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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매경이 만난 사람] 한미FTA 체결 때 활약한 `ISD 전문가` 신희택 무역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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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국내 최고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전문가로 알려진 신희택 무역위원회 위원장이 론스타, 엘리엇 등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한주형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의가 한창이던 2006년. 대다수 국민에게는 생소했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 '뜨거운 감자'였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인해 정부는 배상금을 물어주다 거덜 날 것이라는 시민단체들 반발이 거셌지만 한미 FTA는 체결됐다. 한미 FTA 타결 후 13년이 지난 지금 FTA 성과에 토를 다는 이들은 거의 없다. 당시 ISD 민관 태스크포스(TF) 공동위원장을 맡아 'ISD 전도사'로 활약했던 사람이 바로 신희택 무역위원회 위원장(67)이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ISD '판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위원으로 활약한 국내 최고 ISD 전문가다. 지금도 신 위원장을 포함해 ISD 중재인을 경험한 사람은 한국에서 단 3명뿐이다.

최근 들어 ISD가 다시 핫이슈로 부상했다. 우선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제기한 46억달러 규모 ISD가 연내 최종 판정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정부의 결정을 문제 삼은 ISD는 한미 FTA에 따른 첫 ISD로 기록됐다. 신 위원장은 "ISD는 정부 정책 결정의 합리성을 따지는 것"이라며 "갈지자 행보를 보인 정부 정책은 ISD의 타깃이 된다"고 밝혔다. ISD를 둘러싼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 정부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외국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한국 기업들로서는 ISD가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다는 반대급부도 있다. 그에게 ISD 이슈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론스타가 제기한 ISD 결과 발표가 임박했는데.

▷작년 11월 ICSID 중재판정부가 심리를 완결했는데 추가로 자료를 요청해 심리가 길어지고 있다. 연내에 결과가 나올 것이다. 세금과 외환은행 매각 건에 대해 정부가 일관된 정책을 폈는지, 정치적 상황 등을 이유로 론스타에 빌미를 줬는지 등이 쟁점이다. 어느 정부나 이상적인 정책만 펼칠 수 없기 때문에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론스타와 한국 정부 누가 이길 것 같나.

▷지금 단계에서는 정부가 전부 이길 가능성도 있고, 그 반대일 가능성도 있다. 현재 모든 예상과 추측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ISD에서 정부가 많이 패소한다고 하는데 ICSID는 물론 다른 중재기관까지 포함한 통계로는 정부가 이기는 경우가 더 많다. 정부가 피고이기 때문에 전부 이겨야 승소한 것으로 보고 투자기업은 일부만 이겨도 승소한 것으로 판단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엘리엇이 제기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ISD를 어떻게 전망하나.

▷엘리엇이 한미 FTA에 따라 제기한 첫 번째 ISD이다. 현재 법원에서 진행 중인 재판에서 삼성의 잘못이 일부 인정됐다. ICSID에서 각 당사자 측 중재인들이 모든 상황을 검토하기 때문에 이런 사실들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우리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잘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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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영리병원 허가가 취소되면서 중국과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정부가 갈지자 행보를 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ISD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중재 결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 결정이 합리적 재량의 범위를 넘었느냐다. 외국인이라서 안 된다기보다는 국내 영리병원 설립에 장애가 많지만 투자하면 설립 허가를 위해 노력한다는 정도였다면 정부 책임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투자만 하면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해 준다고 약속했다면 정부가 불리할 것이다.

―ISD가 선진국 글로벌 기업들에만 유리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ISD는 투자자와 투자유치국 간 분쟁이 생기면 본국 정부의 관여 없이 국제중재로 처리한다는 일종의 약속이다. 1990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ISD 조항을 담은 투자보호협정이 본격적으로 체결됐다. 북한도 14개국과 투자보호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ISD가 80~100건 제기된다. 스페인을 상대로 전 세계 재생에너지 기업들이 40건 넘게 ISD를 제기하기도 했다. 선진국이냐, 개도국이냐 문제가 아니라 정부 정책에 일관성이 있느냐, 신뢰를 파기했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 기업이 외국 정부를 상대로 ISD에서 승소한 게 있나.

▷ISD를 제기한 게 총 5건 정도다. 오만을 상대로 삼성물산이 제기한 건 중간에 화해하는 쪽으로 결정됐고, 중국 정부를 상대로 중소기업이 제기한 건 패소했다.

―한국 기업들이 ISD 제기에 소극적인 것 같은데.

▷롯데그룹이 중국에서 사드를 이유로 핍박당했을 때 ISD를 제기했어야 했다. 한국과 중국은 양자 간, 한·중·일 등 삼중으로 투자보호협정을 맺고 있다. 롯데 입장에서는 영업을 계속해야 하니 보복이 두려웠겠지만 ISD를 제기했으면 국제사회에 중국의 치부를 드러내게 되고 중국 정부도 함부로 못했을 텐데 아쉽다. 직접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면 일본이나 유럽 등 롯데 법인을 통해 우회적으로 충분히 제기할 수 있었다.

―ISD가 정부에 부담된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는 ISD가 없으면 편할 수 있겠지만 국내외 투자가 많은 입장에서는 기업을 보호하는 측면이 많다. 미·중 간 지식재산권 문제가 이슈인데 양국 간 ISD가 담긴 투자보호협정이 없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ISD 조항이 있으면 기업들이 보호받을 수 있다.

―한미 FTA 체결 당시 ISD가 독소조항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한미 FTA 체결 이전에 한국은 이미 세계 80여 개국과 ISD가 담긴 양자 투자보호협정을 맺고 있었다. 론스타 ISD 역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과 맺은 투자보호협정에 따른 것이다. 전 세계에 100개 가까운 양자 투자보호협정이 있고, 그중 80여 개에 ISD가 담겨 있다. 한미 FTA로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해 엘리엇이 제기한 ISD가 한미 FTA에 따라 제기한 첫 ISD다. 지금 한미 FTA 성과를 생각하면 당시에 체결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할 뻔했나.

―최근 들어 ISD 개혁 움직임이 있는데,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ISD 절차가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고, 중재판정부 구성이 선진국 위주라는 지적도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국내 기업들보다 외국 투자자들에게 특혜를 준다는 비판도 있다. ISD 조건을 엄격하게 하는 등 균형을 잡아보자는 논의가 시작됐다. ISD 상설 법원을 만들자는 주장도 있다. 외국인 투자 유치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하고 동시에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이 합리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세계적인 흐름을 보면서 기존 협정들을 수정하고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이란 다야니의 ISD 소송으로 한국 기업들이 자산 압류 위기에 처했는데.

▷다야니에서는 몰수된 입찰보증금을 돌려 달라는 건데, 인수·합병(M&A) 관행으로는 돌려줄 필요가 없다. 일단 계약금 일부를 돌려주라는 판결이 나왔고 당시 한국 채권단은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는데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다.

―미국 자동차 232조, 미·중 무역분쟁 등 통상 위협이 커지고 있는데 대응 방안은 무엇인가.

▷세계무역기구(WTO)나 FTA와 같은 기반 위에서 수출을 키워 가는 게 한국이다. 미국처럼 국제적인 룰에 기초하지 않고 힘 대 힘으로 이익을 나누자고 나오면 우리는 설 땅이 없어지게 된다. 자동차 분야도 국가안보 개념으로 확장해 제재하다 보면 그 영향을 가늠할 수 없다. 국제 질서 안정성이 깨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 정부와 기업들이 각자도생하기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특히 현대차, 삼성전자 등 기업들이 수출국에서 생산공장을 운영 중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갈수록 통상분쟁이 격화되고 있어 국제 통상 전문성을 키우고 전문 인력 육성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판검사 대신 김앤장 선택…국제 M&A전문가로 활약, 국제중재센터 의장 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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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들은 더 이상 낯선 곳에서 힘든 중재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습니다. 국제중재센터가 이제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어요."

신희택 무역위원회 위원장은 오는 8월 임기가 만료되면 대한상사주재원 국제중재센터 의장직에 전념하게 된다. 그동안 불공정 무역행위에 따른 국내 산업 피해를 구제하는 데 앞장섰다면 이젠 해외에서 기업 간 분쟁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에 매진할 계획이다.

2016년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로 확대 이전한 국제중재센터는 그동안 국제 기업 간 분쟁 시 해외에서 비싼 비용을 들여 소송을 진행하던 국내 중소업체들에는 '단비'와 같다. 신 위원장은 "그동안 기업들은 국제상업회의소가 있는 파리나 런던,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소송을 해왔다"며 "이젠 서울에서 모든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중재센터에서 판정이 내려지면 국제 조약에 따라 전 세계 160여 개국에서 효력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신 위원장은 경기고부터 서울대 법대, 사법연수원까지 줄곧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로 유명하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도 최우등으로 졸업했을 정도다. 1980년 판검사 기회를 뒤로하고 김앤장에 들어갔다. 지금은 국내 최대 로펌이지만 당시에는 10여 명 규모의 작은 로펌이었다. 연봉 수십억 원을 받으며 국내 최고 국제 투자,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활약하던 신 위원장은 2007년 돌연 서울대 교수로 전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 위원장은 "집에선 40년간 가족을 위해 봉사했으니 남은 10년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더라"며 웃음을 지었다. 2017년 정년 퇴임했지만 지금도 매 학기 한 과목씩 열정적으로 강의에 나서고 있다. 과목은 물론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포함한 국제 투자분쟁이다. 매달 한 차례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ISD포럼도 열고 있다. 신 위원장은 "ISD에 대응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라며 "대한상사중재원에 ISD 모니터링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더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신 위원장은 현재 무역위원회에 계류 중인 카이스트와 애플의 특허 분쟁에 대해 "미국에서 진행 중인 재판과 국내 특허법원 소송 등 관련 판결이 마무리돼야 무역위원회에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희택 위원장은…

△1952년 부산 출생 △경기고 △제16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대 법학과 졸업 △예일대 법학박사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협상 자문변호사 △외교부 국제투자부문 자문위원 △ISD 민관TF 위원장 △서울대 법학과 교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위원 △국제중재센터 의장 △무역위원회 위원장

■ <용어 설명>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제도: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투자국에서 부당한 권한 침해를 당했을 때 국제기구의 중재로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 양국 간 투자보호협정이나 FTA 등에 채택된다. 1966년 설립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등이 한 해 ISD 사건 80여 건을 처리한다.

[임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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