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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포토에세이] 그의 꿈은 이루어졌을까…마틴 루서 킹 사망 5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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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워싱턴 AP=연합뉴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 링컨기념관 앞에서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연설을 마친 뒤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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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1963년 8월 28일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을 위해 워싱턴 DC 링컨기념관 앞에 모인 군중. [미국 국립기록보관소]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조혜진 인턴기자 = 1963년 8월 28일 노예해방 선언 100주년을 맞아 열린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에서 25만명의 군중은 인종차별 철폐를 촉구하며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링컨기념관까지 행진했다.

워싱턴 DC 링컨기념관 앞에 모인 군중을 향해 마틴 루서 킹 목사는 말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나의 네 자녀가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킹 목사는 1968년 4월 4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암살당할 때까지 평생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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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메리[미 앨라배마주] AP=연합뉴스) 1956년 12월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마틴 루서 킹 목사(왼쪽 두 번째)가 연방대법원의 인종 간 버스 분리 위헌 결정 뒤 버스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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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메리[미 앨라배마주] AFP/Getty=연합뉴스) 1956년 12월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흑인이 백인과 함께 버스에 오르고 있다.



1954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교회에 부임한 킹 목사는 이듬해 벌어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주도하며 흑인 인권운동가로 이름을 알렸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은 한 흑인 여성이 버스에서 백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자 흑인들이 흑백분리주의 철폐를 요구하며 보이콧을 벌인 사건이다. 1956년 연방대법원에서 인종 간 버스 분리는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왔다. 흑인들이 법률적 승리를 쟁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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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마하트마 간디 사진 앞 마틴 루서 킹 목사. [미국 스탠퍼드대학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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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밍엄[미 앨라배마주] AP=연합뉴스) 1963년 5월 4일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엄에서 경찰견이 인종차별 반대 집회에 참여한 한 흑인 소년을 공격하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의 영향을 받은 킹 목사는 흑인 인권 운동을 비폭력적 시민 불복종운동으로 전개하고자 했다. 1963년 앨라배마주 버밍엄에서 킹 목사가 주도한 버밍엄 운동은 비폭력운동의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운동은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고용 관행 등에 항의하기 위한 시위였다. 킹 목사는 스스로 경찰에 체포됐고 다른 시위자들은 행진이나 연좌 농성을 하는 등 비폭력운동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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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AFP/Getty=연합뉴스) 1963년 8월 28일 시민들이 워싱턴 DC에서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킹 목사의 연설로 유명한 1963년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은 역사적인 평화행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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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AP=연합뉴스) 1964년 1월 1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마틴 루서 킹 목사(맨 왼쪽)가 린든 존슨 대통령(왼쪽 두 번째)과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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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미 일리노이주] AP=연합뉴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1964년 6월 21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한 경기장에서 민권법 의회 승인에 대해 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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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AP=연합뉴스) 마틴 루서 킹 목사(왼쪽)가 1964년 12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비폭력운동과 흑인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힘쓴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고 있다.



이 행진으로 미국은 드디어 1964년 흑인차별 금지 법률인 민권법을 공포했고 킹 목사는 같은 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킹 목사는 수상 이후에도 베트남전쟁을 비판하며 적극적인 반전 운동을 하는 등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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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미 테네시주] AP=연합뉴스) 1968년 4월 5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열린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장례식장에서 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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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미 조지아주] ANP=연합뉴스) 1968년 4월 9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마틴 루서 킹 목사 장례식에서 운구행렬이 이동하고 있다.



1968년 4월 4일 흑인 환경미화원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테네시주 멤피스를 방문한 킹 목사는 숙소 발코니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머리에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였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킹 목사는 흑인 인권 신장을 위해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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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AFP=연합뉴스) 2019년 1월 21일 '마틴 루서 킹 데이'에 미국 워싱턴 DC 마틴 루서 킹 기념관이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킹 목사의 생일 무렵인 1월 셋째 월요일은 '마틴 루서 킹 데이'로 지정됐다. 이 날은 미국의 공휴일이다. 시민들은 '마틴 루서 킹 데이'가 다가오면 킹 목사를 기리는 각종 행사를 진행하고 그를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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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AFP=연합뉴스) 2018년 4월 4일 뉴욕에서 시민들이 마틴 루서 킹 목사 사망 50주기를 맞아 추모 행진을 하고 있다.



킹 목사가 떠난 지 51년이 되었지만,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인종차별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킹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lee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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