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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워킹맘, 다들 아침 먹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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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3월 큰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후 우리집은 아침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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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엄마 잡학사전-85] 비몽사몽 정신없는 아이를 깨워 텔레비전 만화를 틀어준 후 남편은 아이 옷을 입히고 그사이 나는 바나나와 컵에 담긴 미숫가루를 아이 손에 쥐여준다. '더 자고 싶다'며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는 곧 만화에 빠져 바나나도 먹는 둥 마는 둥한다. 출근 준비와 동시에 아이 유치원 등원 준비를 마친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차를 타고 유치원으로 달린다. 남편이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사이 나는 차 안에서 화장을 한다. 남편이 오면 차를 타고 근처 지하철역에 주차한 후 우리 부부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3월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한 후 우리 집은 아침마다 이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한 달가량 아침에 바나나를 먹어서인지 요즘 들어 아이는 바나나를 반만 먹고 남긴다. '바나나가 질렸나' 속으로 생각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 사과를 깎아주려고 잔뜩 샀는데 아침에 사과 깎아 주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빵보다는 과일이 낫지 싶어 바나나를 고집하고 있는데 아침밥을 먹여야 하나 고민이 깊어진다.

어린이집에 보낼 때는 아침 간식으로 우유나 빵, 죽, 수프, 과일 등이 나와 아침에 아이를 깨워 옷만 입혀 보내면 돼 상대적으로 아이 등원시키기가 쉬웠다. 하지만 유치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그럴 수가 없었다. 오전 간식으로 우유 한 잔만 나오기 때문이다. 아침에 아무것도 안 먹고 등원하면 점심시간까지 배고플 테다. 혼자 밥 먹는 것도 서툰 아이가 점심시간에 양껏 먹는지도 알 수 없다. 궁리 끝에 매주 바나나와 미숫가루를 사서 아침마다 먹였다.

"다들 아침밥 먹고 오나요?" 마침 유치원 상담이 있어 담임선생님께 물었다. 일하는 부모를 둔 가정이라면 대체로 사정이 나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비슷하길 바랐다. "대부분 먹고 오는 것 같아요. 저도 아이 아침밥 챙겨주고 오는 걸요." 선생님의 대답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출근하기도 바쁜데 다들 참 부지런했다. 나만 불량엄마였나, 몹쓸 죄책감이 들었다.

"언니, 언니도 아이 아침밥 챙겨 먹이고 어린이집 보내?" 유치원 선생님의 이야기가 믿을 수 없어 친한 워킹맘에게 물었다. "그럼." 내 예상은 또 한 번 빗나갔다. 그는 늦은 저녁 아이를 재우고 간단히 국을 끓여놓은 후 아침에 국에 밥을 말아 먹인다고 했다. 친정엄마가 주신 반찬도 곁을인다고 했다. 6시 반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7시에 일어나는 아이를 씻기고 밥 먹이고 심지어 책까지 한두 권 읽어주고 출근한다고 했다.

물론 나는 상황이 다르다. 집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저녁 8시가 다 돼 친정집으로 퇴근해 아이 둘을 돌보다가 작은아이를 재우고 나서 집에 오면 저녁 10시, 큰아이를 재우러 침실에 들어갔다 11시께 같이 잠들기 일쑤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기 바빠 바나나라도 먹이는 게 다행일 정도다. 그럼에도 다른 아이들이 아침밥을 먹고 온다고 하니 어쩐지 큰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불량엄마 만나 아침마다 바나나만 먹는 것 같아서다.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도 아침마다 밥을 차려주셨다. 더 자고 싶어서, 눈 뜨자마자 밥 먹기가 싫어서 안 먹겠다고 하면 엄마는 늘 조금만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셨다. 밥맛이 없는 날은 생과일 이것저것 갈아 주스를 만들어주셨다. 결혼하고 나선 엄마밥이 그리웠는데, 요즘은 엄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부터 일어나 식구들 식사를 준비하는 것만큼 수고로운 일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일하는 엄마가 아이들 아침을 잘 먹여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세요." 세 명의 자녀를 둔 한 중소기업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그도 나처럼 매일 아침 죄책감에 하루를 시작하고 정신없이 일하다 깜빡하고 전날 준비물을 못 사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찾아온 우울증에 완벽한 엄마, 완벽한 아내, 완벽한 여성으로서의 짐을 내려놓고 나니 홀가분해졌다는 그의 말이 어쩐지 내게 위로가 됐다. 우리 엄마처럼 아침마다 따뜻한 밥을 해주진 못하더라도 아이 얼굴 볼 때마다 워킹맘이라 미안하다는 생각을 갖는 대신 따뜻한 한마디, 따스한 포옹을 해줘야지, 스스로 다짐해본다.

[권한울 중소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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