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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한국당 대규모 장외투쟁이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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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멈춤), 국민이 심판합니다’에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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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대규모 장외투쟁은 한국 보수세력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더 이상 ‘적폐세력’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자’로 나서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숨죽였던 보수가 재결집하는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광장에 울려퍼진 보수의 분노는 익숙했다. “좌파독재”, “좌파천국”이란 거친 이념적 구호가 난무했다. 현 정부 지지율 하락을 계기로 보수세력이 회생하는 모습이었지만 방향은 과거회귀적이었다.

①보수세력 회생의 신호탄…“전쟁은 시작됐다”

한국당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집회를 열었다. 명분은 청와대의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이었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전방위적인 규탄이었다.

이날 집회는 보수의 회생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1만여명의 당원과 지지자들이 운집했다. 한국당은 자체 추산 2만명이라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한국당의 상징색인 빨간색 모자와 티셔츠 차림이었다. 이들은 집회가 끝난 후 청와대에서 300여m 떨어진 신교동교차로까지 행진했다. 앞서 한국당은 소속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 중앙당 및 시·도당 사무처 당직자, 국회보좌진 등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집회 구호도 공세적이었다. “좌파독재 각성하라”, “경제폭망 책임져라”, “종북굴욕 외교 포기하라”, “‘문재인 물러가라”고 외쳤다. 참석자들은 ‘자유대한수호’, ‘문재인 STOP 국민심판’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탄핵,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 당시의 성찰과 반성의 분위기는 찾을 수 없었다.

이는 최근 한국당의 자신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국정지지도는 하락 추세이다. “정당 지지율에서 골든크로스는 시간 문제”라는 주장도 당내에서 심심찮게 나온다. 보수세력을 총결집하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까지 더해지고 있다. 한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지금보다 의석수가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당 관계자는 “현 정부에 대한 부산·경남 민심이 흉흉하다. 이제 충청과 수도권만 잡으면 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친박근혜계 중진인 홍문종 의원은 지난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전쟁은 시작됐다”고 했다. 황교안 대표는 장외투쟁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말로 하지 않겠다. 이제 행동으로 하겠다”고 남겼다.

② 탄핵의 ‘그늘’…태극기부대와는 어떻게?

탄핵이 남긴 여파는 여전했다. 이날 당 지도부는 태극기를 들지 않았다. 집회가 ‘태극기부대 집회’라는 인상을 받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황교안 대표 체제 이후 당이 우경화되고 있지만 태극기부대와의 ‘화학적 결합’ 여부는 미제로 남아 있다는 방증이었다.

황 대표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의 이름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지난 정권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잡아넣고, 아무리 큰 병에 시달려도 끝끝내 감옥에 가둬놓고 있다”면서 우회적으로만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거론했다.

한국당에 대한 태극기부대의 태도 역시 양가적이었다. 집회에는 앞면에 태극기, 뒷면에 박 전 대통령의 얼굴을 새긴 깃발을 든 시민들도 보였다. 이들은 ‘자한당(자유한국당)은 자폭하라’, ‘탄핵찬성 자한당은 배신자’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며 한국당에 항의했다. 반면 한국당 집회에서 이어 같은 장소에서 연이어 열린 대한애국당 집회에 참석한 한 연설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죄 석방을 주장하는 태극기집회에 수만 명씩 참석한다는 것을 한국당 동지 여러분들이 전국에 전파해달라”며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합쳐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외쳤다.

③ 난무하는 ‘색깔론’…방향은 과거로

이날 집회를 통해 보수는 ‘겨울’이 끝나가는 징조를 알렸지만 ‘봄’이 오는 소리는 새롭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분노와 심판의 목소리는 ‘색깔론’으로 점철됐다.

집회 단상에 오른 황 대표는 “피 끓는 마음으로 광화문에 처음 나왔다”고 운을 뗀 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 살릴 외교는 전혀 하지 않고 김정은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문재인 정권은 한결같이 좌파 독재의 길을 걸었다”며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좌파천국을 만들어왔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거리행진 후 “오늘의 투쟁은 문재인 좌파독재를 막기 위한 대장정의 첫걸음으로, 앞으로 더 멀고 험한 길에서 함께 싸우자”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좌파정권의 무면허 운전이 대한민국을 망가뜨리고 있다“며 ”이 정권은 북한과 적폐청산만 아는 ‘북적북적 정권’이다”고 했다. 당 좌파독재저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김태흠 의원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을 좌파독재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발끈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공당 대표의 발언인지 의심스럽다”면서 “구시대적 색깔론으로 과거에 사로잡힌 모습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전날 “구태의연한 색깔론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매몰돼 정치 공세만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같은 당 강병원 원내대변인은 “한국당의 광화문 장외투쟁은 색깔론을 앞세워 사람을 동원한 구태정치이자 국민을 분열시키는 무책임한 선동이 난무한 난장판이었다”고 주장했다.

강병한 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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