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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토요워치] "노포 자리 옮겨도 올 사람은 와"···근자감의 이유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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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의 변신은 무죄

2006년 청계천 개발로 이전한 하동관

국물맛에 반한 장거리 단골로 문전성시

부민옥 60년만에 공동화장실 남녀 따로

마룻바닥은 없애고 좌식 대신 입식으로

맛은 기본···편의시설 늘려 명성 이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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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면옥’은 어떻게 됐대요? 그럼 나머지는 사라지나요?” 지난 18일 찾은 을지로 3가역 인근의 불갈비찜 가게 ‘전주옥’. 을지면옥이 쏘아 올린 ‘노포(오래된 가게) 보존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노포를 운영하는 주인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20여년간 이곳에서 장사하고 있다는 김순남(61)씨는 “을지면옥보다 더 오랜 시간 운영해오던 다른 매장은 문을 닫게 됐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재개발, 임대료 상승 등의 외풍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생존법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노포도 많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맛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은 물론이고 소비자의 요구와 유통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허름한 외관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탈바꿈하기도 한다.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현존하는 노포와 사라지는 노포의 모습을 동시에 조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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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임대료 상승·재개발 바람=노포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은 임대료 인상에 따른 건물주와의 갈등이다. 대표적인 예가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이다. 홍대입구 사거리에서 25년 넘게 영업해온 이곳은 2012년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폐점했다. 뉴욕제과 강남점도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2013년 문을 닫았다. 일명 ‘노가리 골목’에서 4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킨 ‘을지OB베어’도 마찬가지다. 을지OB베어는 지난해 가게를 비우라는 내용증명서를 받은 후 두 배 인상된 임대료를 제시했지만 이미 다른 곳과 계약을 완료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을지OB베어 사장은 “현재 건물주를 상대로 명도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재개발 사업은 더더욱 피할 수 없다. 을지면옥과 양미옥은 서울시 역사도심기본계획상 생활문화유산으로 등록돼 가까스로 폐업을 모면했지만 그렇지 못한 원조함흥냉면·함흥곰보냉면 등은 역사의 뒤안길을 걷게 됐다.

위협 요인이 외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복고 열풍을 타고 방문객이 늘면서 예전만큼의 맛과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을지로 인근에서 감자탕을 파는 한 음식점을 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인기를 얻기 전과 후가 달라졌다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한 방문자는 “국물이 충분히 데워지지 않아 나중에 밥을 말아 먹을 때는 다 식어서 맛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면서 “최근 을지로 일대가 떠오른 후 젊은 고객들이 밀려들면서 종업원분들이 대응이 느려진 탓인지 먹는 내내 불편했다”고 말했다.

◇“올 사람은 온다”···노포의 근거 있는 자신감=노포가 흥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 시설이 낙후됐어도, 자리를 옮겨도, 심지어는 가격을 올려도 노포가 사랑받는 것은 역시 ‘맛’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외식업의 폐업률이 전체 산업 평균의 2배에 달한다지만 노포는 오랜 시간 살아남으며 존재 자체로 맛의 ‘힘’을 증명한다.

19일 낮 12시. 명동에 위치한 한우곰탕 전문점 ‘하동관’에는 ‘변치 않는 맛’을 즐기기 위해 찾은 손님들로 넘쳐났다. 주문하기 위해 입구부터 이어진 줄을 피해 2층에서야 겨우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하동관은 2006년 청계천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명동으로 터를 옮겼지만 단골손님은 끊이지 않는 듯했다. 곰탕을 안주 삼아 반주를 즐기는 백발의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바로 옆 하나은행 본점에서 근무한다는 40대 직장인 박병권씨는 “곰탕 한 그릇에 7,000원 정도 하던 시절에 비해 가격이 올랐지만 깊이 있는 국물 맛에 20년째 꾸준히 찾고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을 두 번째 방문했다는 김수민(29)씨는 “곰탕을 시켰는데 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기와 내장을 수북이 담아준 게 인상적”이라면서 “자리를 잡지 못할 정도로 사람이 많고 정신도 없지만 가끔 생각나는 것을 보면 다른 음식점보다 맛있는 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을지로입구역 인근에 있는 ‘남포면옥’은 진한 동치미 국물로 45년여째 손님들의 발길을 끌어모은다. 신관 입구에는 언제 담갔는지 표시된 동치미 항아리가 노포의 위엄을 뽐낸다. 이준호 남포면옥 전무는 “보통 평양냉면에는 고기 육수만 사용하는데 우리는 미리 숙성시킨 동치미를 배합한다”면서 “40~50대 주부들이 동치미 국물을 맛보고서는 따로 팔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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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도 변신한다?···“서비스 강화 위해”=변함없는 맛을 고집하는 노포도 세월의 흐름에 맞춰 모습을 바꾼다. 위생에 신경을 쓰는 것이 첫 번째다. 서울 중구 다동에 위치한 부민옥은 2017년 현재의 자리로 이동하면서 1·2층에 남녀 화장실을 각각 설치했다. 기존에 있던 공동 화장실이 여성 고객들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판단에서다. 1956년 문을 연 이래 첫 변화다. 김승철 부민옥 대표는 “오래된 가게는 단골을 이미 확보했고 처음 온 고객들의 재방문율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면서 “맛이 제일 중요하지만 깨끗하고 안전한 화장실을 원하는 젊은 고객층을 위해 남녀 화장실을 따로 설치했다”고 말했다.

복고 감성에 어울릴 법하지만 마룻바닥을 없애기도 한다. 좌식 식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은 손님들이 많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이곳으로 옮기고 나서도 몇 달간은 좌식 공간을 운영했지만 연세가 있으신 손님들은 앉아 있는 것을 힘들어하고 젊은 고객들은 좌식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마룻바닥에 식탁과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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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복합쇼핑몰 등 유동인구가 몰리는 유통 채널로 입점하기도 한다. 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노포를 찾아가는 데서 재미를 느끼는 손님도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가까운 곳에서 즐기려는 수요를 반영하는 것이다.

백화점업계는 콧대 높은 노포를 끌어오기 위한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해 롯데백화점 바이어는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30년 넘게 운영 중인 중식당 ‘만다복’의 대표를 설득하기 위해 1년 동안 ‘삼고초려’ 이상의 노력을 기울였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대표가 몸이 안 좋다는 말에 인천까지 가서 약을 전달하고 대표의 동생이 같은 종교를 믿는다는 점에 착안해 매주 예배에 참여하며 종교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말했다. 콧대 높은 노포는 백화점에 입점한 후 더 많은 소비자와 접촉하며 저변을 넓히고 있다.
/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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