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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용의 한반도평화워치] 중국의 ‘밀어붙이기 외교’엔 원칙대로 대응하는 게 상책

글자크기

강대국, 압박에 밀린 약소국엔

무리한 요구 들이대는 게 현실

처음엔 고통스럽더라도 견디며

원칙·논리로 국력 차이 극복해야

대중 외교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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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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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중국 외교를 책임진 첸치천(錢其琛) 전 외교부장이 쓴 『외교 십기』(外交十記)에는 낯뜨거운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1991년 11월 방한했을 때 한국 장관이 밤 11시가 다 될 무렵 호텔 방에 찾아와 한·중 수교를 위한 비밀 연락 채널을 만들고 싶다며 순금 열쇠를 선물로 내놓았다는 것이다. 첸치천은 “정부 간 접촉이 이미 시작된 만큼 별도로 비밀 채널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거절하고, 순금 열쇠는 중국 외교부에 등록해서 보존 중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당시 적지 않은 한국 인사들이 수교에 일조하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고 했다. 손발이 안 맞는 쪽이 손해를 보기 마련이니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때 중국 경제 규모가 지금의 3% 남짓할 때였다. 세계 2위 경제 규모에, 국방비를 러시아의 3배, 일본의 5배 지출하는 지금의 중국에 같은 식으로 한다면 결과가 어떻겠는가.

오늘날 중국은 공세적인 군사외교전략으로 동북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을 뒤흔들고 있다. 2013년 11월 23일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포한 것도 이 같은 흐름의 일환이다. 중국에 유감을 표시했지만, 어차피 한번 발표된 조치가 철회될 것은 아니었다. 우리 정부는 차제에 오랜 숙제를 해결하기로 하고 외교적 정지 작업을 거쳐 12월 8일 이어도 상공을 포함한 새로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선포했다. 급박한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한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 중국 군용기들의 무단 진입에서 보듯 선포는 첫걸음일 뿐이다.

방공식별구역(ADIZ)은 1950년대에 시작된 비교적 새로운 개념으로, 아직 국제조약이 없다. 자력으로 지켜야 한다. 다른 나라의 ADIZ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 통보를 하는 게 상식이지만 중국은 거부하고 있다. 중국은 다른 나라에는 사전 통보를 요구하면서 우리의 같은 요구는 거부하고 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유엔의 숭고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논리가 통하는 경우는 오히려 예외다. 더욱이 무단 진입 양태가 점점 더 위협적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한·중 ADIZ가 중첩되는 공역에 연 50회 미만 들어오는 수준이었으나 진입 회수가 2017년 70여회, 2018년 140여회로 급증했다. 진입 구역도 2016년 동해에 진출한 후 올 2월에는 독도와 울릉도 중간까지 들어오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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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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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행동은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이다. 중국은 서해에서 우리 해군이 동경 124도 이서(以西)로는 진출하지 말라고 막고 있는데 자신은 아예 동해까지 아우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 범위에 한반도 전체가 들어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남중국해에선 미·중 군용기들이 수십m까지 근접하여 위협 비행을 하는데, 비슷한 일이 한반도 주변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미국이 동북아에서 후퇴한다면 중국은 비핵 국가인 한·일의 하늘과 바다를 제집처럼 드나들지 모른다. 우리가 북한에만 올인하거나 과거 일변도 대일 외교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는 이유다.

방공식별구역 문제는 우리가 중국 문제에 직면한 도전의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점점 몸집을 불리고 거칠어져 가는 중국을 우리는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먼저, 한·중 관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경제면에서는 한·중 관계와 북·중 관계의 체급이 다르지만, 정치적으로는 당 대 당 관계까지 맺고 있는 북·중 관계가 가깝다. 김정은 방중 때 시진핑이 두 번 이상 식사 자리를 마련한 것과 문재인 대통령 방중 시의 ‘혼밥 논란’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나 관계 발전 추세를 생각하면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우리 정부도 한·중 관계가 실제 이상으로 가깝게 비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대중 외교의 약점이 될 뿐이다.

둘째, 국익 관점에서 지킬 것은 처음부터 확실히 지켜야 한다. 강대국은 좀 입장을 바꾸어도 괜찮지만 우리는 국력의 차이를 원칙과 논리의 일관성으로 극복해야 한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기갑부대를 대만에 보내 야전훈련을 하고 있다. 중국의 힘이 강해지면서 강한 압박이 가해졌지만, 싱가포르는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다. 몇 년 전 만난 싱가포르 고위 관리는 약소국이 한번 강대국의 요구에 밀리면 강대국은 더욱 무리한 요구를 들이댈 것이므로 고통스럽더라도 처음에 버티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강대국에 기죽지 않기로 유명한 베트남은 말할 것도 없고 친중 노선을 펴온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까지도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 티 투 섬을 건드리면 군사적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우리의 경우 중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미 간 틈새를 벌리려고 하는데 처음부터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건 단견이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도 참여한 우리가 아닌가. 처음 말이 나온 2017년에 바로 환영 입장을 표명했다면 오히려 부담이 적었을 것이다.

셋째, 중국이 구사하는 전진압박전술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다툼이 생기면 중국은 말도 안 되는 일방적인 요구를 내놓곤 한다. 지난 2001년 마늘분쟁 때 우리가 수입하는 중국산 마늘의 무려 57배인 휴대폰·폴리에틸렌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렇게 밀고 들어와서 상대가 그들의 요구를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면 예상외의 성과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유리하게 협상 판을 짤 수 있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중국의 무리한 1차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해야 대등한 싸움이 된다.

넷째, 우리의 대중 정책은 대미, 대일, 대러시아 정책을 포함한 큰 전략적 그림 속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의 선택지를 최대로 넓히는데 목표를 두고 집단사고와 협업을 할 수 있는 정부 내 메커니즘이 잘 갖춰져야 한다. 최근 외교부는 중국과 일본을 한 부서에서 다루던 시스템을 바꿔 사실상 중국국을 만들기로 했다. 대중정책과 대일정책 간 정책적 부조화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적 단합이다. 힘이 부치는 상대와 힘겨루기를 할 때 우리 내부가 단합하지 못하면 결과는 보나 마나다. 더욱이 중국은 상대를 분열시키는 통일전선의 대가가 아닌가. 앞서 첸치천 전 외교부장이 말한 ‘한국 현직 장관’을 포함해서 우리가 모두 국익을 앞에 두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중국의 지정학적 도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앞으로 수십 년간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다. 힘들어도 국익을 지키겠다는 단호함과 지정학적 격랑 속에서 우리의 길을 찾는 치밀한 전략적 사고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노림수는
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ADIZ)은 영공 방위를 위해 영공 외곽 공해 상공에 설정하는 공중 구역이다. 항공기의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순식간에 영공에 진입해서 기습 공격을 하면 막기 어렵다는 현실적 고려에서 출발했다. 1950년 미국이 처음 선포한 이래 한국·일본·중국·대만·인도·파키스탄·영국 등 20여 개국이 선포·운영하고 있다.

방공식별구역에 대한 국제조약이 없어 법적 근거는 단단하지 않다. 방공식별구역은 국제 공역이므로 외국 항공기의 진입이 불법은 아니지만, 안보를 위해 우방국끼리는 사전 통보를 하는게 보통이다. 문제는 영토 분쟁 지역 상공에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거나 저강도 무력시위 목적으로 다른 나라의 방공식별구역에 아무런 통보 없이 진입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상대방의 기를 꺾으려는 행동이다.

중국은 2013년 선포한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에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포함했다. 법적으로는 영유권 주장에 아무 도움이 안 되지만 일본으로선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중국 군용기의 일본 방공식별구역 진입은 연 500회 이상이며 2016년에는 851번을 기록했다. 또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향후 남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염두에 둔 사전 포석으로 해석되어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태용 전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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