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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단독]모든 건 2015년 1월19일 플라자호텔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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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세월호 특조위 무력화’ 모의 전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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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7시간 조사 악렬한 술수”라며 특조위 해체부터 논의

조윤선 지시로 문건 작성…특조위 지원TF가 대응TF로 변질

조대환 부위원장에 “왜 추천했겠나” 질책하며 ‘역할’ 요구

김영석 당시 차관도 이석태 위원장 경계…파견 직원 철수시켜


2015년 1월19일 서울 중구 소공동 플라자호텔(더 플라자). 조윤선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새누리당 추천 몫인 조대환 부위원장과 고영주·석동현·차기환·황전원 위원,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이 호텔 회의실에 모였다. 이날 오간 이야기는 해수부 공무원이 작성한 ‘세월호 특조위 설립준비 추진경위 및 대응방안’ 문건에 고스란히 담겼다.

“위원회 설립준비 원점 재검토, 1·21 전원회의 시 문제제기.”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소재를 가리려고 만든 세월호특별법 시행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때 이들은 ‘특조위 해체’부터 논의했다.

“위원회 설립 관련 조직 및 예산 등 적극 대응”이나 “당·정·청 간 협의 채널 적극 가동”이라는 문건 제목 아래 담긴 내용도 해체를 위한 것이었다.

그해 말 한 해수부 공무원은 ‘특별조사가 필요한 세월호 특조위’라는 제목의 문건을 썼다. “위원회는 이제껏 활동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다. 국민의 혈세를 축내는 위원회의 행태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위원회가 ‘대통령의 7시간’을 조사하기 위해 악렬한 술수를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문건은 특조위를 매도하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표현들을 포함했다. 새누리당 추천위원들의 성명과 새누리당의 논평을 위한 자료를 만들라는 윗선 지시를 받아 작성했다. 이 문건은 새누리당 홈페이지에 논평으로 실제 올라갔다. 정부가 여당 논평을 대신 써준 것이다.

서울동부지검은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정무수석과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해수부 김영석 전 장관과 윤학배 전 차관을 지난해 2~3월 기소했다. 서울동부지법은 1년 넘게 이 사건을 심리 중이다. 34번의 재판이 열렸다. 12명의 증인이 법정 증언했다. 재판 과정은 보도되지 않았고, 사건은 한동안 잊혔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경향신문은 이 사건을 다시 짚어보기로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세월호 태스크포스(TF)가 법정을 직접 찾아 기록한 자료를 확보했다. 재판에선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는데도 정치적 득실을 따져 진실 가리기에 급급했던 청와대와 여당의 고위 관계자, 정부 고위 공무원들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세월호 특조위 방해 사건’은 어느 면에선 국정농단, 사법농단과도 닮았다.

2015년 1월15일 당시 조대환 특조위 부위원장과 연영진 해수부 해양정책실장이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 사무실을 찾아갔다. 연 실장 등은 특조위 인력과 예산을 짜야 하는데 기획재정부와 협의가 잘되지 않아 여당 협조를 구하려 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김 부대표가 “특조위가 야당 판”이라고 했다. 다음날엔 국회 원내현안대책회의에서 “세월호 특조위의 규모가 지나치다. 세금도둑”이라고 발언했다.

■ 1월19일에 대체 무슨 일이

나흘 뒤인 1월19일 플라자호텔에서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남규 당시 특조위 설립준비 팀장(해수부 파견)은 법정에서 “조윤선 수석이 회의를 주도했다”고 증언했다. 조 수석이 특조위의 방만한 예산과 조직을 비판하면서 “처음부터 너무 (규모가) 큰 것 아니냐, 60여명으로 충분하다, 비용을 최소화하라”고 말했다고 했다. 조 수석이 그 자리에서 특조위 사무처장을 겸한 조 부위원장에게 “왜 사무처장을 여당 추천위원으로 했겠습니까, 주도적으로 해주세요”라고 질책성 발언을 했다는 내용도 검찰 신문 과정에서 나왔다. 강용석 당시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의 업무수첩 1월19일자에 ‘인원과 예산은 제로베이스에서’ 등 내용이 기재된 것도 재판에서 확인됐다.

문제의 ‘특조위 활동 관련 정부 대응전략’ 문건은 조 전 수석의 1월19일 지시에 따라 작성됐다는 게 해수부 공무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유관기관 협력체계 구축(BH, 국회, 정부, 설립준비단 등 관련기관 간 상시협력 네트워크 구축)” “위원회 외곽에 별도 TF를 구성해 여당 추천위원들이 재조사 요구 논리를 반박할 수 있는 대응 논리를 체계적으로 제시” “언론대응 전략(BH 주도의 언론대응 TF)” 등이 담겼다.

김 전 팀장은 ‘조직 슬림화’라는 단어가 문건에 들어간 데 대해 “1월19일 회의 때 조 수석이 처음 쓴 표현이다. 이후로 계속 그 표현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당초 125명이었던 특조위 인원은 이때 60명으로 바뀌었다.

재판에서 조 전 수석 측 변호인은 “3년 전 일을 어떻게 자세히 기억하느냐”고 따져물었다. 김 전 팀장은 이렇게 답했다. “약간 충격적인 거였거든요. 청와대 수석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제 공직생활 경험과 다르기 때문에 기억이 났습니다.” 연 전 실장도 말했다. “1월19일부터 세월호 문제가 매우 중요한 이슈로 돌아간 것은 사실입니다. (특조위) 지원TF가 그때부터 ‘대응TF’로 바뀌었습니다.”

1월19일 회의 결과를 보고받은 김영석 당시 차관은 바로 조대환 부위원장에게 전화했다고 한다. 김 차관이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 대신 조 부위원장 위주로 가야 합니다”라고 말했고, 조 부위원장이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와 정부는 민변 회장 등을 역임한 이석태 위원장(유가족 추천)에 대한 경계심이 컸다.

두 사람은 특조위 파견 해수부 공무원의 철수와 설립준비 지연에도 합의했다. 파견 공무원들은 1월23일 특조위에 출근하지 않았다.

세월호특별법은 특조위의 독립성을 보장하도록 규정했지만 당시 플라자호텔 회의는 이를 깡그리 무시했다. 청와대가 기조를 만들고 해수부는 손발처럼 움직였다. 새누리당과 새누리당 추천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1월26일 당시 해수부 공무원들은 새누리당 추천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해수부는 간담회 결과를 정리한 문건을 청와대에 보냈고, 청와대는 ‘위원들 제시 의견 수용’ ‘수용 곤란’ 표시를 해 돌려보냈다. 새누리당 추천위원들의 행동은 청와대가 ‘OK 사인’을 해야 굴러갔다.

한 해수부 직원은 “시행령안을 만들 때 ‘조사’ 하나도 정무수석실 컨펌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2월12일 특조위가 직제·예산안에 대해 해수부안이 아니라 위원장안을 채택하자 새누리당 추천위원들은 일제히 퇴장했다. 검찰 수사 결과 위원들은 ‘퇴장 순서’까지 미리 정해놨던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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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23일 당시 이석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등이 정부의 예산 책정 미루기 문제와 특위 주간업무보고의 청와대, 해양수산부, 방배경찰서, 새누리당 유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특조위의 문제 제기는 2015년 1월19일 당시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모인 ‘소공동 플라자호텔’ 회동 두 달 뒤에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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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조위 동향문건 국정원·경찰에도 전달”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대한 특조위의 조사는 정권 입장에서 반드시 막아야 했다. 2015년 10월30일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당시 이병기 실장은 행적 조사가 안건으로 채택되지 못하도록 해수부가 적극 대응하라고 질책했다. 당시 최상목 청와대 금융경제비서관 등이 이 내용을 윤학배 해수부 차관에게 전달했다. 11월13일 수석비서관회의 문건에는 ‘사고 당일 VIP 행적 (안건) 상정은 해수부가 책임지고 차단할 것(경제수석)’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시기 해수부 직원 전모씨가 작성한 ‘특조위 대응방안’ 문건에는 박 전 대통령의 행적 조사에 대한 특조위 의결을 대비하는 내용이 담겼다. 새누리당 추천위원들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필요할 경우 전원 사퇴 의사를 표명하는 방안 등이 쓰여 있다. 이철조 전 해수부 인양추진단장은 이 문건에 대해 법정에서 “윤학배 차관이 A4용지에 메모를 적어 ‘이렇게 한번 만들어보라’고 해 아래에 전달하고 만들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문건에는 “미수습자 발견 가능성이 낮고, 진상규명과 연관성이 큰 구역(조타실, 엔진룸 등)은 특조위 조사 인원·기간을 최대한 허용하는 방안 검토”라는 대목이 나온다. 윤두한 전 인양추진단 기획총괄과장은 검찰 조사에서 “청와대로서는 특조위에서 미수습자를 발견하면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 조타실과 엔진룸에 대한 조사를 허용하면서 청와대가 좋아할 만한 워딩인 ‘미수습자 발견 가능성이 적고’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이라고 진술했다.

특조위 동향 정리 문건은 국가정보원과 국회, 경찰에도 상시적으로 전달됐다. 언론도 활용했다. 해수부 공무원은 조선일보 기자에게 e메일로 ‘특조위 운영 및 인사 규칙안의 문제점’이라는 문건을 보냈다.

새누리당 추천위원들은 정부 견제와 독립성 견지 등 원칙을 지키지 못한 채 청와대 방침을 먼저 요구한 정황도 나타났다. 청와대·해수부·특조위 파견 공무원이 두루 참여한 채팅방에는 “여당 추천위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여당 측으로부터 방침을 달라고 합니다. 결정되면 알려주십시오”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검사는 재판에서 “여당 추천위원들로 하여금 정부·여당의 입장을 반영하도록 지시를 받거나 간섭을 받는 것으로 세월호특별법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해당 채팅을 올렸던 임현택 전 특조위 과장(해수부 파견 공무원)은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고 했다.

법정에 선 그 누구도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다고 한 사람은 없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일부 국정농단 사건에서 무죄가 나오기도 한 ‘직권남용죄’다. 방해를 주도한 이들에게 과연 법적 책임을 지울 수 있을까. 아직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이혜리·김원진·유설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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