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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생생확대경]최저임금 결정때 정부 책임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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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데도,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고 책임을 지울 방법도 없으니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린다면서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다. 2년 새 29% 넘게 치솟았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치구호는 실물경제에서 작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업과 자영업자가 감당할 수 없는 임금의 여파로 일자리 질이 나빠지는 가운데 노사 관계도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렇다고 정부의 바람대로 저소득층의 삶이 나아진 것도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의 소득 격차는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저소득층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일자리의 질이 나빠져 근로소득이 대폭 줄어든 탓이다.

그동안 최저임금을 정부 마음대로 정한 것은 아니다. 1988년 이후 최저임금 인상률은 노·사·공익 대표들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해 왔다. 하지만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을 정부가 추천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정권에 따라 좌우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논란이 계속되자 정부는 지난달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고, 결정 기준에 고용 영향, 경제 상황 등을 포함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한다는 의혹을 불식시키고 객관성을 담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구간을 정하는 구간설정위원회 구성을 놓고 또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노·사·정이 각각 5명씩 총 15명을 추천하고, 이 가운데 노사가 각각 3명씩을 순차 배제해 9명으로 구성키로 한 점 때문이다. 노사가 상대방 추천 위원 3명씩을 집중적으로 배제할 경우 노사 추천 위원은 2명씩만 남게 되고, 정부 추천 위원은 그대로 5명이 남아 결국 정부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상황에선 앞으로도 최저임금 결정에 따른 부작용이 지속되고 책임론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정부에서는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됐지만, 친기업 성향의 정부가 집권하면 지금과는 정반대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최저임금 부작용을 정부가 책임지기는 어렵더라도, 결정 과정에서 정부의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지금도 정부는 최저임금안에 따라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어려우면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지만, 지난 30여 년 간 정부가 검토의견을 제시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정부가 적정 또는 부적정 의견을 의무적으로 공표하도록 법을 고치면 정부의 책임성이 제고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1일 한국의 빠른 최저임금 인상 속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앞서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지난 4일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로 낮췄다. 이같은 전망을 내놓은 한 원인으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위축을 꼽았다. 문재인정부 소득주도성장론의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경고음이 예사롭지 않다. 국가 경제가 달린 문제를 책임있게 다뤄야 한다는 인식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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