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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신율의 정치 읽기] 국회 동의 ‘인준 대상자’ 확대 검토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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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좌)·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우)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송부해달라고 국회에 재요청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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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들어 처음으로 대통령이 장관 지명을 철회하는 일이 발생했다.

요새 청문회 혹은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말이 부쩍 많아졌다. 한국행정연구원 등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이후 장관 후보자 33명 중 5명이 낙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낙마한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와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까지 합치면 낙마율은 20%에 달한다. 다른 정부, 예를 들어 이명박정부는 8.85%, 박근혜정부는 9.18%의 낙마율을 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정부 낙마율은 다른 정부 대비 거의 두 배 이상이다.

높은 낙마율이 반드시 부정적인 측면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자동차 회사가 다른 자동차 회사보다 리콜을 많이 할 경우, 이 회사가 생산한 자동차의 문제가 더 많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리콜을 적게 하는 다른 자동차 회사보다 양심적이라는 평가를 들을 수도 있다. 물론 리콜 요소를 줄이는 것이 더 좋겠지만, 하자가 있다면 인정하고 리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최선의 대안이다.

이런 논리로 생각해보면 문재인정부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거나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유도한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병역 면탈·부동산 투기·탈세·위장전입·논문 표절 등 고위 공직 배제 5대 인사 원칙을 내놨다. 2017년 11월에는 기존의 5대 기준에 성(性) 관련 범죄와 음주운전 적발을 포함한 ‘7대 인사검증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낙마 사태’가 발생하자, 청와대는 7대 인사검증 기준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나섰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7대 기준이 국민 눈높이에 안 맞으면 (인사검증 기준 강화를) 검토할 시점이 온 것 아닌가”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과연 지금의 인사 참사가 기준이 미흡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국민 눈높이가 불과 1년 4개월 사이에 갑자기 높아졌다는 논리는 성립하기 힘들다. 또한 국민 눈높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일반상식 수준에서 “이건 아니다” 생각하는 정도다. 상식의 문제를 두고 원칙과 기준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식의 주장을 펴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인사와 관련해 문제가 불거지는 진짜 이유를 찾는 것이 현명하다.

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 권력에 대한 견제를 위해 존재한다. 대통령 권력이 막강하지 않다면 청문회 자체가 필요 없다. 그뿐 아니라 청문회는 국민과의 소통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청와대가 ‘국민 눈높이’를 언급했다는 자체가, 청와대 역시 인사청문회가 국민과의 소통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번 대통령의 지명 철회나 자진 사퇴 유도는 청문회의 본래적 의미를 살린 조치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런 후보자들을 장관 후보로 내정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야당들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 경질을 요구하는 이유다. 개인적으로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사 참사는 청와대가 말하는 기준의 문제 때문에, 혹은 야당 주장처럼 수석들의 안이함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검증 시스템 문제도 아니다. 인사 참사가 현 정권에서만 발생한 것도 아니다. 시스템 문제라면 벌써 고쳤을 것이다.

모든 요인을 종합하면 정권을 초월한 공통적 현상인 인사 참사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개인적 견해지만 그 원인은 제왕적 대통령제와 ‘비뚤어진 우리 의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사 참사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비롯된다는 부분부터 보자.

제왕적 대통령제는 문자 그대로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이 집중되는 제도다. 대통령제는 원래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제도다. 게다가 우리는 미국처럼 연방제를 통해 권력이 분산되는 시스템도 아니다. 당연히 권력의 집중도가 더욱 크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견제는 쉽지 않다. 문재인정부는 ‘촛불’을 말하며 권력 집중에 반대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과거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인사 참사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민정수석이나 인사수석이 제대로 검증을 안 해서 인사 참사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닐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국회의원 보좌관이 파헤칠 수 있을 정도의 의혹을 민정이나 인사수석실이 모르고 지나칠 리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경’을 의심하게 된다. ‘환경’이란 수석들이 권력 정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권력의 정점이 특정인을 낙점한 상태에서 청와대 수석들이 이런 인사를 반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검증 과정에서 의혹이 나왔다 해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 추론이 사실이라면 현 정권의 권력 집중도는 과거 정권과 다를 바 없다.

두 번째로 ‘비뚤어진 우리 의식’을 들 수 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4월 1일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조동호 장관 후보자, 최정호 장관 후보자의 낙마를 두고 “(과거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너도나도 다 같이, 뭐, 이런 사회 분위기가 있어서 위장전입이라든지 부동산 투기라든지 이런 데 대해서 둔감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우리 편’의 과거는 ‘관행’ 혹은 ‘당시 시대적 상황상 그럴 수 있는 일’로 둔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같은 잘못을 해도 상대는 ‘파렴치한’이 되는 반면, 우리 편은 ‘당시 시대 상황의 관행’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사고는 청와대의 언급에서도 발견된다. 윤도한 수석은 4월 1일 개각 대상 장관 후보자의 ‘도덕성 논란’에 대해 “국민 정서에 안 맞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 때문에 다 배제한다면 능력 있는 분을 모시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진 사퇴한 최정호 장관 후보자를 두고 “집이 세 채 있었다. 그리고 그 집 세 채를 소유하게 된, 보유하게 된 경위를 소명했고, 거기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지금 청문회 과정 속에서 몇 가지 드러난 부분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명했을 때의 문제가 아니라 지명한 이후에 벌어진 몇 가지 사안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국민 정서나 눈높이에서 약간 좀 괴리되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라고 했다.

소명만 하면 집 세 채를 보유한 것을 국민이 이해해야 하나. 또 소명이 됐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국민은 왜 이를 투기로 바라보는지에 대해 고민해본 흔적을 찾기 힘들다. 국민과의 눈높이를 주장하려면 이 정도 역지사지는 필수다.

서민을 위한다는 청와대가, 국민과의 눈높이를 맞춘다는 청와대가 이런 말을 대놓고 하니 진짜 할 말이 없다. 이런 사고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인사 검증이 이뤄지기 힘들다. 우리 편이 한 일은 모두 봐줄만한 것, 이해할 만한 것, 당시의 관행이었던 것으로 둔갑하는데 이런 편향적 사고 속에서 무슨 검증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이런 요인 때문에 인사 참사가 반복된다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냥 두고서는 해결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만한 해결책이 있다. 바로 국회 동의를 받아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인준 대상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인준 대상자가 확대되면 청와대가 장관 후보자를 고를 때 지금보다는 더 야당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좀 더 신중을 기하고, 임명 전에 국민 눈높이를 고려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확률이 높다. 더구나 청문회가 대통령의 인사 권한을 견제한다는 차원에서 존재한다고 할 때, 인준 대상 확대는 청문회가 갖는 권력 견제의 의미를 보다 확실히 살릴 수 있다.

역사가 특정 정권을 평가한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현재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3호 (2019.04.10~2019.04.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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