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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IF] 인간의 욕심, 침팬지들 문화까지 없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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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타이국립공원에 사는 침팬지들은 돌로 열매를 내리쳐 껍질을 깨고 알맹이를 꺼내 먹는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머지않아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인간이 숲을 파괴하면서 침팬지 개체 수가 줄어들 뿐 아니라 돌을 쓰는 기술처럼 대(代)를 이어 전해지던 침팬지 무리의 문화까지 말살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연구소의 애미 칼란 박사 등 과학자 70여 명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진은 지난 8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인간의 영향권에 가까이 있는 침팬지 무리에서는 일종의 문화처럼 전승되던 행동들이 9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조선비즈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타이국립공원에 사는 침팬지들이 돌로 열매껍질을 깨서 알맹이를 꺼내 먹고 있다. /독 막스플랑크 진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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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2010년부터 침팬지 서식처 46곳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했다. 여기서 나온 영상 수백만 건을 침팬지 행동을 연구한 논문 450편과 비교했다. 연구진은 침팬지 144무리에서 31가지 행동이 문화처럼 대를 이어 전수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돌로 열매를 깨거나 나뭇가지로 벌집에서 꿀을 꺼내고 흰개미를 잡아먹는 등의 행동들이다. 수컷들이 돌을 나무에 던지며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행동들도 전승되고 있었다.

분석 결과, 벌목지처럼 인간의 영향권에 가까운 곳에 있는 침팬지 무리에서는 문화적 행동이 88%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져 사는 무리에서는 20가지 정도의 문화적 행동이 관찰되지만, 인간과 가까운 무리에서는 두세 가지 정도밖에 확인되지 않았다.

인간이 영장류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설은 2002년 스위스 취리히대의 카렐 반 샤이크 교수가 처음 제안했다. 그는 오랑우탄 연구를 근거로 인간이 대형 영장류의 서식지를 파괴하면 열매와 같은 주요 자원과 연관된 행동이 후대로 이어지지 못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단단한 열매를 맺는 나무가 사라지거나 나이 든 영장류가 밀렵으로 희생되면 어린 동물이 돌로 열매를 깨는 행동을 배울 기회가 아예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이 주장을 실제 야외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입증했다.

칼란 박사는 "침팬지 보존 프로그램에서 그들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문화적 지식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침팬지의 중요한 행동을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침팬지 문화 유적' 개념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침팬지 외에도 다른 대형 영장류와 고래·돌고래·철새 보호에 문화적 요인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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