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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영어이름 부르니 막힘없이 대화 가능…일처리도 빨라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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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복장·직급 파괴바람]

은행들도 직급·호칭 파괴

이데일리

카뱅에는 별도로 대표실이 없다. 대표들도 직원들과 같은 책상에서 함께 근무하다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는 직접 직원의 자리로 찾아와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눈다. 대표들 책상에도 크리스탈이나 자개로 만든 명패 대신 종이로 접어만든 명패를 세워 뒀다. 직함을 빼고 영어 이름을 위에 쓴 것마저 직원들과 똑같다. 윤호영(사내 호칭 ‘다니엘’) 카카오뱅크 공동대표가 경기도 판교 카카오뱅크 본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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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대니얼(Daniel), 잠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프로젝트 관련 경과 보고드리겠습니다.”

미국 어느 사무실 혹은 영어회화 학원에서 이뤄지는 대화가 아니다. 경기 성남 판교에 위치한 인터넷전문은행 한국카카오은행(카카오뱅크) 사무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대니얼’은 윤호영(48·사진) 카카오뱅크 공동대표가 회사에서 쓰는 영문 이름. 연차가 한참 낮은 신입사원도, 나이가 한참 어린 직원도 모두 그를 존칭없이 그저 ‘대니얼’이라고만 부른다. “대니얼 대표님” 혹은 “대니얼님”으로도 부르지 않는다. 별도의 대표이사실도 없는 그의 집무공간에는 ‘대표이사 윤호영’이라는 묵직한 검정 자개명패 대신, ‘Daniel 윤호영’이라고 적힌 노란 종이명패가 놓여져 있다.

카카오뱅크는 2017년 7월 국내 2호 인터넷전문은행로 출범할 때부터 직급과 존칭을 생략한 ‘영문 호칭’ 제도를 도입했다. 유연하고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상호간의 거리를 좁히고 창의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취지다.

카카오뱅크에 다니는 한 직원은 “영어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대화를 하다 보니 직급이 있었다면 말하기 어려운 소소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막힘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며 “바텀업(bottom-up)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젊은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잘 반영되다 보니 이들과 비슷한 20~40대 주 고객층에게 맞는 서비스 개발과 개선이 보다 현실적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 하면서 과거 권위적인 조직문화을 탈피하기 위해 호칭을 바꾸는 기업들이 늘고 있지만, 직위명에 ‘님’ 자 마저 생략하고 친구처럼 그냥 이름만 부르는 국내 기업은 카카오뱅크가 최초 격이다. 언론사에 근무하는 기자들도 “선배”, “부장”, “국장” 등 ‘님’ 자를 붙이지 않고 호칭하지만 직위에 따른 존칭은 붙인다.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권에서 직급과 호칭을 가장 먼저 파괴한 곳은 한국씨티은행(Citibank Korea)이다. 씨티은행은 2004년 미국 씨티금융그룹이 옛 한미은행을 인수하고 2010년 한국씨티금융지주를 출범시킨 후 2014년부터 사내 직급을 없앴다. 씨티은행 임직원들은 “홍길동 부장님”, “박진회 행장님” 대신 “홍길동님”, “박진회님”이라고 부른다.

한 씨티은행 관계자는 “아무리 외국계 은행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임직원들이 한국인인 만큼 처음 도입 땐 많이들 어색해했다”고 회고하면서 “하지만 어느덧 5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완전히 정착·융화돼서 모두들 너무 자연스럽게 ‘아무개님’이라고 부른다. 호칭 파괴 덕분에 최근 사내 ‘상호존중’ 문화가 더욱 발달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서구권과 다르게 존댓말이 있고 존칭문화가 지배적인 한국 정서상 감수해야 할 불편함도 있다. 이에 따른 자구책을 마련하기도 한다.

씨티은행의 경우 외부 미팅 및 행사자리에서는 “저희 홍길동 부장님은..” 식으로 일반적 한국 기업들처럼 직급 존칭을 붙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직급 존칭 생략에 익숙하지 않은 상대방이 거북해 하거나 혼란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 사내 ‘상호존중’ 문화를 위해 도입한 호칭 파괴인 만큼 외부 파트너들의 입장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카카오뱅크는 외부에서도 존칭없이 영어 이름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다만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는 사내에서 서로 영문명만 부른다. 윤호영 대표님은 ‘대니얼’이다. 우릴 호칭할 때 편하게 영어 이름으로 불러주셔도 된다”고 미리 양해를 구한다고 한다. 영문 이름과 실제 이름 및 역할의 매칭이 익숙하지 않을 경우 상대방의 편의를 위해 “윤 대표님”, “아무개 파트장”처럼 직급 대신 역할에 따른 ‘직책명’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호칭 파괴에 따른 수평적 의사소통으로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가 나오다보니 의사결정을 위해 동의와 설득 등 검증 과정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쏟기도 한다”며 “수직적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시간낭비라며 답답해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합치된 의사는 큰 추진 동력을 얻어 결국 빠르고 효율적인 일처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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