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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오정근의 이코노믹스] 가계부채 1500조, 집값마저 하락땐 '하우스푸어'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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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자 평생 일해 집 한 채 보유

세금부담만 늘어 노인 빈곤 심화

부동산 거래 급격히 둔화되면서

건설 부문 250만 취업자 직격탄

일본 집값 꺼지며 ‘잃어버린 20년’

미국은 부동산 살려 침체 벗어나

부채 디플레이션 부르는 가격 옥죄기 부동산 대책
부동산 시장이 굉음을 내고 있다. 거제·창원·군산 같은 ‘러스트 벨트(산업 쇠락지역)’가 늘어나면서 지방 아파트 값은 지난달까지 37개월 연속 하락했다. 제조업 침체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집값이 폭락하고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의 여파다.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될까. 미국과 일본의 경험을 통해 그간 추진된 부동산 정책의 효과와 파장을 짚어봤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다음 달인 2017년 6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10% 포인트씩 낮추는 대출 억제를 골자로 6·19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8·27 부동산 대책, 9·13 부동산 대책, 9·21 공급대책,12·24 공시지가 상향 조정등 정부 출범 이후 22개월 동안 무려 10여 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두 달 만에 하나씩 부동산 대책을 쏟아낸 셈이다. 주요 골자는 재건축 규제 등 규제 강화,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강화 등 세금 중과와 금융 억제다.

점차 부동산 공시가격도 크게 올릴 예정이다. 이에 따라 공시가격 기준으로 계산하는 종부세·건강보험료 등이 함께 오르게 된다. 한국의 노·장년들은 평생 일하고 겨우 집 한 채 가지고 퇴직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하나 있는 집마저 내놓으란 말이냐’는 비난이 거세다. 퇴직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재취업하기도 어려워졌다. 수입도 없는데 세금 부담만 늘어 그렇지 않아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인 노인 빈곤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 연이은 고강도 부동산 대책으로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서고 거래는 급감하고 있다. 전세가도 동반 하락해 깡통전세 대란도 우려되고 있다. 건설 경기 침체로 주로 임시직·일용직 중심인 건설부문 250만 명 취업자의 고용 사정 악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건설산업연구원은 32만명의 고용이 감소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처럼 부동산가격은 무조건 잡기만 하는 것이 최선인가.

중앙일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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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대해 어빙 피셔(Irving Fisher, 1867~1947) 시카고대 교수는 ‘부채 디플레이션’을 주장했다. 부채는 있는데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가계의 실질부채부담이 증가하게 된다<그림 1>. 특히 담보대출을 받은 경우 부동산가격이 하락하면 구입한 부동산에 대한 실질부채 부담이 올라가게 된다. ‘하우스 푸어’ 문제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도 주택가격이 하락하던 2013년 과도한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고통받는 하우스 푸어 문제가 사회·경제적 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다. 당시 32만 가구의 하우스 푸어들이 26조원의 부채를 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심지어 주택가격 하락으로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다 갚을 수 없는 깡통주택이 등장하기도 했다.

집값이 이처럼 하락하는 상황에서는 집을 사기보다는 우선 전세로 있어 보자는 심리가 확산되면서 집값은 하락하는데 전세값은 올라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반환하기 힘든 깡통전세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더구나 지금은 1500조 원이 넘는 가계 부채를 짊어지고 있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가계가 나오면 금융 부실이 증가하면서 금융회사들은 신규대출 여력이 줄어들어 투자와 소비를 더욱 얼어붙게 한다<그림 2>. 그런데 민간소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7년 기준 미국은 68%, 한국은 49% 등 대체로 50~60% 수준으로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부채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민간소비가 줄어 경기는 불황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부채 디플레이션 이론의 핵심이다. 어빙 피셔는 미국 대공황의 원인이 바로 이 부채 디플레이션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도 부채 디플레이션으로 설명된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이후 증가일로였던 경상수지 흑자가 85년 플라자 합의에 따른 엔화의 급격한 고평가로 줄어들고,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에 힘입어 거침없이 올라가기만 했던 부동산 가격도 1990년을 정점으로 하락하면서 91년만 해도 3.3%를 기록했던 성장률이 92년 0.9%로 급락했다. 이후 일본은 2011년까지 20년간 연평균 0.8%의 저성장에 머무는 ‘잃어버린 20년’의 고통을 겪었다. 80년대 후반 경상수지 흑자 기간 중 일본은 부동산 개발업자를 중심으로 미국 부동산 등 외국자산에 엄청난 투자를 했는데 엔화가 고평가되면서 막대한 엔화평가 투자손실이 발생한 점과 90년을 정점으로 35~54세의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점도 중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금융부실이 심화되고 신용경색으로 투자도 부진하면서 일본은 장기불황기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책을 추진해서 성공한 사람이 바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다. 미국에서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자 하버드대 시절 대공황을 연구했던 버냉키 의장은 2008년 10월부터 제로 금리 정책을 도입한 데 이어 12월부터 채권을 매입하고 돈을 대폭 푸는 전대미문의 양적 완화정책을 실시했다. 그런데 1차 양적완화(2008년 12월~2010년 3월)에 나설 때부터 3000억 달러의 국채 매입보다 훨씬 많은 1조4500억 달러의 주택저당채권을 매입했다. 3차 양적완화 (2012년 9월~2014년 10월) 때도 8400억 달러의 주택저당채권을 매입했다. 미 연준이 양적완화로 매입한 주택저당채권이 2조2900억 달러에 달한다는 얘기다. 미 연준은 양적완화로 3조9800억 달러의 자산을 매입해 본원통화를 풀었는데 이 중 57.5%를 주택저당채권 매입으로 충당한 셈이다.

미 연준의 이 같은 조치는 2007년부터 시작된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채권) 사태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급락한 부동산 가격을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바로 부채 디플레이션으로 초래될 수도 있는 장기불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폭락했던 부동산 가격은 2012년 초부터 반등하기 시작해 2015년경에는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민간소비가 살아나면서 2010년부터 회복되기 시작했던 미국경제는 완벽한 회복 궤도에 진입했다<그림 3>. 가계의 수입이 늘어나면서 OECD 기준 2008년 135%였던 가계부채 대비 가처분소득 비율도 100% 수준까지 하락해 가계의 부채부담이 줄어들면서 미 경제는 장기호황 국면에 들어갔다. 2009년 6월 이후 지난해 말까지 35분기째 호황을 지속해 종전 최장 호황기였던 1961년 2월~1969년 12월의 총 106개월(약 35분기) 장기 호황을 넘어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 갈라파고스 불황 초래하나
미국의 양적 완화정책을 더욱 강하게 따라간 아베 총리와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의 일본도 2012년부터 ‘잃어버린 20년’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장기호황에 접어들었다. 일본은 2012년 12월 이후 올 1월 기준 74개월 째 호황을 지속해 지금까지 최장 호황이었던 2002년 1월~2008월 2월의 73개월 ‘이자나미(いざなみ)호황’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 일본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지금 한국처럼 부동산을 무조건 억누르는 정책은 부동산만 보고 가계의 실질부채 부담이나 전체 경제를 보지 못해 가계 실질부채는 증가하고 있는데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는 부채 디플레이션을 발생시키고 있어 우려가 크다.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 실패한 정책을 재탕 삼탕하고 있는 모습이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OECD 기준 2008년 143%였던 가계부채 대비 가처분소득 비율이 최근 175%까지 상승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 등 명목 가계부채도 증가하고 있어 가계의 실질부채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의 소매판매액 증가율은 위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낮은 증가율 수준에서 횡보하고 있다. 미국·일본이 과감하게 추진해 전후 최장의 호황을 기록하고 있는 양적완화 정책은 도입도 하지 않아 세계 경제 호황 속에서 우리만 경기가 침체되는 ‘갈라파고스 불황’을 맞고 있다.

최근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 참사를 감안하면 앞으로 소비 부진은 더욱 심화될 우려가 크다. 결국 민간소비를 둔화시켜 한국경제를 장기불황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무리한 부동산 억제정책,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기업들을 해외로 내쫓고 있는 각종 기업 옥죄기 정책 등 끊임없는 포퓰리즘 정책이 한국 경제를 장기불황의 늪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영국 맨체스터대 경제학박사.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동남아중앙은행 조사국장을 거쳐 고려대 교수를 지냈다. 국제금융·한국경제·블록체인·핀테크가 주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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