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신율의 정치 읽기] `수석대변인` 표현이 매국?…비판은 누가 하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경이코노미

지난 3월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문희상 국회의장을 찾아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는 제목으로 블룸버그통신 기자가 쓴 바로 그 악명 높은 기사다. 이 기자는 국내 언론사에 근무하다 블룸버그통신 리포터로 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문제의 기사를 게재했는데,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 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라 당시에도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3월 13일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의 공식 서면 브리핑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에 대해 서울외신기자클럽은 “최근 민주당이 대통령에 대한 기사를 작성한 블룸버그통신 기자 개인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하고, 이로 인해 기자 개인의 신변 안전에 큰 위협이 가해진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자 한다. 기사와 관련된 의문이나 불만은 언론사에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제기돼야 하고, 결코 한 개인을 공개적으로 겨냥해서는 안 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국회 연설로 촉발된 논란은 이제 외신과 여당이 대립하는 언론 자유 논쟁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해당 논평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측은 ‘논평의 자유’를 들어 철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결국 민주당 측에서 사과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사태가 한참 진행된 이후였다.

민주당이 사과와 성명 수정을 했더라도 여전히 의문점은 남는다. 지금 집권 여당을 비롯한 권력층은 과연 언론과 정치의 관계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정치와 언론의 관계를 규정한 이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메릴과 데니스의 이론을 들 수 있다.

메릴은 정치와 언론,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정부와 여당은 언론과 친숙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론 역시 권력층과 친숙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서로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다. 친숙한 관계를 가져야만 권력층은 언론을 이용해 자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이나 ‘권력의 정당성’을 홍보할 수 있다. 또 언론은 권력층을 이용해 중요한 정보를 획득하거나 획득한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메릴 이론은 정부의 효율적 정책 집행은 여론 지지 획득이 필수적이고, 언론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더불어 언론의 효율적 정보 획득은 아무래도 정부와 여당 같은 권력층을 통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는 점에 기초한다.

메릴 이론과 다르게 데니스는 언론 의무와 역할에 기초한 이론을 전개한다. 데니스는 언론의 정당한 권리는 권력을 비판하는 데 있다고 봤다. 정부에 대한 비판과 정책의 논쟁을 점화시키는 것이 언론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 언론의 비판적·견제적 기능과 정보공개 요구, 그리고 표현의 자유는 정부기관의 권력과 불법행위에 대항하는 수단이 된다는 이론이다. 여기서 권력은 ‘현존하는 권력’을 의미한다. ‘끝난 권력’이나 이미 ‘죽은 권력’을 언론이 건드리고 파헤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얼핏 메릴과 데니스, 두 사람 이론은 상충되는 것 같지만, 데니스 이론은 언론의 ‘의무와 권리’를 규정하는 데 방점을 둔 반면 메릴은 정치와 언론의 ‘상호적 역할’에 방점을 찍는다. 따지고 보면 상충된다고 보기 힘들다.

독일은 정치와 언론 관계를 ‘상호 의존하되 종속돼서는 안 되는 관계’로 규정한다. 정치 커뮤니케이션에서 언론이 담당하는 부분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치의 언론에의 의존도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언론은 정치체계가 존재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는 것이다. 정치의 언론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될수록 정치는 언론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데, 이를 위해 정부나 여당은 언론이 필요로 하는 정보체계의 통제와 정보 조작을 동원해서 언론을 지배하려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정치와 언론은 상호 의존적 관계면서 동시에 물고 물리는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권력이 언론이나 언론인을 공격해 언론 공분을 자아내면 결국 권력만 손해 본다는 점이다. 설령 억울한 부분이 있어도 이를 그대로 표출하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꼴이 된다. 이때 모든 언론이 들고일어나는 상황이 초래돼 결국 건지는 것 없이 손해만 보는 결과가 빚어진다. 힘 있는 자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다 여겨지고, 그런 비판을 한 언론에 대한 공세는 힘 있는 자의 오만과 과시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논평은 이런 점을 간과했다.

해당 논평을 보면서 든 또 하나 의문점은 ‘미국 국적 통신사 외피를 쓰고 국가 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 부분이다. ‘국가 원수에 대한 모욕=매국에 가까운 행위’라는 등식이 과연 성립 가능할까. 이 부분을 수정했는지는 몰라도, 사태가 커질 때까지 버틴 것을 보면 아마도 문제의식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정치와 언론의 관계를 규정한 이론들에서도 언론의 본래적 기능은 정부를 비판하는 것으로 정의돼 있다. 물론 비판과 비난은 다르다. 비판을 하되 어떤 표현으로 비판을 하느냐에 따라 문제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이 정부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다. 그 정부 대표자인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라 말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언론 공격을 거의 ‘취미’로 하는 것 같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자신을 공격하는 언론에 대해 ‘매국적’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그런데 요새 부쩍 여당 내에서 ‘국가 원수 모독죄’나 ‘매국적’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와 걱정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튀어나올 수 없는 단어가 난무한다. 여당이 언론과 야당의 역할이 ‘자신들에게 펀치를 날리는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가 궁금하다.

야당이 권력 핵심에 대해 막말 가까운 공격을 하는 게 비단 우리만은 아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맥신 워터스 민주당 소속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은 2차 미북정상회담 결렬 직후인 지난 3월 5일 “거짓말쟁이 트럼프가 테러리스트이자 살인자인 김정은과 아무런 성과가 없는 ‘가짜 회담’을 마치고 왔다. 사기꾼이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정도면 대통령에 대한 확실한 인신공격이다. 빌 넬슨 민주당 상원의원은 2018년 7월 트럼프 대통령의 미러정상회담 기자회견 발언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고 비판했다. 여기서도 이른바 ‘대변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런 사례를 거론하는 이유는, 미국도 이런 비판을 하니 우리도 그 정도 비판은 괜찮다고 얘기하기 위함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대통령의 대응이다. 아무리 트럼프가 CNN 같은 언론을 대놓고 비난하고 ‘가짜뉴스 생산자’라는 딱지를 붙여도 자신을 비난한 기자 경력을 들먹이고 ‘매국적’이라고 비난하지는 않는다는 점, 그리고 야당 정치인에게 막말로 대응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자신을 인신공격한 야당 의원들을 향해 ‘국가 원수 모욕’이라 표현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미국 공화당을 거론하지 않고 대통령 대응만을 말한 이유는, 미국의 정당구조는 원내 중심이기 때문이다. 의원 개개인의 독립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통령과 정당의 운명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당연히 여당이 대통령을 위해 몸을 던져 방어막을 치는 일은 없다.

그뿐 아니라 미국의 정치·언론 환경에서는 트럼프가 아무리 뭐라 하더라도 언론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미국 민주주의가 그만큼 뿌리가 튼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가 잘했다고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서울외신기자클럽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절차에 맞게 항의할 수도 있는데 권력이 특정 기자에 대해 공격하는 듯한 인상을 준 데 있다. 이는 언론 자유와 관련된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 지금 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서울외신기자클럽만은 아니다. 아시안아메리칸기자협회도 3월 18일 “언론인에게 가해지는 모든 형태의 협박·위협에 우려를 표한다. 협회 회원이자 블룸버그통신 소속인 기자를 둘러싼 논쟁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이런 위협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기자들에게 보장돼야 하는 언론의 자유를 해치는 행위”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는 과거 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언론 자유를 쟁취했고 이를 지키려 했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매경이코노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1호 (2019.03.27~2019.04.02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