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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홍장원 특파원의 굿모닝 하노이] 보잉 737 대량 구매한 베트남 항공사들 에티오피아 등 추락사고 잇따르자 발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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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제2차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로 마무리되면서 주최국이었던 베트남도 씁쓸한 입맛을 다시고 있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하는 ‘하노이 선언’이 도출돼 하노이를 크게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 됐다. 이에 더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야심차게 추진했던 대규모 항공기 계약건이 예상치 못한 변수에 휘말리면서 베트남 정부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있다. 이날 계약한 기종이 최근 추락한 에티오피아 항공 소속 비행기와 같은 기종이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27일 베트남 비엣젯항공과 뱀부에어웨이스는 미국 보잉사와 총 157억달러(약 17조5000억원) 규모 초대형 항공기 계약을 체결했다. 미북정상회담 첫째 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미국 항공기 제조사 보잉이 비엣젯과 뱀부에어웨이스에 판매한 비행기만 총 110대에 달한다. 계약 자체로만 보자면 비행기가 필요한 비엣젯항공과 뱀부에어웨이스가 비행기를 만드는 보잉에 주문 제작을 의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상 이 계약은 미국과의 관계를 진전시키고 싶은 베트남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주는 선물과 다름없었다. 항공기 주문에는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가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한 항공사는 정부 입김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 항공 산업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허가제로 이루어진다. 엄격한 요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사업 자체를 할 수 없다. 특히 항공사를 세우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신흥국에서 항공사에 미치는 정부 영향력은 아주 높다. 베트남 역시 같은 논리에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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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사를 보유한 미국 역시 입장이 완전히 다르지는 않다. 제2차 미북정상회담기간 내내 백악관은 비엣젯항공과 뱀부에어웨이스와 보잉 간 계약건을 부각시키며 이를 트럼프 대통령의 공으로 내세우기에 바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10조원이 넘는 계약을 따내며 선방한 모양새가 됐다. 베트남 입장에서도 하노이 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돈독한 관계를 대내외에 홍보하며 경제성장을 꾀할 수 있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윈윈인데 문제는 계약 이후에 터졌다. 지난 3월 10일 에티오피아항공 302편이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항공기는 지난 10일 승객과 승무원 등 157명을 태우고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떠나 케냐 수도 나이로비로 향했다. 하지만 이륙 6분 만에 추락했고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 기종이 바로 베트남이 미북정상회담 기간에 대량 구매를 한 ‘보잉737 맥스8’이다. 이 기종은 지난해 10월 29일 추락한 라이언에어 610편 기종이기도 하다.

▶추락한 에티오피아항공 302편과 동일 기종

보잉737 맥스8은 보잉이 자랑하는 최신 모델이다. 2017년 상업운항을 시작했다. 중거리 여행에 특화된 보잉737 시리즈의 최신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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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사가 운항 중인 보잉 737 맥스8 기종이 3월13일(현지시간) 휴스턴 하비 공항에 착륙하고 있다. 이날 미국도 전 세계적인 보잉 737 맥스 운항 중단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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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모델이 라이언에어에 인도된 지 2개월 만에, 에티오피아항공에 들어간 지 4개월 만에 추락하는 사고를 낸 것이다. 사고에 이르는 과정도 비슷했다. 비행기는 추락 직전 급상승과 급하강을 반복한 끝에 추락했다.

조종사는 이륙 직후 기술적인 문제로 관제탑에 회항을 요청해 승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추락했다. 둘 다 기상은 좋았고 수천 시간 이상의 비행 경력을 가진 베테랑 파일럿이 조정간을 잡았다. 당연히 기체결함 얘기가 수면위로 올라온 상황이다. 사고 직후 무려 40여 개국에서 ‘보잉737 맥스8’ 운행중단을 선언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은 5월부터 ‘보잉737 맥스8’을 도입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안전이 완벽히 확보되기 전까지 운항하지 않기로 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대한항공은 지난 2015년 이 기종 30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보잉737 맥스8 기종 두 대를 들여와 실전에 투입하고 있던 이스타항공은 3월 13일을 기점으로 해당 기종 운항을 중단했다.

올해 하반기 ‘보잉737 맥스8’ 항공기 4대를 도입해 운항할 예정이던 티웨이항공 역시 비행기 운행을 보류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황이다. ‘보잉737 맥스8 포비아’가 전 세계에 휘몰아치는 모습이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 역시 3월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미 국민과 모든 사람의 안전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며 ‘보잉737 맥스8’ 기종 대해 운항중단을 지시했다. 동종 모델인 737 맥스9 기종의 운항도 이날 함께 중단 조치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본인이 보는 앞에서 베트남에 10조원이 넘는 계약이 체결되는 것을 지켜본지 불과 열흘 만에 계약의 대상이었던 비행기에 문제가 있음을 자인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베트남 입장에서도 곤혹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지금 와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할 수는 없다. 이 항공기를 100대나 산 비엣젯항공은 사실상 이 기종을 회사의 주력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저비용항공사(LCC)인 비엣젯이 이 기종 항공기를 100대나 샀다는 것은 사실상 ‘보잉737 맥스8’을 항공사 주력으로 삼겠다는 얘기다. 중단거리 노선을 주로 운행하는 비엣젯항공 특성상 궁합이 맞는 기종이다. 게다가 베트남 항공사들은 이번 계약을 전후로 미국 직항로를 개척하는 분위기였다. 한마디로 베트남이 미국 비행기를 사주고, 미국은 베트남 항공사에 직항로를 열어주는 ‘윈윈 계약’의 큰 그림이 숨어있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보잉737 맥스8’ 기체결함 논란이 불거지며 베트남 입장에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물론 보잉 측에서 사고 원인을 반영해 최대한의 조치를 한 뒤 항공기를 출고하겠지만 비엣젯항공이 입은 타격은 적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자칫 ‘사고 이력이 있는 기종이 주력 모델인 항공사’라는 이미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홍장원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3호 (2019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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