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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김기찬의 인프라]탄력근로제 확대하면 주당 80시간 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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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탄력근로제 논의가 진행 중이다. 3월 국회에서 관련 법을 개정해 처리하려 한다. 법 개정 방향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탄력근로제 노사정 합의문(안)이다. 이에 맞춰 온갖 설이 난무한다. '주당 80시간을 일하게 된다' '10개월 동안 64시간 노동에 시달린다'는 식이다. 노동계는 물론 일부 학자와 변호사까지 이런 주장을 한다. 합의 당사자들이 반박해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정치권도 셈법이 달라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논란 거리를 풀어본다.

중앙일보

노사정이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최대 6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에 합의한 2월 19일 오후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이철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장,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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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1년과 6개월, 어느 쪽이 타당할까.



경사노위에선 노사가 합의하면 현행 3개월인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동의한다. 자유한국당은 1년 확대를 주장한다.

3년 4개월 전으로 거슬러 가 보자. 2015년 9월 15일이다. 당시 노사정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도출했다. 이때 노사정은 근로시간을 주당 최대 52시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2주(취업규칙), 3개월(노사합의)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1개월(취업규칙), 6개월(노사합의)로 확대하기로 했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지지했다.

따지고 보면 근로시간 단축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도 3년 4개월 전의 노사정 합의를 재확인하고, 이제야 시행하는 셈이다. 새삼 단위 기간 1년을 주장해서 다시 사회적 갈등을 빚을 필요가 있을까.

물론 정부·여당이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9·15 노사정 대타협에 들어있던 탄력근로제를 외면해서 이런 사달이 벌어진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법 개정에 참여했던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다.



Q : 탄력근로제가 확대되면 주당 최대 80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이 논란의 발단은 어이없게도 고용노동부다. 고용부는 지난해 6월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라는 매뉴얼을 내놨다. 탄력근로제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업무가 집중되는 시기에는 주당 최장 64시간 근로 가능. 휴일근로를 포함하면 80시간(휴일 2일 16시간) 가능'이라고. 당시는 김영주 고용부 장관이 "탄력근로제 확대는 근로시간 단축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다"며 반대하던 시기다. 고용부 관계자는 "그렇다 해도 이런 극단적인 운용방법을 정부 매뉴얼에 명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매뉴얼의 내용은 맞을까. 그렇지도 않다. 80시간을 주장하는 쪽에서 놓친 게 있다. 시행 시기다. 매뉴얼에는 근로시간 단축이 2020년 1월부터 적용되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2019년 말까지만 이런 식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올해 말까지 5일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이 때문에 탄력근로제를 활용하면 5일 동안 주당 64시간이 가능하고, 여기에 휴일을 붙이면 80시간이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50인 이상 300인 미만도 7일을 기준으로 주당 평균 근로시간을 산출한다. 따라서 탄력근로제를 적용해도 64시간이 주당 근로시간 최대치다. 전체 평균 근로시간을 주당 52시간에 맞춰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Q : 40주 동안 매주 64시간 일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틀린 건 아니다. 6개월 단위의 탄력근로제를 연이어 활용하면 된다. 문제는 나머지 12주 동안은 아예 일하지 않는, 사실상 공장문을 닫아야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이런 기업이 있을까.

더욱이 현재도 3개월 단위 탄력근로제를 4차례 이어서 활용하면 1년 내내 탄력근로제를 할 수 있다. 주장대로라면 현행 제도로도 40주 동안 매주 64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산업현장에서 찾기 힘들다.

또 6개월 탄력근로를 적용하려면 노사가 사전에 집중근로 시기를 정해서 합의해야 한다. 집중근로는 3개월로 한정된다.

'6개월 단위를 연이어 써서 악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1~3월은 약한 강도의 근로를 하고, 4~6월에 집중근로를 했다. 이후 추가로 6개월 탄력근로를 하면서 7~9월을 집중근로하고, 10~12월 약한 근로를 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집중근로가 4~9월까지 6개월간 이어진다. 김경선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관은 "이런 형태의 운영은 합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어서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며 "근로감독 등으로 행정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Q : 임금보전을 매월 1원만 해도 상관없다?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을 6개월로 늘리려면 근로자의 임금이 떨어지지 않도록 임금보전방안을 마련해 고용부에 신고해야 한다. 반드시 노사의 서면 합의서 형태여야 한다. 의무사항이다. 그렇다면 매달 1원만 보전하기로 노사가 합의하면 허용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이 주장에 담겨 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나 중소기업은 사실상 사업주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현실적인 걱정도 깔렸다.

이런 임금보전책은 노사 서면 합의서를 제출해도 인정되지 않는다. 보전방안은 기존의 임금 수준을 저하하지 않는 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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