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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분수대] 국민은 몰라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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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권혁주 논설위원


올해 들어 부쩍 눈에 띈다. “국민은 몰라도 돼” 퍼레이드 얘기다. 시초는 문재인 대통령의 딸, 다혜씨 가족의 해외 이주였다. 외국에 나가 사는 이유가 뭔지 청와대는 공개를 거부했다. “대통령 가족의 사생활 공개 요구는 정치적 금도를 벗어난 일”(김의겸 대변인)이라고 잘랐다. 경호 인력과 예산이 드는 일인데도 그랬다. “나랏돈을 받았다”며 사립유치원 회계 내용을 샅샅이 들여다보겠다는 것과 사뭇 다르다. 그래서 공개 거부는 이렇게 들렸다. “알려고 하지 마라.”

전염성이라도 있는 것일까. 며칠 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수혁 의원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방위비 분담금이 얼마인지 확인하는 취재진의 질문에 “국민이 알아서 뭐해?”라고 받아쳤다. 심상정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정의당 의원)도 비슷했다. 엊그제 기자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산정 방식을 묻자 “국민은 산식이 필요 없다”고 했다. 파문이 커지자 심 의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계산 식이 나오면 추후 말씀드리겠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정치인만 그런 게 아니다. 정부도 배웠다. 지난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아파트 공시가격 안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같은 동, 같은 층인데 작은 평형이 더 비싼 경우도 있었다. 항의가 빗발쳤다. 일부 언론은 국토부에 공시가격 결정 방법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구체적인 시세나 그 산정 방식을 공개해 주긴 어렵다”였다. 세금 내는 기준을 어떻게 정했는지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불투명 과세’다. “알 필요 없다”가 난무하다 보니 “대통령 비서실 업무추진비는 문제가 없었다”는 감사원 발표마저 “더는 알려 하지 마라”로 들리는 판이다.

“몰라도 돼” 뒤에는 대개 꺼림칙한 뭔가가 있게 마련이다. 2007년 말 정부는 특별사면 대상자 명단을 일부만 공개했다. 비공개 명단에는 고(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들어 있었다. 2005년 특사를 받은 뒤 다른 건으로 처벌됐다가 2년여 만에 다시 특사를 받은 것이었다. 나중에 이런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특사 비공개는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됐다. 과연 요즘 이어지는 “알 필요 없다” 뒤에는 무슨 사정들이 도사리고 있는 걸까.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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