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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내 몸의 미생물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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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천종식의 미생물 오디세이

⑪ 미생물과 공생하기

미생물종의 생태계 균형이 중요

균형 깨지면 여러 질환 발병에 영향

장내 미생물 생태계 건강 수칙은

①식이섬유 많은 음식 챙겨먹기

②내게 맞는 프로바이오틱스 먹기

③항생제는 꼭 필요할 때에만 복용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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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좋아하는 영화인 <러브 어페어>의 포스터에는 실제 부부인 배우 워런 비티와 아네트 베닝의 격렬하면서도 부드러운 키스 장면이 가득하다. 영화의 마지막은 서로 배려하기에 헤어져야만 했던 두 사람이 다시 결합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그렸다. 이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에서 100종에 이르는 수십억마리 세균이 상대방의 입에서 입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천만다행하게도 미생물인 구강 세균은 현미경과 같은 특수한 기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 주변의 미생물이 모두 보인다면 키스를 하기 위해선 정말로 이를 감수할 만한 위대한 사랑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최소한 미생물학자인 필자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우리 주변엔 우리 몸에서 빠져나온 세균 천지다. 내가 온종일 만지작거렸던 스마트폰에는 내 피부에 살던 세균이 잔뜩 이사와 있다. 방금 잡았던 지하철 손잡이에는 이전에 같은 부분을 잡았던 수많은 사람의 피부에서 떨어져 나온 세균이 삼삼오오 모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다. 건강한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세균은 면역에 문제가 있는 노약자가 아니라면 조심할 필요가 없다. 사실 세균에 대한 막연한 혐오 대신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도 다른 모든 생물과 함께 공생하는 지구 생태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유익 대 유해’ 이분법으로 가를 수 없어

자연계는 우리가 미처 모르는 수많은 미생물을 품고 있다. 최소 100만종의 세균이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최근 보고가 정확하다면 미생물의 99%는 우리가 이름도 모르는 미지의 종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새로운 변종이 만들어질 수 있는 진화의 실험실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을 날고 있는 이름 모를 야생새의 장 안에는 100년 전 스페인 독감처럼 수천만의 인류를 살상할 수 있는 가공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새로운 변종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항생제의 발견으로 병원균을 쉽게 전멸시킬 수 있다고 자만했던 우리가 어리석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사용되기 시작한 항생제 페니실린을 비롯해 초기에 개발된 항생제에 대해 절반 이상의 병원균이 내성이 생겼다.

다행인 것은 우리 주변에 해로운 미생물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김치나 요구르트 같은 발효 식품을 만드는 주역이면서 인간의 건강을 증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산균 같은 유익한 미생물도 있다. 그럼 나머지 미생물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실제로 우리 몸에서 발견되는 미생물 대부분은 그동안 우리가 유해균 또는 유익균으로 분류해온 것들이 아니다. 미생물의 세계를 이런 유익균, 유해균의 이분법으로만 보던 관점을 크게 바꾼 것은 2013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의 제프리 고든 교수의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 덕분이다.(2018년 12월15일치 ②장내 미생물과 비만 참조)

생쥐를 이용해서 고든 교수가 증명한 것은 수백종의 세균 수십조마리로 구성된 복잡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 즉 마이크로바이옴이 비만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종의 세균의 역할이 아니라 전체 생태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후에 장 마이크로바이옴의 구성에 따라 다이어트를 했을 때 살이 잘 빠지는 정도가 다르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돼 이를 뒷받침한다. 지금까지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마이크로바이옴의 역할이 일부라도 있다고 밝혀진 질병을 열거하면 종합병원을 방불케 한다. 비만과 당뇨 같은 대사 질환에서 염증성 장 질환, 고혈압, 자폐 스펙트럼 증후군, 파킨슨병, 조현병 같은 뇌질환에 이르기까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질병들이 장내 미생물이라는 하나의 고리로 모두 연결된다.

마침 미국 털리도대 강대욱 교수가 주도한 연구진이 지난 연재(4월6일치 ⑩뇌질환과 장내 미생물)에서 소개했던 장내 미생물과 자폐 장애 스팩트럼 연구에 이은 후속 연구 결과를 최근에 또 발표했다. 2년 전 대변 미생물 이식을 통해 치료를 받은 18명의 자폐 환자의 언어, 사회성 등 자폐증 증상이 치료 뒤에도 꾸준히 좋아져 45% 이상 개선되었다는 상당히 희망적인 결과다. 지금까지 주로 임상 연구에 사용된 대변 미생물 이식 방법은 엄밀하게 보면 통상의 ‘약’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모든 약은 그 성분과 조성, 순도가 국가에 의해서 철저하게 규제된다. 치료에 사용할 대변의 미생물 생태계는 공여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구성물을 일정한 규격으로 만들 수 없는 대변 미생물 군집보다는 내용물을 일정한 조성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형태로 장내 미생물 신약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전세계 여러 기업에 의해서 진행 중이다.

다행인 점은 이렇게 우리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마이크로바이옴을 관리하기 위해 신약이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그동안 다양한 학자들이 발표한 수백편의 논문을 종합해서 필자만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 경영에 대한 안내서를 여기에 공개할까 한다.

식이섬유, 장내 미생물의 좋은 먹이

균형 있는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가꾸기 위해 가장 중요한 물질은 아이러니하게도 최첨단과는 거리가 먼,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안에 있다. 대장의 세균과 우리의 장세포는 바로 서로 인접해 있지 않다. 둘 사이에는 끈적끈적한 유기물로 된 점막이라는 완충지대가 있다. 점막을 만드는 건 사람 쪽인데, 점막은 장내 세균과 우리 장 세포 사이에 꼭 필요한 비무장지대를 만들어준다.

장내 미생물과 점막의 관계를 보기 위해 스탠퍼드대의 저스틴 소넨버그 교수는 생쥐에게 의도적으로 식이섬유를 제거한 무른 음식만을 제공해봤다. 그랬더니 일반 생쥐보다 식이섬유가 없는 사료를 오랜 기간 먹은 쥐의 장의 점막층이 현저히 얇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장 안에서 먹을 것이 없어진 장내 세균들이 바로 이 점막을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완충지대인 점막이 얇아지면 장에 구멍이 생기고 그 틈으로 세균이나 세균이 만드는 독소가 피를 타고 전신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자가면역질환, 간질환 등 다양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태계의 최종 관리자로서 우리에게는 장내 세균의 복지를 책임질 필요가 있다. 나는 충분히 먹는데 장내 세균은 굶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몸에 세 들어 사는 장내 미생물은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음식을 소화할 수 있다. 문제는 위와 소장을 거치면서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건 다 미리 흡수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충분히 먹어도 정작 대장에 있는 미생물은 기아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의 동물 실험에서 사용된 식이섬유는 사람이 소화하지 못한다. 그대로 대장으로 가서 미생물의 먹이가 될 수 있고, 미생물이 굳이 점막을 먹을 필요도 없어진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 먹는 음식의 종류도 바뀐다. 흔히 이야기하는 ‘식생활의 서구화’다. 밀가루나 도정이 많이 된 쌀로 지은 밥, 고기, 패스트푸드 등으로 주로 구성된 식사에 포함된 영양분은 모두 소장에서 사람이 소화를 잘 시킨다. 대신 몸 안 대부분의 세균이 모여 있는 대장은 아사 직전이다. 미생물도 먹을 것이 필요하다. 영양학을 접목한 장내 미생물 연구를 꾸준히 해왔던 소넨버그 교수는 이런 미생물의 먹이가 되는 영양분을 ‘맥’(MAC, microbiota accessible carbohydrate의 약자)으로 명명했다.

맥의 정의는 쉽다. ‘사람은 소화 흡수하지 못하면서 장내 세균은 소화를 시킬 수 있는 물질’이다. 대표적인 맥으로 도정을 하지 않아 껍질이 붙어 있는 다양한 종류의 곡류를 꼽을 수 있다. 채소 중에서는 당근, 양파, 아보카도 등에 맥이 많이 들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모유에는 분유에 없는 맥이 상당량 들어 있다고 한다. 모유 수유가 좋은 이유 중 하나가 아이의 장내 미생물을 위한 맥이다.

프로바이오틱스도 내게 맞는 걸 찾아야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바꿀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살아 있는 세균인 프로바이오틱스를 먹는 것이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주로 발효 식품에서 유산을 만들기 때문에 유산균으로 부르는 세균 종류로, 성인의 대장에 반드시 꼭 있어야 하는 세균은 아니지만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 좋은 역할을 한다. 시중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프로바이오틱스는 그 종류가 100종을 훌쩍 넘는다.

한겨레

가격과 먹는 방법 등이 천차만별인 프로바이오틱스 제품. 어떤 것이 좋은 것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좋은 프로바이오틱스가 갖추어야 하는 능력은 대장에 머물러 있는 동안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뒤흔들어서 좋은 생태계로 바꾸어주는 것이다. 수백종의 세균이 이미 자리잡은 장내 생태계에 숫자로 보면 미미한 프로바이오틱스 미생물이 잘 적응하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생태계에 변화를 주는 것을 직접 미생물 유전자를 검사해서 측정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좀 더 간단히 자신의 마이크로바이옴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

장을 항상 관리하려고 노력하는 필자도 가끔은 변비, 설사, 복통, 거북함 등 장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가 있다. 이 경우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복용하기도 하는데 여러 제품 중에서 포함된 미생물의 학명과 균주 이름이 명시된 것을 주로 선택한다. 명시된 이름으로 검색을 하면 때로는 이 유산균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도 있는데, 자신의 장에 살아 있는 생명체를 넣는 데 이 정도의 수고를 마다할 필요는 없다.

일단 복용을 시작하면 보통 2~4주를 섭취하면서 매일 마이크로바이옴의 변화를 잘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진 대변의 성상을 관찰해서 메모한다. 이때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대변의 상태를 스스로 측정해볼 수 있는 바로 브리스틀 대변 상태 분류(Bristol Stool Scale)다.(오른쪽 그림 참조)

유형 1이나 7에 가까운 사람은 유형 4에 가깝도록 자신에게 맞는 미생물 먹이가 되는 맥이나 프로바이오틱스를 찾아보는 실험을 해보기 바란다. 매번 이 유형을 기록하면 스스로 느끼는 장의 불편한 정도와 함께 복용한 제품의 효과를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호전되지 않는다면, 다른 유산균 종으로 구성된 제품으로 바꾸고 다시 실험을 계속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자신의 마이크로바이옴에 잘 맞는 프로바이오틱스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마이크로바이옴도 계속 변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제품이 영원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

맥이나 프로바이오틱스와 달리 먹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바로 장내 세균을 무차별 살상할 수 있는 항생제다. 항생제는 의사의 판단으로 꼭 필요할 때만 최소한으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항생제 남용은 본인에게도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파괴를 부르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항생제 내성 문제를 크게 키우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로바이옴에 새로운 좋은 세균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도록 하자. 고무바닥으로 된 놀이터에서만 노는 아이들에게도 흙 속의 좋은 미생물과 접촉할 기회도 꼭 주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수십조마리의 장내 미생물을 책임지는 집주인이자 경영자다. 그동안 연재한 미생물 오디세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뱃속 친구들 모두에게 유익한 상생 관계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이번 회로 ‘천종식의 미생물 오디세이’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벤처기업 ‘천랩’ 대표. 미생물 분류학을 전공하고 25년 동안 흙, 물, 남극, 인간과 동물의 몸 등 여러 환경에 적응해 사는 미생물을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대용량의 미생물 유전자 데이터를 컴퓨터로 분석하는 한국인의 미생물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우리 건강과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끼치는 ‘보이지 않는 지배자’, 미생물의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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