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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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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주류 트렌드]② “집에서, 혼자서 마셔요” 술 덜 마시고 더 구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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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접대 줄고 ‘홈술’ ‘혼술' 늘어
소용량 와인·맥주 속속 출시··· 와인바에선 ‘잔술’ 판매 확대

회사원 박상기(38)씨는 지난 토요일 아내와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앙증맞은 크기의 소용량 와인 5병을 쇼핑카트에 담았다. 레드와인 ‘피치니 메모로’(375mL)·‘라호야’(187.5mL), 화이트와인 ‘킴 크로포드 말보로 소비뇽 블랑’·‘샤토 바리’(각 375ml) 등 용량이 일반 와인(750mL)의 절반~4분의 1인 와인들이다.

박씨는 "둘이 나누기엔 일반 와인은 너무 많다"고 했다. "퇴근해 아내와 와인 한두 잔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낙(樂)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크기의 와인을 둘이서 다 마시기 버거워요. 아깝다고 다 비우면 다음날 아침 힘들고요. 소용량 와인은 용량대비 일반 와인보다 비싸죠. 하지만 와인이 남아서 버리거나, 과음하는 것보단 나은 듯해요."

◇술 소비 꾸준히 줄지만 가구 구매량은 늘어나는 ‘모순’

한국인의 술 소비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가구 주류 구매량은 늘고있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코리아가 발간한 ‘국내 가구 주류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구 연간 주류 구매량은 전년 대비 17% 늘었다. 구매 가구 수와 연간 구매빈도, 회당 구매량 모두 전년대비 성장했다.

술을 덜 마시지만 더 구매한다니, 이 모순은 어떻게 된걸까. 닐슨은 집밖에서 마시던 주류문화가 가족과 함께 하는 집안으로 옮기며 ‘홈술’ 트렌드가 강화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주 52시간제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회식·접대 술자리는 줄어든 반면 집에서 가족과 또는 혼자 술 마시는 경우가 잦아졌다는 것.

닐슨이 3개월 내 주류를 구매한 가구 패널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을 추가 진행한 결과, 57%는 ‘집에서 마신다’고 응답했고, 31,4%는 ‘가족과 함께 마신다’고 답했다.

보편화된 혼술 트렌드에 알맞은 소용량 주류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는 250mL 내외 소용량 캔 맥주를 선보였다. 디아지오는 2015년 출시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저도수 위스키 ‘W 아이스’를 기존 450mL 보다 작은 330mL 제품을 지난해 말 출시했다.

◇소매가로 저렴하게 즐기는 ‘와인샵앤바’ 속속 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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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계동에 문 연 ‘라꾸쁘’는 와인샵과 와인바가 함께 있는 와인샵앤바(wine shop and bar)이다./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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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은 홈술만큼 뚜렷해진 주류 트렌드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국내 총 가구 중 1인가구 비중이 사상 최대인 28.6%를 기록했고, 머지않아 1인가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가 될 전망이다.

주류·유통업체들은 혼자 마실 수 있는 용량의 신제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250mL짜리 ‘카스’와 ‘엑스트라 콜드’를 지난해 각각 출시했다. 이전까지 가장 작은 캔맥주 용량은 355mL였다. 일본 맥주 ‘아사히 수퍼드라이’는 135mL짜리 캔맥주까지 나왔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한 잔 용량(187mL)으로 개별 포장한 전통주 5종을 선보였다.

와인업계도 혼자 가볍고 저렴하게 마시려는 소비자 요구에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금요일 저녁, 직장인 김지윤씨는 서울 계동 와인샵 ‘라꾸쁘(La Coupe)’를 찾았다. 김씨는 와인샵 대표 양진원씨가 추천한 프랑스 부르고뉴 내추럴 와인 ‘샤토 드 벨 아베니르’ 한 병을 샀다. 양 대표는 와인을 와인샵과 맞붙은 와인바로 들고왔다.

양 대표가 따른 와인을 한 모금 음미한 김씨는 "와인을 바에서 소매가로 마실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일반적으로 와인은 소매가가 와인바나 레스토랑에서 마실 때보다 3분의 1 가량 저렴하다.

김씨가 와인을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건 라꾸쁘의 와인샵과 와인바가 한 공간에 같이 있지만 법적으로는 분리된 업장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와인을 판매하는 매장과 마시는 업장이 공존하는 형태를 와인샵앤바(wine shop and bar)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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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 지하 1층에 들어선 와인 복합 문화 공간 ‘와인웍스’./주완중 기자


와인샵앤바들은 글래스와인을 다양하게 판매한다. 이전까지 와인바들은 대개 병으로 팔았다. 잔 단위로 팔면 와인 남아 손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 상가에 문 연 ‘하루(Haru)’는 샵에 구비한 와인 300여 종 중 20개는 잔술로 최저 4000원부터 저렴하게 판매한다. 현대백화점 본점 지하에 문 연 ‘와인웍스(Wine Works)’는 8000~1만5000원대 글래스와인 14종 구비했고, 안주나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한 음식을 최저 6000원짜리부터 12가지 낸다.

하루를 운영하는 와인수입사 나라셀라 신성호 이사는 "와인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기 위해 와인샵앤바를 오픈했다"며 "아파트 주민들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오셔서 드시고 갈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지향한다"고 했다. 일상의 술을 소주에서 와인으로 바꾸겠다는 야심이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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