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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광화문]돈에 모험을 허(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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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익태 증권부장] 2004년 사모펀드(PEF) 제도, 2011년 헤지펀드 제도 도입. 2004년 2개, 운용자산 4000억 원. 2018년 6월 460개, 376조 원. 14년 간 국내 사모펀드(PEF) 시장은 두 단계를 거치며 성장했다. 속은 기형적이다. 경영참여형과 전문투자형 간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해외 사모펀드와 달리 각기 다른 수준의 규제를 받고 있다.

사모펀드제도는 두 가치 사이에서 충돌한다.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돈을 끌어모은 뒤 운용 수익을 배분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 만큼 당국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 하지만 너무 느슨하면 투자자 보호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모펀드에 대한 족쇄는 충돌의 산물이다.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과 모험자본의 부재는 충돌 지점 어디쯤 놓여 있다. 제도를 통합하고 운용방식을 일원화할 필요가 있었다.

지난해 9월 금융당국이 이런 족쇄를 풀어내자 시장은 ‘절묘한 한 수’로 평가했다. ‘기관 전용 사모펀드 도입’을 두고 한 말이다. ‘일반 사모펀드’는 투자자에 제한이 없다. 개인도 투자할 수 있다. 보호가 필요하다. 개입해야 한다. 기관전용 펀드는 다르다. 쉽게 말해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으니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미였다. 제도 통합에 따른 혼란과 충격을 고려, 완충 장치를 뒀다. 일반 사모펀드를 운용할 것인가, 기관전용 사모펀드를 운용할 것인가, PEF 운용사의 몫으로 남겼다.

운동장이 기울어졌다. 예컨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고작 3%를 지분을 갖고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한다. 국내 PEF는 10% 이상 보유해야만 한다. 대기업에 대한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헤지펀드는 가능하지만, 경영에 참여해본 적이 없다. 당국은 이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그래야 큰물에서 놀 수 있는 ‘한국형 엘리엇’이 나올 수 있다. 사모펀드 활성화는 기업 구조조정 등에 도움이 된다.

아마존·구글·애플·에어비앤비·우버…“우리는 왜 이런 기업을 키울 수 없나” 한탄만 한다. 키워야 경제가 성장한다. 은행들도 한때는 모험자본이었다. 삼성이나 현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초창기 필요한 자금을 공급했다. 당시 상당한 위험을 감수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보수적으로 변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와 금융 위기를 거친 탓이다. 가계 대출, 부동산 대출 금융 등 ‘비생산적 금융’에 치중한다. 현실에 안주하니 돈이 돌지 않는다. 뭐든 정체되면 썩기 마련이다. 혈맥이 막혔는데 경제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경제 도약을 위해선 쟁쟁한 모험자본이 필수적이다. 시장 규모야 여느 나라 못지 않다. 문제는 질이다. 벤처캐피탈(VC)과 PE(사모펀드) 중심이다. 창업 생태계 조성 정책도 수없이 쏟아졌다. 정부 주도였다. 최근에도 ‘제2 벤처 붐 확산 전략’을 내놨다. 골자는 ‘벤처육성과 투자’= ‘혁신성장’이다. 청년 일자리 창출은 덤이다. 뭐가 선후인지는 알 수 없다.

재정이 뒷받침되는 벤처펀드는 정책적 목적을 띈다. 특정 분야로의 쏠림이 일어날 수 있다. 실리콘밸리처럼 ‘혁신을 위한 실패’에 지원하기 어렵다. ‘혁신을 위한 성공’에만 지원한다는 비아냥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벤처 업계는 “시장은 죽었는데 정부 지원 사업만 살아 있다”고 푸념한다. 정부 주도의 벤처 펀드가 모험자본의 활발한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쉽지 않다. 경험칙으로 안다.

그래서다. 소프트뱅크처럼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모험자본의 육성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경제 역동성을 높여야 한다. 당국의 PEF 규제 완화 방침은 그 시발점이었다. 효율적으로 자금을 투자하고 회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거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편안이 3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된다. 여의도가 이번엔 제대로 일을 해줘야 한다. 법 통과가 시급하다. 한때 사모펀드를 신자유주의의 첨병쯤으로 백안시할 때도 있었다. 시대가 변했다. 이젠 ‘돈에 모험을 허(許) 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머니투데이



김익태 증권부장 epp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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