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OO 열풍’을 소개하며 적은 헤드라인입니다. 누구에 대한 설명일까요. 일명 ‘티티춤’으로 일본을 휩쓴 트와이스? 케이팝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
땡! 모두 아닙니다. 일본 대표 아이돌을 위협하고, 현지 아티스트들의 꿈의 무대 입성도 노리는 이들은 바로 ‘브이튜버(V-tuber)’입니다. 브이튜버란 단어, 생소하시죠.
브이튜버는 ‘가상의’라는 뜻의 영어 버추얼(Virtual)과 1인 미디어 창작자를 일컫는 유튜버(Youtube)를 붙여 간략히 줄인 말입니다. 인간 크리에이터처럼 유튜브 채널 등에서 활동하는 컴퓨터그래픽(CG) 캐릭터를 가리킵니다.
세계 최초 브이튜버 ‘키즈나 아이’의 유튜브 채널 ‘아이찬네루’. 15일 현재 채널 구독자는 247만명이 넘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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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튜버, 그들은 누구인가
브이튜버가 하는 일은 인간 유튜버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게임 실황을 중계하고, 새로 나온 애플리케이션을 써본 뒤 후기를 남깁니다. 노래하고 춤추며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시청자들과 대화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저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들과 달리 능동적이고 상호작용 가능한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지요. 물론 그 뒤에 인간이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요. 일본 NHK방송에 따르면 3월 현재 7000명 이상의 브이튜버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브이튜버가 처음 세상에 나타난 것은 2016년 말. 일본의 웹 개발사 액티스8이 세계 최초 브이튜버 ‘키즈나 아이’를 탄생시키면서입니다. 긴 머리에 귀여운 얼굴을 한 소녀의 모습으로 등장한 키즈나 아이는 빠른 속도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2017년 말 20만명이었던 키즈나 아이의 유튜브 채널 ‘A.I. 채널’ 구독자는 10개월만에 200만명을 넘겼습니다. 15일 현재 구독자 수는 247만여명입니다. 구독자수 120만명을 넘어선 게임 실황 전용 채널 ‘A.I. 게임즈’를 더하면 360만명에 이릅니다. 일본 대표 아이돌 AKB48의 채널 구독자가 231만명이니 그 어머어마한 인기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지난해 6월에는 2번째 생일을 맞아 도쿄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키즈나 아이 등장 이후 유사한 브이튜버들이 속속 데뷔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일본 전역에 브이튜버 열풍이 본격화 했지요. 지난해 12월 현지 소셜미디어가 뽑은 ‘2018년 인터넷 유행어 100’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10위 안에는 ‘전뇌소녀 시로’를 포함해 2명의 브이뷰터가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유튜브사의 문화·트렌드 매니저인 케빈 알로카는 “2017년 말부터 (브이튜버의) 도약을 목격했다”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키즈나 아이가 지난 2월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시청자의 고민을 상담한 뒤 다른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실시간 서택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키즈나 아이 채널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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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반경 넓히는 브이튜버…기업·지자체도
브이튜버의 활동 영역은 유튜브를 넘어 점차 넓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TV프로그램에도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NHK는 지난해 10월 노벨상 관련 방송에 키즈나 아이를 기용했습니다. 키즈나 아이가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질문을 하면 수상자들이 이에 대한 답변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NHK의 이 선택은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공영방송이 신체 일부가 강조되는 의상을 입는 등 성적대상화된 캐릭터를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실제 현재까지 인기를 얻고 있는 브이튜버 대부분은 젊은 여성 캐릭터입니다.)
일본 주류업체 산토리의 브이튜버 ‘산토리노무’. 산토리 공식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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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브이튜버의 인기를 홍보에 활용하려는 것이지요.
일본 대형식품업체 산토리는 지난해 8월 자사 공식 브이튜버 ‘산토리노무’를 선보였습니다. 산토리노무는 산토리 창립년도인 1899년 태어나 현재 120살로, ‘물의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설정입니다. 산토리의 주력 상품인 음료에 맞춰 만든 콘셉트입니다. 산토리노무는 각종 제품을 홍보하는 것은 물론 트위터 등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며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산토리 관계자는 “지금까지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객과 접점을 만들거나 정보를 내보내는 데 힘써왔지만, 최근 유튜버의 영향력을 실감하고 브이튜버를 쓰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본 이바라키현이 지난해 8월 선보인 브이튜버 ‘이바라히요리’ . ‘이바키라TV’ 방송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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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튜버를 전면에 내세운 지자체도 생겼습니다. 일본 이바라키현은 지난해 8월 첫 지자체 공인 브이튜버 ‘이바라히요리’를 공개했습니다. 이바라히요리는 유뷰트 채널은 물론 이바라키현 지역방송인 ‘이비키라 TV’에서 활동하며 현내 관광지와 대표 먹거리를 소개합니다. 동명의 도시(야마가타현 야마가타시)에 밀려 낮은 지명도에 고민해 온 기후현 야마가타시도 타개책으로 브이튜버를 선택했습니다. 지난 1월 데뷔한 ‘야마가타 사쿠라’는 전용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야마가타시 특산품인 수도꼭지 밸브를 홍보합니다.
■왜 브이튜버에 열광하나
사람들은 왜 브이튜버에 열광할까요. 가상현실(VR)을 전문으로 하는 일본 매체 ‘파노라’의 미노루 히로타 편집장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인간) 유튜버들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미 포화상태가 됐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 가운데 브이튜버가 나타났고 사람들은 흥미를 느끼게 됐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많은 브이튜버는 단순한 CG 캐릭터가 아니다. 뒤에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며 “3D·CG에 스며든 인간성을 포함한 세계관이 지금까지 없었던 매력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기업과 지자체가 브이튜버를 선호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선 비용 절감 효과가 큽니다. 광고 영상에 인기 연예인을 출연시킬 경우 고려할 것이 많지요. 출연료는 물론 촬영비와 스튜디오 대여료 등이 필요합니다. 메이크업 비용, 의상비도 들지요. 연예인의 스케줄도 생각해야 합니다. 반면 브이튜버는 낮이든 밤이든 언제든 제작이 가능합니다. 스케줄을 고려할 필요가 없으니 원하는 때에 원하는 콘텐츠를 내보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문화 덕분에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데만 성공하면 해외에 알리는 데에도 비교적 용이합니다.
제작자에겐 기술 발전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캐릭터를 만드는 일이 상대적으로 쉬워졌고 비용도 적게 듭니다. 2000년대 초반 사이버 가수 아담이 활동하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입니다.
■관련 산업도 ‘쑥쑥’
브이튜버 인기가 고공행진하며 관련 기업들도 바빠지고 있습니다.
일본 게임 제작회사 ‘그리(Gree)’는 지난해 100억엔(약 1017억원)을 투자해 브이튜버 전용 회사를 세웠습니다. 누구나 원한다면 간단히 캐릭터를 만들어 브이튜버로서 활동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했습니다.
그리의 다나카 요시카즈(田中良和)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NHK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SNS 발달로 글이나 사진으로 나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간단해졌습니다. 유튜버로서 영상을 활용할 수도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유튜버를 꿈꾸면서도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브이튜버는 익명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여러개 가진 사람이 있는 것처럼 브이튜버용 가상 캐릭터를 여러개 갖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올지도 모릅니다.”
■가상 캐릭터 활약…인간 대체할 날 올까
중국 신화통신이 지난해 11월 공개한 인공지능(AI) 앵커. 신화통신 공식 트위터 계정 갈무리 |
세계 최초 3D 디지털 슈퍼모델 슈두. 슈두 공식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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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튜버 외에도 가상 인물들의 활약을 우리는 매일 목격합니다. 겉모습으로는 구분조차 어려운, 진짜 ‘사람’ 같은 가상의 인물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인 세계 최초 3D 디지털 슈퍼모델 ‘슈두’입니다. 슈두는 영국 출신 사직 작가 캐머론 제임스 윌슨이 3D 기술을 이용해 만든 ‘버추얼 모델’로, 지난해 프랑스 명품 브랜드 발망의 가을 캠페인 모델로 기용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난해 11월에는 인간의 모습을 한 세계 첫 인공지능(AI) 뉴스 앵커도 등장했습니다. 중국 신화통신이 선보인 AI 앵커는 자사 소속 남성 앵커 추하오의 얼굴과 입 모양, 목소리를 합성해 만들어졌습니다. 기자들이 컴퓨터에 뉴스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이 앵커의 목소리와 몸짓을 똑같이 따라하며 이를 읽습니다. 이 앵커는 인간과 달리 24시간 지치지 않고 뉴스를 전달할 수 있지요. 신화통신은 AI 앵커를 인간 앵커가 없는 심야나 새벽 시간대에 활용할 예정입니다.
가상의 인물을 구현하는 기술이 참 빠르게 발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아바타’ 하나쯤 갖게 되는 날이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AI 발전이 인간의 직업을 잃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데요, 이러다 가상 인간들이 진짜 인간을 대체하는 때도 오게 될까요.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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