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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우리는 모두 태아였다" 2명의 소수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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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백인성 (변호사) 기자] [the L] 합헌 의견…"여성 자기결정권, 태아 생명 보호라는 공익보다 크다고 볼 수 없어"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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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해온 낙태죄가 66년 만에 위헌 결정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이를 결정하기까지 헌법재판소 내부에선 치열한 소수의견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11일 현행 낙태죄 관련 조항(낙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와 낙태 시술을 한 의사 등을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에 대해 7대 2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률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효력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헌재가 정한 시일까지 법률을 개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그 효력이 사라진다.

이날 주심을 맡았던 조용호 헌법재판관과 이종석 재판관은 소수의견을 내 낙태죄가 합헌이라는 의견을 냈다. 두 재판관은 "지금 우리가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한 위헌, 합헌의 논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우리 모두 모체로부터 낙태당하지 않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태아였다"고 강조했다.

두 재판관은 낙태 관련 조항이 헌법상의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측면에서 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날 조용호, 이종석 재판관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태아와 출생한 사람은 생명의 일련의 연속적인 발달과정 아래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인간의 존엄성의 정도나 생명 보호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태아와 출생한 사람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출생 전의 생성중인 생명을 헌법상 생명권의 보호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생명권의 보호는 불완전한 것에 그치고 말 것이므로 태아 역시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봤다.

소수의견은 이어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는 단지 태아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인 침해만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태아가 제3자에 의해 인간존엄성의 근원인 생명을 위협받을 때 이를 보호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며 "낙태는 생명에 대한 고의적인 파괴행위이므로,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는 임신한 여성의 태아에 대한 침해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법질서는 태아에게 그 존재 자체만으로 생명권을 보장하는 것이지, 태아 모친의 수용을 통해 비로소 생명권 보장의 근거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다.

아울러 두 재판관은 "우리 헌법상 낙태할 권리는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 헌법제정권력인 국민이 그와 같은 권리를 부여할 의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며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행사는 타인의 자유 또는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며 따라서 태아가 모체의 일부라고 하더라도 임신한 여성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소멸시킬 권리, 즉 태아를 적극적으로 죽일 권리가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소수의견은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인하여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어느 정도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제한의 정도가 자기낙태죄 조항을 통하여 달성하려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에 비하여 결코 크다고 볼 수 없다"며 "비록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 근절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 조항이 존재함으로 인한 위하효과 및 이 조항이 없어질 경우 발생할지도 모를 인명경시풍조 등을 고려하여 보면,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두 재판관은 "추정 낙태시술 건수에 비하여 수사기관의 기소건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 곧바로 낙태죄가 실효성이 없다는 근거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소수의견은 "형벌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거나, 절박한 처지에서 낙태를 원하는 임신한 여성에게 위하효과가 없다거나, 낙태수술 과정에서의 위험성과 여성건강의 침해를 도외시하거나, 낙태에 반대하는 태아의 친부 등의 협박수단으로 사용되거나, 가사·민사 분쟁의 압박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이 있지만 이는 낙태죄 악용을 막기 위한 대책을 통하여 해결할 문제"라며 "악용 사례가 있다고 하여 자기낙태죄 조항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자기낙태죄 조항에 의하여 단 하나의 태아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자기낙태죄 조항의 존재의의는 충분한 것"이라고 다수의견을 반박했다.

나아가 소수의견은 "의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태아가 모태를 떠난 상태에서의 생존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고 태아의 성장 속도 역시 태아별로 다른 현실을 감안한다면, 태아의 성장단계에 따라 혹은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에 따라 혹은 ‘안전한 낙태’가 가능한 시기에 따라 생명 보호의 정도를 달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백인성 (변호사) 기자 isbae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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