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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브렉시트 혼란, 북아일랜드 무장세력 다시 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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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충돌과정서 기자 피살… "체포한 용의자 2명 신IRA 대원"

벨파스트 평화협정 21년만에 깨질 위기… '피의 역사' 재현 우려

1990년대까지 테러가 끊이지 않았던 영국령 북아일랜드에 다시 '피의 역사'가 재현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올 들어 북아일랜드 독립과 아일랜드섬의 통일을 주장하며 영국 정부에 저항하는 반체제주의자들의 활동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이들과 경찰의 무력 충돌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가 총격을 받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반체제주의자들의 폭력이 이어지면서 1998년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 간 '벨파스트 협정'으로 어렵게 얻은 평화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8일(현지 시각) 북아일랜드 제2의 도시 데리에서 반체제주의자들이 경찰과 대치하던 중 일부 시위대가 경찰 쪽을 향해 총을 쏴 여성 프리랜서 기자 라이라 매키(29)가 사망했다. 경찰은 이튿날 19세와 18세 남성 두 명을 매키를 살해한 용의자로 체포해 조사 중이다.

이 반체제주의자들은 21일 부활절을 맞아 계획적으로 경찰을 공격하려고 총기와 폭탄을 대량으로 준비했다. 1916년 부활절 당시 아일랜드인들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이 이에 대한 첩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지난 18일 무기를 쌓아둔 데리 시내 한 주택을 급습했고, 이에 100여 명의 반체제주의자가 차량을 불태우며 경찰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매키가 사망한 것이다.

조선일보

피살된 기자 매키


경찰은 매키를 살해한 두 용의자에 대해 "신(新)IRA 대원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신IRA는 영국 정부를 상대로 무력 투쟁을 했던 IRA(북아일랜드공화국군)를 계승한다고 자처하는 조직이다. IRA는 1972년 폭탄 테러로 9명이 숨진 '피의 금요일' 사태를 일으킨 것을 비롯해 1960년대 후반부터 약 30년간 3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북아일랜드를 불안에 떨게 만든 민간 조직이었다. 유혈 사태가 끊이지 않자 1998년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가 한 발씩 양보해 벨파스트 협정을 맺어 평화를 찾았다. 당시 협정에서 영국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자유로운 통행과 무역을 보장했고,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6개 주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했다. IRA도 2005년 무장 활동 중단 선언과 함께 사실상 해체했다.

그러나 벨파스트 협정에 반대하는 강성 반체제주의자 그룹들이 남아 있었고, 이들이 규합해 2012년 신IRA를 조직했다. 신IRA는 올 들어 활동을 본격화하며 공포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 1월 데리에서 피자 배달 차량을 강탈해 법원 근처에 세워둔 다음 폭탄을 터뜨려 차량을 전소시켰다. 3월에는 런던 히스로공항, 워털루역 등 5곳에 초소형 폭탄을 담은 소포를 보냈다. 두 차례 모두 사상자는 없었지만 긴장감이 고조됐다.

영국 언론들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인한 정치권의 혼란이 신IRA가 활동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체제주의자들은 브렉시트가 되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자유로운 왕래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브렉시트 해결에 매달린 영국 정부가 북아일랜드를 방치하면서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북아일랜드 지역의 빈곤과 높은 실업률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불만을 느낀 청년들이 대거 신IRA에 가담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북아일랜드 경찰은 "새로운 테러리스트들이 무장 조직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했다. 매키를 살해한 용의자들도 10대 후반이다. 일간 가디언은 "신IRA의 사회주의 이념은 생활고를 겪는 청년들에게 큰 유혹이 되고 있다"고 했다.

북아일랜드를 둘러싼 갈등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잉글랜드왕 헨리 8세가 북아일랜드에 신교도들을 대거 이주시키면서 가톨릭계 구교도들과의 다툼이 본격화됐다. 1949년 아일랜드가 영연방에서 완전 독립할 때 전체 32개 주(州) 중에서 신교도가 많은 북아일랜드의 6개 주가 영국에 남는 쪽을 택했다. 이후 북아일랜드 내의 구교도들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며 영국 정부와 대립해왔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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