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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매경춘추] 20년 前과 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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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 모습이 제 모습입니다. 지금 보고 계신 저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1999년 11월 11일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충북지회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던 날, 원고를 모두 외우고 단상에 섰건만 두 줄도 채 지나가기 전에 눈앞이 깜깜해져 버벅대며 나온 말이다.

20년이 된다 벌써….

협회장이 돼 전국 지회장 취임식에 가보면 모두들 똑똑하고, 인사도 또박또박 실수 없이 잘한다. 지자체장들 관심도 크고, 내빈들도 많이 온다. 포크와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며 우아하게….

취임하는 모습도 참 많이 변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도 달라졌다. 뒤통수 나온 브라운관 TV도 없어졌고, 우리 집 냉장고도 원도어(one-door)에서 투도어(two-door)로, 거기에 김치냉장고 2개까지 합하면 총 3개, 가스레인지도 인덕션으로 바뀌었다. 바쁘다고 동동대며 키우던 딸들도 어느새 결혼해 손자·손녀까지 모두 10명의 가족이 됐고, 협회 회원 수도 늘었다. 나는 20살이나 더 먹었고, 주름살도 늘었다.

그런데 전국에 있는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 창업보육실을 둘러보고 깜짝 놀랐다. 20년 전 보육시설의 공간·시설·규격(평균 33㎡/실)이 아직까지 그대로다. 답답하게 막혀 있는 입주 공간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이곳에서 일하는 창업자들이 창의적인 생각으로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정말 염려됐다.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고마워해야 하나? 미안해해야 하나?

최신 미디어를 접할 때면 나는 가끔 헛살았고, 너무 뒤처져 있고, 지금까지 뭐했나 싶기도 하다. 또 세상이 하루하루 너무 빠르게 변하는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급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성 창업 공간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 참 안타깝다.

20년 후 미래를 생각한다. 자녀가 있는 여성 창업자가 안심하고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수유실과 놀이시설 등 보육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창업자 간 협업을 하거나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의 코워킹 스페이스로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해본다. 그리고 현재에 안주하기보다 한 발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본다.

[정윤숙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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