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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대피 방송 듣고 집 나섰다 사망했는데 산불 피해자가 아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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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고성 산불 당일 강풍에 숨진 박석전씨 사연

1996년 소, 2000년 주택 피해, 2019년 목숨까지 잃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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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대피 방송 듣고 집을 나섰다가 돌아가셨는데 산불 피해자가 아니라뇨. 산불이 나지 않았다면 강풍 속에 왜 집을 나섰겠어요.”

지난 4일 고성·속초 산불 발생 당일 숨진 박석전(70)씨의 유족들이 어머니 박씨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박씨는 당시 강원도 재난안전대책본부가 산불 피해 사망자 2명 중 1명이라고 발표했다가 다음 날 “박씨는 별개의 사건으로 사망했다”며 피해자 집계에서 뺀 인물이다.

박씨의 딸 안아무개(45)씨는 “연일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높은 분들이 지역을 찾아 이재민들을 위로했지만, 이번 산불 탓에 목숨을 잃은 어머니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이건 단순 사고사가 아니다. 불에 타서 돌아가시지 않았을 뿐 어머니는 분명 강풍과 대형 산불의 피해자”라고 흐느꼈다.

9일 유족과 마을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박씨는 지난 4일 저녁 7시17분께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속초 등 인근 마을로 순식간에 번지고 있다는 재난문자를 연이어 받았다. 이어 밤 9시2분께는 ‘인근 마을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으니 대피를 준비하라’는 마을 이장의 안내방송이 온 마을에 퍼졌다.

이후 박씨는 밤 10시30분께 집에서 불과 30m 떨어진 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강풍에 이웃집의 함석지붕과 서까래 등이 날아와 박씨를 덮친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과 주민들은 계속된 산불 재난문자와 안내방송에 불안을 느낀 박씨가 거동이 불편한 친정어머니(94살)와 함께 대피해야 하는지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초 발화 지점인 원암리와 박씨가 살던 삼포리는 10여㎞ 떨어진 이웃 마을이다. 이번 고성·속초 산불은 강풍을 타고 최초 발화 지점에서 8㎞ 정도 떨어진 해안가까지 1시간30분 만에 옮겨붙였다.

안내방송을 한 삼포2리 함형복 이장은 “박씨의 집에선 산이 가려 토성면 쪽 상황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박씨가 대피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좀 더 높은 곳에 있는 마을회관 쪽으로 이동하려다 사고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산불 재난문자와 대피 방송이 나오니 강풍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에 집 밖으로 나왔을 것이다. 얼마나 급했던지 양말도 신지 않은 슬리퍼 차림이었다”며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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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박씨는 고성에서의 연이은 산불로 계속해서 피해를 겪은 것으로 확인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1996년 고성 산불 때는 축사에 불이 붙어 기르던 소 10마리가 떼죽음을 당했고, 2000년 산불 때는 살던 집이 홀랑 타버렸다. 딸 안씨는 “계속된 산불로 피해를 봐서 어머니가 산불에 트라우마가 있었다. 오죽하면 농촌 노인들은 들지 않는 주택 화재보험까지 들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이번 산불 피해 이재민들의 아픔은 모두 함께 나누지만, 박씨의 죽음은 산불 피해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딸 안씨는 “국가 재난인 산불로 돌아가신 것으로 인정된다면,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원도 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산불로 의한 사망자로 인정되면 보상금 1천만원이 지급된다. 하지만 불에 타거나 연기로 인한 피해 등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 산불은 사회재난이고 강풍은 자연재난으로 재해 유형이 다르다. 특히 이번에 강원도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이유가 산불이기 때문에 산불로 인한 피해만 보상이 된다. 안타깝지만 박씨는 산불이 아니라 강풍 탓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돼 산불 피해자 집계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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