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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환경부 블랙리스트' 김은경 前장관 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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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文정부 장관에 첫 청구

前정권때 임명된 임원들에게 사표 종용 등 직권남용 혐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22일 김은경<사진>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사건 수사에 착수한 지 석 달 만이다. 김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표를 받고 그 자리에 청와대가 낙점한 인사들을 임명하게 한 혐의(직권남용)를 받고 있다. 검찰이 현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인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처음이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이 2017년 7월 취임한 뒤 전(前)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기관 임원들의 명단을 작성한 뒤 이들에게 압박을 가해 사표를 내도록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장관의 지시를 받은 환경부 운영지원과가 이런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임원들을 직접 만나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종용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환경부 실무진으로부터 관련 진술도 확보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이 산하기관에 친(親)정부 인사들을 임명하는 과정에도 개입했다는 단서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동부지검은 지난달 김 전 장관을 소환해 조사했으나 그는 자신과 관련된 혐의를 전면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환경부 실무진의 진술과 그들이 작성한 문건 등으로 볼 때 김 전 장관의 개입 혐의가 상당 부분 인정된다"고 했다.

이날 오후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 청구 사실이 알려진 직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출입기자단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장관의 인사권과 감찰권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겠다"며 "과거 정부의 사례와 비교해 균형 있는 결정이 내려지리라 기대한다"고 했다. 청와대가 검찰의 영장 청구에 대해 이런 식의 언급을 한 것은 드문 일이다. 검찰 안팎에선 사실상 법원을 향해 '영장 청구를 기각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이 김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그동안 환경부 실무진들 위주로 수사를 진행해왔다. 최근까지도 검찰 내부에선 혐의를 부인한 김 전 장관을 몇 차례 더 불러 조사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영장을 청구한 것은 혐의를 입증할 만한 진술과 증거를 확보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은 지난 1월과 2월 환경부를 압수 수색해 환경부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운영지원과가 작성한 문건을 확보했다. 이 문건엔 전 정권에서 임명된 임원들의 명단과 정치적 성향, 비위 의혹 등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그 자리에 어떤 사람을 임명하고 싶어하는지 이름을 적어놓은 문건도 있었다. 환경부 감사관실 컴퓨터에 있는 장관 전용 폴더에서 사표 제출을 거부하는 임원들에 대해 '표적 감사'를 시도한 내용이 담긴 문건도 확보했다. 소환 조사를 받은 환경부 직원들도 김 전 장관의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 개입한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 2명도 최근 소환해 조사했다.

이 사건은 청와대 특별감찰반 출신 김태우 전 수사관이 지난해 12월 환경부 감사관실에서 '블랙리스트'를 받았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이후 환경부 산하 환경공단의 채용 비리를 집중 조사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6월 표적 감사를 받고 사표를 쓴 김현민 전 환경공단 감사의 후임 공모에 들어갔다. 검찰에 따르면 환경부와 환경공단은 청와대가 이 자리에 내정한 한겨레신문 기획조정본부장 출신 박모씨에게 환경공단 업무계획서와 면접 질문지까지 보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씨는 서류 심사에서 점수 미달로 탈락했다. 그러자 신미숙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안병옥 당시 환경부 차관을 청와대로 불러 질책했다고 한다. 안 전 차관은 이 일이 있은 뒤 경질됐다. 환경부에서 인사를 담당했던 운영지원과장도 같은 시기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결국 환경공단 감사 자리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 환경특보를 지낸 인사가 임명됐다.

검찰은 이런 과정이 청와대 인사수석실과 환경부의 조율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장관 조사가 마무리되면 검찰 수사는 신미숙 비서관을 넘어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 신 비서관이 조 수석 등에게 보고 없이 자체적으로 이런 일을 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수사 과정에서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애초부터 이 사안에 대해 블랙리스트가 아닌 '체크리스트'라고 했고, 김 전 장관에 대한 영장 청구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과거 정부 사례와 비교해 균형 있는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과거 정부에서도 했던 일인데 현 정권만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사안에 대해 이미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바 있다. 검찰은 2017년 1월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혐의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구속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 해명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주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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