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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대구 사우나 화재 때 몸 던져 시민 구한 이재만씨 “자는 사람 깨워야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뛰어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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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 시킨 뒤에 나오다 갇혀

물수건으로 30분 버티다 구조

경향신문

“사람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대구 사우나 화재 때 구조 작업을 돕느라 건물에 갇혀 있다 가까스로 구조된 이재만씨(66·사진)는 13일 경향신문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불이 난 건물 5층에 살던 주민이었다.

이씨는 화재 당일 오전 6시55분쯤 사우나에서 나와 계산대 앞에서 직원과 얘기를 나누던 중 불길을 발견했다. 출입문 밖에서 뭔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나는 사실을 업주에게 알렸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업주가 문을 연 순간 불길과 연기가 순식간에 밀려들어왔다고 했다. 업주는 거센 불길에 미끄러져 바닥에 쓰러지기까지 했다. 이씨는 “불길이 들이닥치자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이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며 곧장 휴게실로 달려갔다고 했다. 그는 사우나 안에 이용객 10여명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불이야”라고 크게 외쳤다.

헬스장 이용객 3~4명에게도 불이 난 사실을 알리고 건물을 빠져나가도록 했다.

다시 목욕장 안으로 들어온 이씨의 눈엔 불길을 보지 못한 채 몸을 씻고 있는 이용객들이 들어왔다.

이씨는 이들에게도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2분도 채 안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경찰은 남자사우나 안에 있던 이용객 수가 모두 17명이라고 했다.

잠시 후 목욕장 입구에서 3~4m 떨어진 곳의 천장 일부가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연기와 불길이 천장에서 밀려 내려왔고 입구는 막혀버렸다. 목욕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대피한 뒤였다. 이씨는 미처 대피하지 못해 다른 이용객 1명과 목욕장 안에 갇히게 됐다.

이씨는 “탈출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타월 20장가량을 움켜쥐고 불길을 피해 목욕장 가장자리로 갔다”면서 “전기 공급이 끊기면 전등도 꺼질 게 뻔해 살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목욕장 구석으로 이동해 몸을 구부리고 앉은 이씨는 물에 적신 수건을 입과 코에 대고 숨을 쉬었다.

호흡이 힘들어 최대한 몸을 낮췄지만 이내 식도까지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제천 화재 참사가 생각났고, ‘이대로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약 30분을 버틴 이씨는 주변을 살피며 불길과 연기가 사그라든 것을 확인했다. 목욕장을 나온 그를 소방관이 발견했고 당일 오전 7시33분쯤 건물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씨는 20년 전쯤 경북 포항 한 해수욕장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40대 여성을 구조하기도 했다. 그는 “평소 위급 상황에서 이런(구조 활동을 벌이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번처럼 나섰을까 싶다”면서 “주민들을 구조할 수 있어 기쁘지만 그다지 칭찬받을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대구 중부경찰서는 조만간 이씨에게 ‘용감한 시민상’을 주기로 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씨의 헌신으로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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