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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반복 유산, 여성 탓만 할 수 없어...정자 DNA 손상도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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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진

세계내분비학회(ENDO 2019) 발표

정자 활성산소 4배ㆍDNA 손상 2배

신약 타깃, 남성으로 확대하는 의미

중앙일보

습관성 유산(RPL)이 남성 정자의 손상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사진은 DEFB126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운동에 어려움을 겪는 정자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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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20주 전에 연속으로 세 번 이상 자연 유산을 반복하는 ‘습관성 유산(RPL)’이 남성에게서 비롯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24일(현지시각)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세계내분비학회’에서 “여성의 신체에서 생긴 문제보다 남성 정자에 생기는 DNA 손상이 습관성 유산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에 참여한 차나 자야세나 임페리얼컬리지 런던 교수는 “습관성 유산은 전체 부부의 1~2%가 겪는 문제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며 “태아의 생존에 필수적인 태반 형성에 정자가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그동안 (습관성 유산의) 원인을 찾는 데 남성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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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에 따르면 그간 RPL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있어 남성에 대한 연구는 제한적이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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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습관성 유산을 경험한 (부부의) 남성 63명과 그렇지 않은 건강한 남성 50명을 비교 연구했다. 생식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진 정자의 DNA 손상이 RPL에 영향을 미치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남성 호르몬으로 알려진 테스토스테론 등 성 호르몬의 수치를 측정하고, 현미경으로 정자의 수와 활동성을 관찰했다. 그 밖에 여러 분자 테스트도 병행했다. 특히 활성산소로 흔히 불리는 ‘반응성 산소종(ROS)’의 수치를 측정한 것이 주효했다. 반응성 산소종이 남성의 정자를 손상할 수 있는 화학 물질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습관성 유산을 경험한 남성에게서는 DNA 손상 수치가 2배나 높게 나타났다. 반응성 산소종의 수치도 4배 높았다. 신정호 고려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활성산소는 관상동맥 질환ㆍ암 등 다양한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해 항산화 치료 등이 시행되고 있다”며 “이런 특성으로 봤을 때 정자 DNA 손상 역시 유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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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결과 대조군에 비해 RPL을 경험한 남성의 경우 활성산소(ROS)는 4배(A), DNA 손상은 2배(C)로 나타났다. [그래픽제공=임상화학(Clinical Chemistry)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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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재발성 유산을 겪은 여성의 남편의 연령은 평균 37.3세로 대조군 남편(30.8세)보다 많았다. 비만의 기준이 되는 체질량지수(BMI)도 평균 27.6으로 대조군(24.8)보다 높아 경도 비만에 속했다. 그러나 연구진은 “나이와 BMI가 활성산소 수치나 DNA 손상 정도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흡연과 주당 알코올 섭취 정도도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그동안 주로 여성에게 국한됐던 치료 타깃을 남성으로 확대, 활성산소를 줄이는 방향으로 신약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신정호 교수는 “습관성 유산은 부모의 유전적 요인과 태아와 산모 간 면역 반응 등 복합적 원인으로 발생한다”며 “현재까지도 확실한 치료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며 “이번 연구로 (습관성 유산의) 추가 원인이 더 밝혀진 만큼 반복적 검증으로 약물 등 치료법을 개발을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 1월 미국 임상화학학회 학술지인 ‘임상화학(Clinical Chemistry)’에도 실렸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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