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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정태명의 사이버펀치]<101>일관성 없는 R&D 정책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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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우리나라 연구개발(R&D) 투자가 50년 만에 2000배 성장, 20조원을 넘어섰다. 중국의 지난해 예산 230조원에 비교하면 왜소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4.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위다. 2019년도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도 7조1998억원으로 더 이상 예산을 탓할 수는 없다.

정부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과 정보통신기획평가원 등을 설치해 기획·평가 전문성과 연구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기초연구 지원 강화, 고위험·도전형 및 중장기 과제 확대 등을 통해 연구 환경을 개선하고 연계형 R&D 도입으로 성과물의 시장 진출을 지원할 계획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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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부의 대규모 투자와 노력에도 국가 R&D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연구 성과물 저조, 연구 성과 및 연구비 부정,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역할 미흡, 하향식 연구 과제 지정, 연구 과제 평가 전문성 부족 등에 관한 지적이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R&D 환경의 근본을 바꿀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R&D 기획·평가가 정권과 무관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체되는 수장과 변하는 R&D 전략이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인공지능(AI) 연구에 투입되는 1조원의 연구비가 회자되지만 경쟁력의 근원은 50년 동안 정권 교체나 경기 침체에도 정부가 대학, 연구소, 기업과 함께 만든 연구 환경이다. 우리나라도 2023년까지 AI R&D에 2조2000억원을 투입한다고 하지만 5년이라는 기간은 대형 AI 개발에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영국 경제학자 에이먼 버틀러의 “정치 의사결정은 시장 선택보다 비효율”이라는 주장처럼 정치권의 입김이 강한 환경에서 과학기술 강국은 불가능하다.

전체 R&D 예산의 41%를 차지하는 출연연 혁신이 필요하다. 연구보다 과제 수주를 우선하는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과감히 버리고 과제 수주의 노예가 된 연구자를 구출해야 한다. 연구자가 중장기 과제는 포기하고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과제 공고문을 들여다보는 기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수장의 임기 도중에 보여 줄 숫자 맞추기 게임에 동원되기보다는 박봉을 받더라도 언젠가 뛰어난 연구 결과로 대박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일관된 희망이 PBS를 대신해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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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정책 평가는 단순한 평가지수와 함께 연구비가 창출하는 사회 변화, 시장의 확대 정도, 글로벌 경쟁력 등 변화도 포함해야 한다. R&D 성과가 사회·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면 투자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과제 종료 3년 후 시장 평가를 시행해 연구 결과를 분석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우수한 결과물을 생산한 연구자에게는 조건 없이 후속 연구를 기획할 수 있는 특혜를 주는 것도 고려할 만한 보상 방식이다.

평가 기관은 내부 평가 전문가를 양성해 평가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외부 평가자에게 온전히 의존하면 공정성과 전문성 모두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급조된 소수의 외부 평가자가 다수의 과제를 평가하는 현재 방식으로는 양질의 평가가 불가능하다.

R&D를 기획·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시대 변화와 연구 특성을 모두 고려한 정책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연구자 자율의 일관된 연구 환경과 평가제도 혁신으로 제대로 된 성과를 만드는 R&D가 여는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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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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