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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265] 스핑크스 앞에 선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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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기자의 거대한 스핑크스를 마주 대한 나폴레옹이다. 1868년 프랑스의 화가 장 레옹 제롬(Jean-Léon Gérôme ·1824~1904)이 이집트를 수차례 방문한 다음 그렸다. 낯선 풍경과 이국적인 문화, 그리고 장엄한 역사에 매료된 제롬은 가벼운 일상의 주제를 짧은 붓터치로 그려내는 인상주의가 등장하던 무렵, 전통적인 화법을 고수하던 화가이자 교육자였다.

조선일보

장 레옹 제롬, 스핑크스 앞의 보나파르트, 1867~68년, 캔버스에 유채, 61.6㎝×101.9㎝, 캘리포니아 샌시메온, 허스트 캐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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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이 이 그림을 살롱에 전시했을 때의 제목은 '오이디푸스'였다. 그리스 신화 속의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를 풀고 영웅이 된 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취하는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 스스로 자기 눈을 찌르는 비극적 인물이다. 오이디푸스가 이겨낸 역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스르지 못한 운명과 차마 떨치지 못했던 욕망의 처참한 최후에 대해 나폴레옹이 몰랐을 리 없다.

허물어진 스핑크스의 얼굴과 화려한 제복을 갖춰 입고 반들거리는 준마 위에 앉은 나폴레옹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저 멀리 언덕 아래에선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프랑스 군대의 함성이 울려 퍼지겠지만 나폴레옹과 스핑크스 사이에는 침묵이 흐를 뿐. 수천 년 전 천하를 호령하던 이집트 왕국은 모래바람 날리는 사막 한가운데 이토록 거대한 스핑크스만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찬란했던 왕국의 허망한 말로 또한 나폴레옹이 몰랐을 리 없다.

당시 프랑스의 국민 영웅이던 장군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 이후 프랑스로 되돌아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마침내 황제로 등극했지만 그의 마지막 또한 오이디푸스와 이집트처럼 쓸쓸했다.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근 반세기가 지나 그마저도 낭만적 역사가 된 시절에 이 그림은 많은 인기를 누렸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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