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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사설]‘사후 상봉’까지 추진해야 하는 이산가족의 기막힌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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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가 22일 이산가족의 고령화와 사망률 증가에 따라 이산 1세대의 기록보존과 ‘사후 교류’에 대비하기 위한 유전자 검사 사업에 15억7500만원을 지원하기로 의결했다. 2014년 시작된 유전자 검사 사업은 이산 1세대가 북녘에 두고 온 가족을 생전에 만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혈액과 모발을 채취해 유전자 정보를 보관해두는 것이다. 사망한 뒤에라도 북한의 후손들이 부모의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산가족의 ‘사후 교류’라니, 듣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1988년부터 올해 2월 말까지 상봉신청을 한 이산 1세대는 13만3272명이지만 이미 절반이 넘는 7만7751명이 사망했다. 2월 한달 동안만 223명이 세상을 떠났다. 생존해 있는 5만5521명도 24%가 90세 이상이고, 80대 비율은 41%로 고령 어르신이 대부분이다.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리운 가족들 생각에 애를 태우다 끝내 얼굴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이런 기막힌 비극이 또 있을까.

2000년 6·15선언을 계기로 지난해 8월까지 대면상봉이 20차례, 화상상봉이 7차례 열렸다. 행사를 통해 남북의 4677가족, 2만3519명이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났다. 너무나도 더딘 진행이지만 그나마 남북관계가 순탄하지 못하면 몇년씩 중단되곤 한다. 지난해 8월 금강산에서 치러진 상봉행사도 2015년 10월 이후 2년10개월 만에 열렸다. 그러는 사이에 많은 이산 1세대들이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남북은 지난해 4·27 판문점선언에서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인도적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한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금강산 지역의 이산가족 상설면회소를 이른 시일 내 개소하는 것을 추진하고, 우선적으로 이산가족 화상상봉과 영상편지 교환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비무장지대 전방초소가 시범철수할 정도로 남북관계가 빠른 속도로 복원되면서 이산가족들의 가슴도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되고 남북관계도 올 들어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이산가족 문제는 다시 후순위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화상상봉을 위한 상봉장 개·보수 작업도 대북 제재 등으로 지연됐다. 이산가족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도 열리지 않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북미 ‘기상도’에 영향받지 말고 최우선으로 풀어나가야 할 인도적 과제다. 남북은 조속히 적십자회담을 열어 이산가족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에 머물지 말고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근본적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상설 면회소 설치와 상봉 정례화는 물론이고, 전면적 생사확인 등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관계 개선을 피부로 체감하고, 북한의 남북화해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무엇보다 이산 1세대들이 한을 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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