박해를 받으시던 그 시기에 정치적인 동지로서 아버지 심부름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저희 형님도 같이 고난을 당했죠.

◇ 이동형> 지금 고인이 쓰신 회고록을 보면, 고문이 너무 심해서 스스로 책상에 올라가서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찧어서 자살을 시도했다, 이런 이야기도 나오고요. 김대중 아들이라는 이유로 '빨갱이 자식'이라고 불리면서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고 했는데, 형님께 직접 그런 참상은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 김홍걸> 80년도 신군부가 5.18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그때 아버지와 아버지 비서하셨던 분들, 저희 작은아버지, 이런 분들이 한꺼번에 연행이 됐었거든요. 내란음모사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저희 형님한테도 모진 고문을 가하면서 용공 조작, 그런 부분을 시인하라고 하는 바람에 형님이 견디다 못해서 자살 시도를 그렇게 했었고, 과거에 모진 고문을 받으셨던 김근태 의장께서도 나중에 파킨슨으로 돌아가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저희 형님 경우도 그것이 아마 원인이 된 것 같다, 이렇게 추측을 하고 있는 거죠.

◇ 이동형> 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파킨슨병.

◆ 김홍걸> 네.

◇ 이동형> 그런데 당시 신군부는 왜 DJ 아들까지 그렇게 데려다가 모진 고문을 가했을까요? 신군부도 김홍일이라는 사람을 김대중의 정치적 동지다, 이렇게 봤을까요?

◆ 김홍걸> 네, 그러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저희 아버지 심부름을 여러 가지 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 아무래도 저희 형님이 그들이 조작한 시나리오를 인정하면, 사형 선고를 내리기가 쉬워질 것이다, 하는 생각이 있었겠죠.

◇ 이동형> 원래 정치인 거목의 아들들이 정치인으로 빛을 보는 경우가 잘 없는데, 지금 김홍일 전 의원은 이번에 돌아가셨을 때도 봤습니다만, 모든 정치인들이 다들 슬퍼하고, 조문 행렬이 여야를 떠나서 이어지고 있더라고요. 그만큼 대한민국 정치사의 한 획을 그었지 않았나 싶은데요. 김홍일 전 의원은 어떤 분인지 설명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김홍걸> 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젊었을 때부터 정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또 저희 아버님 옆에서 계속 심부름을 하면서 정치적 동지로서 활동을 했고, 또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아버님께서 하시게 됐을 때 각 지역에서 민주연합청년동지회라고 조금 청년 조직을 만들어서 많은 기여를 했었죠. 정계에 발이 넓었고, 또 그 당시에 여야 간의 물밑 대화가 있을 때도 형님이 조용히 나서서 아버님 심부름을 한 적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알려진 것보다는 더 큰 역할을 했는데, 막상 국회의원이 됐을 때는 병이 점점 심해져서 국회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한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 이동형> 계속해서 지금 의장님께서 형님이 아버님 심부름을 많이 했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혹시 정치적으로 아버지하고 논쟁을 한다거나 토론을 한다거나 그런 것은 본 적이 있으십니까?

◆ 김홍걸> 저희 형님은 어떻게 보면 아버님의 분신이라고 할 정도로 아버지와는 생각이 같았기 때문에 이견은 별로 없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이동형> 그렇군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의장님도 학창시절에 안기부의 미행이랄까요? 그런 일을 많이 겪었잖습니까??

◆ 김홍걸> 저야 그 당시에 워낙 어렸기 때문에 저는 크게 불이익을 당한 것이 없지만, 저희 큰형님이나 작은형님은 한창 일해야 할 시기에 중앙정보부, 안기부, 이런 정보기관의 탄압 때문에 연행되기도 하고, 또 취직도 못하고, 젊은 시절에 고통이 많았죠.

◇ 이동형> 그러니까 세 아들 중에 맏이가 가장 크게 고통을 받았다. 고문도 당하고, 연행도 되고, 취업도 못하고. 그러면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세 아들 중 맏이가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다, 이렇게 보면 되겠습니까?

◆ 김홍걸> 네, 그렇죠. 거기다가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까지 얻었으니까요.?

◇ 이동형> 오늘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도 조문을 했던데.

◆ 김홍걸> 어제 오셨습니다.

◇ 이동형> 김대중 대통령 생각도 많이 난다고 하면서 김 전 대통령은 정치보복을 안 했던 분이다, 우리 정치가 서로를 존중하는 정치가 됐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아마 복선에 깔린 내용은 김 전 대통령은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는데, 지금 정권은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의미 같아요. 어떻게 느끼셨어요?

◆ 김홍걸> 글쎄요, 저는 그 부분은 반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정권이 정치보복을 한다는 것은 저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고요. 저희 아버지께서 대통령이 되셨을 때, 물론 되시기 전부터 이미 과거에 정적들이나 탄압했던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용서하셨던 분인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안타까운 점은 피해자 측에서 먼저 손을 내밀고, 용서하겠다고 했을 때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 마음속으로 반성을 하고,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죄악들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면, 우리가 지금까지도 40년 가까이 된 5.18 문제 가지고 논쟁을 벌여야 하고, 5.18 유족들이나 희생자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어야 하는,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는 생각도 들고요. 우리가 항상 일본에다가 과거사 청산을 얘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내부에서도 과거사 청산이 안 된 부분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만 됐어도 우리의 정치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장지는 광주 민족묘역에 임시 안장되는 것으로 들었는데, 왜 임시입니까?

◆ 김홍걸> 5.18 국립묘지 안장 부분에 있어서 심의할 부분이 있어서 임시로 5.18 구 묘역에 안장하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 이동형> 이후에 이장되는 거고요?

◆ 김홍걸> 네, 그것은 나중에 심의를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이동형> 故 김홍일 전 의원이 국민들 마음에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는 생각이 있으십니까?

◆ 김홍걸> 고인이 항상 하셨던 대로 저희 아버지를 도와서 민주화를 위해서 애썼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실 것 같습니다.

◇ 이동형> 우리 국민들이 많이 놀랐던 장면은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 때 김홍일 전 의원이 휠체어 타고 등장하는 모습이었는데, 굉장히 풍채가 선친을 닮아서 좋았었는데, 그때 보니까 상당히 병세가 심해진 것 같아서 놀랐었거든요?

◆ 김홍걸> 네, 그때 이미 몸이 많이 안 좋아진 상태였죠. 그 후로 10년 동안 침대에만 누워서 생활을 했던 것이죠.

◇ 이동형> 그러면 그 전에도 병세가 짙었고, 형님과 그 이후에 많은 대화를 못하셨을 것 같습니다?

◆ 김홍걸> 그 당시에 이미 대화가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 이동형> 알겠습니다. 청취자 한 분께서 "좋은 곳에서 아버님과 만나셨을 겁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홍일 의원 편히 잠드소서." 이런 추모의 글을 남겨주셨네요. 감사하고요. 오늘 어려운 가운데서도 의장님 인터뷰 감사합니다.

◆ 김홍걸> 네, 감사합니다.

◇ 이동형> 지금까지 故 김홍일 전 의원의 유족인 민화협 김홍걸 의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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