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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단원고 前교장 "지금도 아이들이 꿈에… 내 삶은 5년전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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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세월호 5주기' 앞두고 만난 김진명 前교장

조선일보

9일 충남 보령 성주산 인근의 한 가건물 앞에서 김진명 단원고 전 교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김진명(64)씨의 삶은 5년 전 그날 멈췄다. 기억은 너무나 생생해 꿈에도 여러 번 나왔다. 지금도 그날 생각을 하면 식은땀이 난다. 2014년 4월 16일 그는 단원고 교장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그날 오전 수학여행단을 인솔하던 강민규 교감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다급했다. 경찰들이 학교로 들이닥쳤다. "배가 가라앉는다는 학부모들의 신고가 있었다"고 했다. 학교 1층 숙직실 TV를 켰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탄 배였다. 그중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김 전 교장은 곧장 사고 현장으로 내달렸다. 김 전 교장 휴대폰으로 전화 수백 통이 걸려왔다. 학부모, 교육청, 기자들이었다. 김 전 교장은 "요즘도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가 걸려오면 심장이 빨리 뛴다"고 했다.

자식 잃은 학부모들의 분노는 그에게 향했다. 일부 유가족들은 그를 교장 대신 "개××" "미친 ××"라고 불렀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죄송합니다"와 "알겠습니다"뿐이었다.

김 전 교장은 사고 이튿날 후배 교사 10여명과 함께 전남 진도체육관 단상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유가족들에게 사죄했다. 강민규 교감은 "제가 직접 학부모 앞에서 설명하겠다"고 했다. 김 전 교장은 "지금은 때가 아니니 강 교감은 단상에 오르지 말고 체육관 2층에 계시라"고 말렸다. 강 교감은 얼마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고 조사 과정에서 그가 학생들을 마지막까지 대피시키려 한 사실이 밝혀졌다.

숨진 학생 아버지가 식칼을 들고 학교로 찾아온 적도 있었다. "살아 돌아온 교사를 자르지 않으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해고 권한은 없지만 "교장인 제가 자르겠다"고 달래 돌려보냈다. 죽은 학생의 5촌 당숙, 동네 아저씨라고 밝힌 사람도 찾아와 모욕을 줬다. 김 전 교장은 "자식을 잃었다고 생각하면 나도 이성적으로 행동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사고는 김 전 교장의 인생도 완전히 바꿔놨다. 사고 두 달 후인 2014년 6월 경기도교육청이 직위해제 징계를 내렸다. 교육청에서는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징계받기로 했다. 이제는 단원고 교장이 아니었지만 그해 8월까지 유족들이 있는 팽목항을 지켰다. "유가족한테 욕을 먹고 죄인 취급을 당해도 현장을 지키는 것이 마음이 더 편했습니다. 그게 제가 할 도리니까요." 밥도 유가족이 보지 않는 곳에서 먹었다.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에게 "(김 전 교장의) 징계를 철회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전 교장은 2014년 9월 경기 화성시의 한 중학교 교장으로 발령났다. 부임 초반 한 학부모가 학교로 찾아왔다. "왜 하필 단원고 교장이 우리 학교로 왔느냐"고 했다. 2015년 3월 경기도교육청이 감사 결과를 통보했다. "(교육청에) 보고를 20분 늦게 하고, 수학여행 사전 답사 때 교사가 배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갔다"며 그에게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렸다.

정직 기간이 끝나고 다시 돌아온 학교는 증축 공사 중이었다. 공사장을 보면 '또 사고 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온몸이 떨렸다고 한다. 2년간 근무하다 1년간 휴직하고 정년퇴직했다. 퇴임식도 안 했다.

김 전 교장은 아버지 고향인 충남 서천으로 이사했다. 동료나 이웃들과 연락은 끊었다. "세월호 유가족이 나를 보면 불편해할까 봐 경기도를 떠나왔다"고 했다.

김 전 교장은 불교 신자다. "매년 봄이 오면 절에 가서 세상을 떠난 제자와 후배 교사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온다"고 했다. 요즘도 옛 동료나 아이들이 꿈에 나온다. 그럴 때면 충남 보령의 성주산에 가 기도와 참선을 한다고 했다. 그는 "책임의 무게가 그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다"고 했다.

연락을 끊고 살았지만 2016년 겨울쯤 그의 연락처를 안 옛 동료가 전화를 걸어왔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서울 광화문 촛불 집회에 발언자로 나서달라는 제안이었다. "세월호 사고가 박 전 대통령의 잘못이라는 취지로 나서서 얘기해달라"고도 했다. 김 전 교장은 거절했다. 그는 "동료 교사와 제자들이 희생된 사고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고 했다.

김 전 교장은 본지 인터뷰 제안을 여러 번 고사했다.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다 제 책임 아니냐"고도 했다. "제자 250명과 후배 교사 11명이 세상을 떠났지만 제가 드러내 놓고 슬퍼할 수가 없다는 점은 서글펐습니다. 어쨌든 유가족의 원망을 다 받아내고 달래줘야 하는 교장이었으니까요."

[보령=김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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