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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만물상] 뉴욕 건축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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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뉴욕에서 구겐하임 미술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밖에서 보면 원뿔이 거꾸로 땅에 박힌 듯한 모양이다. 안에 들어가면 맨 위층에서 나선형 램프를 걸어 내려오며 작품을 감상한다. 처음엔 '미술관 기능에 맞나?'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젠 아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상징하는 20세기 '아메리칸 드림' 건축에서 벗어난 현대 뉴욕 랜드마크가 됐다. "건축을 조각으로 승화시킨 디자인"이란 평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스페인 해안 도시 빌바오에도 들어섰다. 겉모습은 황금빛 물고기들이 몰린 것 같기도 하고 화려하게 피어난 꽃 같기도 하다. "퇴락했던 도시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빌바오 구겐하임은 "건축이 문화를 만든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이 건물을 보러 해마다 100만 관광객이 찾아온다. '도시 상징'이 아니라 '흥망'을 좌우한 셈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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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국내 신문에 최근 완공된 뉴욕 건축물이 크게 소개됐다. 뉴욕 맨해튼 허리 서쪽 허드슨강변에 들어선 건물 '베슬(Vessel)'이다. '그릇' 혹은 '배'라는 뜻인데, 52~101층짜리 빌딩 16동이 들어설 부지 한가운데 우뚝 섰다. 15층짜리 이 건물은 2500개 벌집 모양 계단으로 이뤄졌다. 벌써 "초대형 조각품"이란 평이 나오고 있는데, 앞으로 뉴욕 방문객이 찍는 사진의 단골 배경이 될 것 같다. 금싸라기 땅에 벌집 계단으로 랜드마크를 세우는 예술적 상상력이 꿈의 도시 '뉴욕'을 만들어가고 있다.

▶뉴욕시는 할렘을 개발할 때 빈 건물 한 채당 1달러에 100년을 임대해줬다. 그러자 어떤 개발 업체들은 한 블록을 통째로 거저 얻은 뒤 리모델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블록 전체를 탈바꿈시켰다. 이번 벌집 건물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탄생했다. 개발 업체에 과도한 혜택 아니냐는 말도 있었으나 관광 수요를 만들고 일자리와 세수(稅收)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건축가 유현준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인간과 하늘이 줄다리기를 한 결과물"이라고 했다. 서울은 도성을 둘러싼 산들이 스카이라인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성냥갑 같은 아파트와 의미 없는 콘크리트 빌딩들이 산(山) 능선을 아무렇게나 잘라냈다. 그나마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100년을 버틸 현대 건축물로 꼽는 이들이 있지만 그 외에 무엇이 있느냐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건축 심의를 일이 되는 방향이 아니라 안 되는 방향으로 한다. 여기에 예술적 미(美)와 파격, 미래 비전은 설 자리가 없다.

[한현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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