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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은경 영장 기각, 법원이 600자로 밝힌 세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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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중앙일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건'으로 수사를 받아 온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6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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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6일 오전 2시 김 전 장관의 영장을 기각하며 최순실 국정농단의 여파와 오랜 관행 등을 포함한 600여자 분량의 기각 사유를 밝혔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김 전 장관 변호인단의 입장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이라 청와대를 겨냥하던 검찰 수사 일정의 차질도 불가피해 보인다.

①최순실 국정농단 여파로 감찰 필요
박 부장판사는 이날 영장을 기각하며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의 핵심 수사 대상이었던 '사표 요구 및 표적감사'에 대해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공공기관에 대한 감찰권이 행사되지 않았던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 정부가)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한 인사수요 파악의 필요성, 감찰 결과 (일부 임원에 대한) 비위 사실이 드러난 점에 비추어 김 전 장관의 혐의에 다툼이 있어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체크리스트'라고 밝힌 청와대와 여권의 설명과 비슷한 부분이다.

영장 기각 사유(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
'사표 요구 및 표적 감사' 관련

일괄사직서 징구 및 표적감사 관련 혐의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하여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되었던 사정, 새로 조직된 정부가 해당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의사를 확인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는 사정, 해당 임원에 대한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이 드러나기도 한 사정에 비추어, 이 부분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어 피고인에게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음.

'채용 비리 혐의' 관련

임원추천위원회 관련 혐의는,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명에 관한 관련법령의 해당 규정과는 달리 그들에 관한 최종 임명권, 제청권을 가진 대통령 또는 관련 부처의 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법령 제정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시간 있었던 것으로 보여, 피의자에게 직권을 남용하여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 구성요건에 대한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음(대법원 1993.7.26자 92모29 판결 참조).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 관련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되어 있고 피의자가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는 접촉하기가 쉽지 않게 된 점에 비추어,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염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함.

2019.3.26 판사 박정길

②공공기관 임원 내정은 '오랜 관행'
또한 환경부 산하기관 채용비리 혐의에 대해선(임원추천위원회 관련 혐의)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명에 관한 법령이 규정과는 달리 산하기관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내정하는 관행이 장기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김 전 장관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기에는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적폐’라 규정한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에 대해 법원이 ‘오랜 관행’이라 판단한 것이다. 법원이 법리가 아닌 정치권의 관행을 언급하며 영장을 기각한 것은 이례적이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이번 결과를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③전 장관이라 증거인멸·도주 우려 적어
또한 법원은 검찰이 다수의 물증을 확보했고 김 전 장관이 이미 퇴직해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점도 영장 기각의 사유라 밝혔다.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김 전 장관의 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 동력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청와대와 여권 등에서 '무리한 수사'라며 거센 공격을 퍼붓는 상황에서 법원도 검찰의 수사에 '위법성 인식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위법성 인식이 희박했다는 판단은 다른 청와대 관계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검찰 수사 동력 떨어질 듯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검찰은 김 전 장관을 구속해 블랙리스트 관련 청와대 진술을 확보할 계획이었을 것"이라며 "영장이 기각돼 수사가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의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원칙에 따라 계획된 수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르면 이번 주말 김 전 장관의 영장에 공범으로 적시된 신미숙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소환해 '블랙리스트'와 '채용비리 의혹' 수사를 이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수사 일정 역시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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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관여 혐의를 받고 있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25일 오전 서울동부지법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검찰이 문재인 정부 장관 출신 인사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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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 57분까지 식사시간을 포함해 6시간 30분가량 진행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김 전 장관 측 변호인과 검찰은 '직권남용 혐의'를 두고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였다.

김은경 측 "청와대 추천 인사 채용 특혜 몰랐다"
검찰은 수천쪽의 증거 자료와 함께 박근혜 정부의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례를 언급하며 김 전 장관이 전(前) 정부에서 임명된 산하기관 임원들에게 표적 감찰을 진행하고 사표를 요구한 것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 항소심에서 법원은 '사표 강요 혐의'와 관련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관련자들에게 줄줄이 징역형을 선고했다. 또한 검찰은 청와대가 산하기관 임원 후보로 추천한 이들에게 환경부와 산하기관 관계자들이 면접정보 등 특혜를 제공한 것을 '채용비리'로 규정하며 김 전 장관의 지시하에 이뤄진 범죄(업무방해)라 주장했다.

하지만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이런 검찰의 주장에 "산하기관 임원 인사와 감찰은 장관의 정당한 권한"이라 반박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청와대 추천자가 채용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김 전 장관은 "청와대의 추천은 단순 추천으로 생각했다"며 "특혜 제공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장관은 26일 오전 2시33분 서울동부구치소를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앞으로 조사 열심히 받겠습니다"고 답했다.

박태인·심석용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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