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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북,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전원 철수…고강도 대남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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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연락대표 통해 “상부 지시” 통보 ‘하노이 무산’ 여파 남북관계로 번져

미국 고강도 제재에 우회 반발

‘북, 남북경협 이행 촉구 의미’ 해석

정부, NSC 상임위…“정상운영 희망”

남, 계속 잔류…북, 군 통신선은 가동

실무자급 창구로 철수 구두 통보

남쪽 공동사무소 운영 ‘묵인’하고

군 통신선·판문점 연락관도 유지

관계 전면 단절 가능성 높지 않아

정부 “합의 파기는 아니다”

북 추가 행동 여부가 분수령 될듯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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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공동사무소) 북쪽 인력을 철수시켰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 이후 한반도 정세 긴장의 부정적 여파가 남북관계에까지 번지고 있다.

정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구에서 열린 로봇산업 육성전략 보고회 등에 참석한 뒤 오후에 청와대로 돌아와 안전보장회의 회의 결과 등을 보고받고 참모들과 대책회의를 연 것으로 전해졌다.

북쪽의 ‘공동사무소 인력 철수’ 조처는 일단 미국·유엔의 고강도 제재에도 남북경협 등 합의 이행에 속도를 내라는 고강도 대남 압박으로 읽힌다. 이번 조처가 북-미 대화 기조와 관련한 전략적 노선 선회의 전조인지는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북쪽의 의도가 무엇이든 지난해 9월14일 문을 연 남북관계 사상 첫 ‘24시간·365일 소통 창구’가 189일 만에 위기에 빠진 건 분명한 사실이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이날 오후 4시30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북쪽은 오늘(22일) 오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남북 연락대표 간 접촉을 통해 ‘북측 연락사무소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철수한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통보하고, 공동연락사무소에서 철수했다”고 발표했다. 천 차관은 “북측은 ‘남측 사무소의 잔류는 상관하지 않겠다’며 ‘실무적 문제는 차후에 통지’하겠다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는 북측의 이번 철수 결정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북측이 조속히 복귀해 남북 합의대로 공동사무소가 정상 운영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공동사무소에 근무하던 남쪽 인력 69명(시설 유지 등 지원 인력 포함) 가운데 평소보다 많은 25명을 주말 근무 요원으로 공동사무소에 잔류시켰다. 천 차관은 “월요일(25일) 출·입경은 평소와 같이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성 공동사무소 운영은 지난해 ‘4·27 판문점선언’의 주요 합의 사항이다. 따라서 북쪽의 이날 ‘공동사무소 철수 통보’는 “4·27 판문점 선언 이행 잠정 유보”(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하지만 천 차관은 “(북쪽의) 의도는 예단하지 않겠다”며 “(남북) 합의 파기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안전보장회의에서 북쪽 철수 상황에 대해 협의하고 대책을 논의했다”고만 밝히고는 입을 닫았다. 곤혹스러움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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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북쪽의 철수 통보는 지금으로선 남북 소통 창구의 전면 단절을 뜻하지는 않는다. 북쪽은 자신들은 철수하면서도 “남쪽 사무소의 잔류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밝혀, 남쪽만의 공동사무소 운영은 ‘묵인’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남북 군 통신선과 판문점 연락관 채널도 그대로 열어뒀다. 천 차관은 “(개성) 연락사무소 외에 다른 군 채널 등은 현재 정상 가동되고 있다”고 밝혔다. 개성공단에서 10년간 법무팀장을 지낸 김광길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북쪽은 판을 깨려면 ‘너네 나가’라고 하지 ‘우리 갈 테니 너네는 알아서 해’라고 하지 않는다”며 “남쪽에 ‘할 도리를 다하라’는 촉구성 압박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철수 통보’의 격과 형식이 전례없이 낮은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쪽은 실무자급인 남북 연락대표 창구를 통해 ‘구두 통보’했다.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나 전종수 공동사무소 북쪽 소장 명의의 문서 통보는 없었다. 이는 앞서 개성공단 장기 중단 또는 전면 폐쇄 때 북쪽 태도와 비교된다. 북쪽은 2013년 개성공단 166일 잠정 중단 때 김양건 당시 통일전선부장이 직접 담화를, 2016년 2월11일 개성공단 전면 폐쇄 조처 때는 조평통이 성명을 공개 발표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북쪽의 ‘철수 통보’를 일단은 대남 압박에 한정된 것으로 해석했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남쪽이 제재를 이유로 경협 등에 주저해 개성 공동사무소에서 ‘할 일이 없는데 우리가 여기 왜 있겠냐’는 압박”이라며 “남쪽이 말만 앞세우고 실천하지 않는다는 극도의 불신·불만의 표출”이라고 풀이했다.

북-미 사이 남쪽의 ‘중재·촉진’ 구실에 대한 회의 표출로 받아들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문 대통령을 통한 북-미 관계 접점 마련에 기대를 접었다는 뜻”이라고 짚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선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사이 비공개 채널 작동 여부가 가늠자가 될 수 있다.

북쪽이 ‘개성 공동사무소 철수’에 멈출지 추가 행동에 나설지도 남북관계의 진로와 관련해 주목할 대목이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북쪽이 군 통신선 단절 등 남북이 이미 합의·실천하고 있는 것을 뒤로 돌리느냐가 핵심”이라고 짚었다. 일단 22일엔 북쪽의 추가 행동은 없었다. 정부 당국자는 “주말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러워했다.

다수 전문가들은 북쪽이 북-미 대화 기조와 관련해 전략적 노선 선회를 뜻하는 ‘추가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전직 고위관계자는 “미국까지 갈 일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구갑우 교수도 “북쪽이 미국은 물론 남쪽에 대해서도 아직은 자기 노선을 확정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짚었다. 하지만 조성렬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만간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고 다른 전망을 내놨다. 이제훈 김보협 노지원 박민희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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