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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퇴원 고지 의무, 현장선 ‘글쎄’…커뮤니티 케어 활성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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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사건’으로 본 정신질환 관리체계와 법 개정 이후



경향신문

방화 살인 참사가 난 경남 진주시 한 아파트에서 21일 도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안인득씨가 10여년 전 경남 김해 소재 한 공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산재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뒤 사회불만과 피해망상이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안씨의 심리상태를 확인하면서 범행동기 등을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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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있다, 관심 갖지 않았을 뿐

법무부, 치료 판단 땐

의료기관으로 연계 가능한

네트워크 갖추고 있어

경찰 ‘개입의무 없다’ 하지만

질환자 문제 행동 드러나면

센터에 협조 요청할 수 있어


지난 17일 새벽 경남 진주시에서 발생한 방화·흉기난동 사건을 두고 정신질환 관리체계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현병은 그 자체로 범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치료·관리가 끊기고 망상 등 증세가 심해지면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커진다. 이 때문에 이들의 병력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체계가 중요하지만 현실에선 갈 길이 멀다.

특히 이번 진주 사건에서 보듯이 의료기관 퇴원 뒤의 관리뿐 아니라 사법기관의 대응이나 지방자치단체의 관리체계에도 허점이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향후 보호관찰소나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의 여건을 확충하고 관련 부처들의 협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 대응 미숙한 법무부와 경찰

경향신문

이번 사건을 일으킨 안인득씨(42)의 조현병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것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씨는 당시 진주에서 폭력 등 혐의로 구속돼 1개월간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고 ‘편집형 정신분열증’(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으로 풀려났는데 그 뒤 지역사회 보건소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그의 조현병을 관리한 기록은 없다.

안씨의 건강관리가 끊긴 이유를 두고 법무부는 “안씨가 치료감호까지는 받지 않아 그의 조현병을 별도로 관리하진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보호관찰법은 치료감호 여부와 별개로 ‘보호관찰 대상자들에게 부상이나 질병, 그 밖의 사유가 있을 때’ 필요한 구호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현재도 보호관찰 기간 중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이들은 의료기관으로 연계하는 네트워크가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보면 당국의 무관심 속에 치료로 연결되지 않고 보호관찰이 끝나는 사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향후 보호관찰 대상자들의 정신질환 문제에 대한 법무부의 관심이 높아져야 하며, 보호관찰소와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의 협력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두 기관에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범법자들에 대한 선제적인 사례관리를 강화하자는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협력을 하기에는 두 기관 모두 힘겨운 상태에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관계자는 “정신건강복지센터는 현재 인력이 적은 반면 관리하는 대상자가 많고, 또 직원이 대부분 여성들이라 사적인 공간에서 일대일로 범죄자들을 관리하는 데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법무부뿐 아니라 경찰의 대응에도 문제가 많았다. 지난해 9월26부터 지난 13일까지 안씨와 관련한 소란으로 8건이 신고돼 경찰이 출동했으나 정신질환 관리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에 대해 “안씨의 경우 정신질환자인지 알 수 없었으며,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 병력을 조회하거나 알 수 있는 시스템도 없다” “자·타해 우려가 없는 일반적인 정신질환자에 대해 경찰의 법적인 개입 의무가 없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안씨 가족이나 주변인들의 입원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조건이 까다롭다” “응급입원은 병원에서 퇴짜맞기 쉽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은 2017년부터 배포돼 활용된 ‘정신과적 응급상황에서의 현장 대응 안내’ 매뉴얼과 어긋난다. 이 매뉴얼은 경찰이 현장에서 정신과적 평가가 필요한 이를 발견할 경우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협조 요청을 하도록 했으며, 응급입원의 경우 병원들이 꺼리는 것을 감안해 가능한 병원 명단을 알리는 서비스도 소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주변에서 한목소리로 안씨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음에도 경찰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협조 요청을 하거나 응급입원을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뉴얼상 이해하기 힘든 대처”라고 말했다.

경남경찰청은 안씨에 대한 주민의 반복된 신고에도 경찰 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에 진상조사팀을 꾸려 조사하고 있다.

진상조사팀은 경찰 초동조치·대응의 적절성 여부,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권력 개입과 기관별 정보 공유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검토해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 법 개정에도 과제는 여전

안씨는 2015년부터 1년여간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퇴원하자 병력관리는 끊겼다. 안씨가 본인의 퇴원을 지역 보건당국에 알리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가 자신이나 남에게 해를 입힐 위험이 있어도 본인이나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의 정보를 보건소나 정신건강복지센터와 공유할 수 없도록 했다. 경남도 복지보건국 관계자는 “병원에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더라도 개인 인권·정보보호 등으로 함부로 정보를 공유하거나 등록할 수 없게 돼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문제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이달 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향후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개정안은 자·타해 위험성이 있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본인이나 보호자 동의가 없어도 퇴원 사실을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했다. 퇴원 후 치료를 중단한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서 발견된 경우 보호자 동의를 받지 않아도 외래치료 명령을 청구하고, 관련 비용을 정부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여건 확충·부처 협력 나서야

법 고쳐 병력관리 단절 개선

보건소·복지센터 정보 공유

문제는 지자체 통합돌봄체계

복지부, 의료·경찰·소방 등

현장 공동대응 체계 강화

경찰 “정신과적 대응 보완”


하지만 현장에선 “법이 바뀌었어도 지역사회로 나온 정신질환자를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라고 말한다. 일선 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는 “퇴원 환자의 정보를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제도의 지원을 받도록 계속 권유하고 설득하는 것”이라며 “만약 본인이 끝까지 원하지 않으면 실제 치료를 강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를 보면 한 사람의 정신건강 관리를 위해서는 여러 기관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안씨는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얻기 위해 행정기관에 조현병 진단서를 여러 차례 내기도 했으나, 지자체에선 그의 건강관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진주시는 언론 인터뷰에서 “진단서는 수급자격 심사 목적이지 이를 다른 기관에 알릴 권한은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 문제 역시 향후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지자체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해도 기초생활수급 필요성만 따지는 등 단편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지역사회통합돌봄(커뮤니티 케어) 체계가 추진되면서 한 사람의 소득 문제부터 정신건강까지 여러 측면을 보게 된다. 지자체가 정신질환자를 발견했을 때의 대응도 다소 나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정부 “부처 간 협력 강화할 것”

정부는 이번 사건이 일어난 뒤 정신질환 관리체계의 보완점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 18일 의료계와 법조계, 사회복지계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자문 회의를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현장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 확충, 처우 개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경찰·법무부 등 관계부처 간 협력체계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향후 경찰청·법무부 등 관계부처와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이 신고되면 경찰·소방·정신건강복지센터 모두 공동대응하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경찰들이 정신질환에 대해 더 이해하고, 현장 대응 방안을 숙지할 수 있게 하는 교육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국립정신병원 등을 중심으로 경찰에 정기적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교육을 지원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며 “또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간한 ‘정신과적 응급상황 대응 매뉴얼’을 보완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숙지하고 매뉴얼에 맞춰 신속히 조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용하·김정훈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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