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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뽕짝 듣고 펑펑 우는 2030… "내 처지랑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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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에 빠진 청춘]

TV조선 '미스트롯' 시청률 8.4%

통속적인 노래 취급받던 트로트… 워킹맘·취업준비생 등 고된 삶서 마음에 위안받으며 인기 높아져

"발라드 들으면서도 운 적 없는데 '뽕짝' 듣고 눈물 쏟을 줄 몰랐어요.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뭔 뜻인지 알았다니까요."

대학원생 최고은(28)씨는 지난달 28일 처음 방송한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을 보고 펑펑 울었다. 후보로 출연한 김양(40)이 '우지 마라'를 부를 때였다. 최씨는 "'저마다 아픈 사연 가슴에 묻고 살지. 달려라 외길 인생 후회는 없다'는 가사가 내 힘든 처지와 너무 똑같더라"며 "가수가 '울지 말라'고 하는데 오히려 눈물이 더 쏟아졌다. 위로받은 느낌"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지난 21일 방영된 TV조선의 '내일은 미스트롯' 4회가 전국 시청률 8.4%를 넘겼다. '황홀한 고백'을 록트로트로 불러 환호를 받은 현역 가수팀 '숙행쓰'.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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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이라 불리며 통속적인 노래 취급만 받았던 트로트가 요즘 2030 젊은 층을 사로잡고 있다. 트로트를 다룬 TV 프로그램 시청률은 매회 기록을 경신하고, 포털 사이트나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에도 트로트가 흘러넘친다. 지난 21일 방영한 '미스트롯' 4회는 전국 시청률 8.4%를 넘기며 '신드롬'이 됐다. 첫 방송 시청률 5.9%, 2회 7.3%, 3회 7.7%에 이은 수치다. '미스트롯' 시청률 고공 행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시청자는 2030이다. 첫 회부터 30대 여성 시청률이 2.5%, 2회에선 20대 여성 시청률이 1%를 넘었다. 3회·4회에는 30대 여성 시청률이 각각 2.9%, 2.2%를 기록했다. 30대 남성 시청률도 1.3%를 넘었다. 40~50대 시청률의 절반쯤 되는 수치다.

프로그램 출연자의 절반가량도 20~30대다. 아이 셋 낳고 미스트롯에 출연한 정미애(37)씨는 "육아하면서 힘들었던 것을 털어내고 싶은 마음에 구슬프고 애절한 노래를 찾아 불렀는데 그게 내겐 트로트였다"고 말했다. 대학부 정다경(26)씨는 "소위 '밀당(밀고 당기기)'이랄까, 한 소절에 가성과 진성, 꺾기 창법을 모두 써야 해서 희로애락이 더 뚜렷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4회부터 트로트를 다양한 장르로 변주해서 들려주면서 시청률도 한층 더 올라갔다. 엄마 출연자들로 이뤄진 '맘마미애'가 '우연히'를 뮤지컬 형식으로 풀어냈고, 현역 가수들이 뭉친 팀 '숙행쓰'는 '황홀한 고백'을 퀸의 노래와 일렉트로닉 기타 연주에 접목해 '록 트로트'로 풀어냈다. 대학생 팀인 '민지대 트로트학과'는 흰색 미니 원피스를 입고 등장해 아이돌 가수를 연상케 하는 무대를 펼쳤다. 젊어지고 다채로워진 트로트 음악에 힘입어 '미스트롯'의 4회 영상은 방송 3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 35만회를 넘겼다.

절절한 트로트 가사에 몰입한 시청자들이 특히 많다. 아이 셋을 키우는 직장인 정희정(34)씨는 "아이돌 노래만 듣다가 주현미씨의 '여자의 일생'을 우연히 듣고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며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고달픈 인생 참아야 한다'는 가사에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싶더라"고 했다. 대학생 정재민(24)씨는 "취업이 막막한 상황에서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듣고 돌아가신 아빠 생각에 눈물이 났다"며 "발라드나 가요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위안을 뜻밖에도 트로트 소절에서 얻었다"고 말했다. 강태규 대중음악 평론가는 "트로트는 대부분 엇박이 없는 4분의 4박자로 쉽고 간결해서 신나게 몸을 맡기기에도 따라 부르기에도 좋은 장르"라며 "음악의 격식을 다 내려놓았을 때 트로트만큼 한국적 정서를 진하게 담아낼 수 있는 장르는 없기 때문에 2030 젊은 세대들도 환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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