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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71편] 병 자랑하듯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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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옛말에 ‘병은 자랑하라’는 말이 있다. 병이 들었을 때는 자기가 앓고 있는 병을 자꾸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하여 고칠 길을 물어보아야 좋은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이 말은 어느 정보 이해가 가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위기관리 컨설팅이나 자문을 컨설팅사에게 요청할 때는 기업이 일종의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중 대부분은 미리 대비하고 준비해서 어떤 형태로든 발생 가능한 위기를 좀 더 잘 관리하자 하는 광범위한 목적을 가진다.

그러나 그 다른 일부는 특정 위기를 내심 예상하고 있는 경우다. 곧 다가올 위기를 빨리 대비하고 대응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경우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기업은 특정 컨설팅사와 NDA(비밀준수계약)를 맺고, 자신이 예상하는 위기와 그 배경을 같이 공유한다.

이는 자신의 병을 주치의나 전문의에게 설명하고 그에 대한 치료나 수술 방법을 논의하는 것과 유사하다. 병을 ‘제한된 의사’에게 자랑하는 셈이다. 이는 일반적이며 합리적인 프로세스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문제가 될 수 있는 경우는 자신의 병을 ‘동네방네’ 자랑하는 경우다. 자사에게 발생될 위기나 이미 발생한 위기를 관리할 컨설팅사를 찾는다고 여기저기 소문을 내는 것이다. 평상시 같이 일반 대행사를 고용하듯 구매 프로세스를 꼼꼼하게(?) 거치는 기업들이다.

위기관리 컨설팅사들에 대한 롱 리스트를 뽑고, 그들 하나 하나를 면접하고, 그 중 쇼트 리스트를 정리한다. 심지어 그들에게 현재 상황에서 어떤 위기관리가 가능할지 제안서를 요청한다. 연 이은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최종적으로 함께 일할 위기관리 컨설팅사를 뽑는다.

일단 이와 같은 경우 앞으로 발생할 위기에 대한 정보는 외부 유출에 있어 통제가 불가능 해 진다. 상당히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해당 내용을 이미 인지하고 그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게 된다. 이로 인해 예상되던 위기의 본격적 발발 시점을 당기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위기 대비 대응 시점에도 큰 실기를 하게 된다. 위기관리에서 준비와 실행 타임라인이 매우 중요한데 이와 같이 장기간의 지루한 ‘병 자랑’은 해당 기업으로 하여금 타이밍을 놓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대비와 준비 작업에 있어서도 일정한 물리적 시간과 숙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루 아침 뚝딱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위기를 앞두고 공개적으로 병을 자랑해 해당 기업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구매 프로세스의 준수와 예산의 절감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가치들은 위기관리를 통해 얻고자 하는 정확한 가치가 아니다. 여기저기 새는 위기관련 정보들과 놓쳐버린 타이밍처럼 치명적인 결과를 감내하면서까지 꼭 챙겨야 하는 가치인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쟁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해당 위기관리 컨설팅사가 정확하고 현실적인 해법을 단박에 제시할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다.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컨설팅팀이 일정 시간을 집중해 관련 정보들을 해석하고, 시나리오와 대응안을 설계하는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한데, 며칠내에 이루어지는 인사이트나 아이디어 중심의 위기관리 제안은 완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위험한 피상적 제안이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예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위기관리 컨설팅 예산을 싸게 부른 컨설팅사가 상대적으로 피(fee)가 비싼 컨설팅사가 제공하는 가치에 버금가는 결과를 내 놓으리라는 법은 없다. 예산이 보기에 합리적이라고 컨설턴트들이나 결과가 분명 합리적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기업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극소수 신뢰할 만한 위기관리 컨설팅사와 일한다. 물론 평시부터 위기관리 컨설팅사와 지속적으로 케이스들을 공유하고 상시적으로 자문을 받아 협력 체계를 만들어 놓는다. 미리 필요한 진단과 훈련과 매뉴얼과 시뮬레이션 작업을 함께 하기도 한다.

병을 자랑하라는 이유는 자신의 병에 좋은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병이 매우 수치스럽거나 인식적으로 좋지 않은 것이라면 병에 대한 자랑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또한 그 자랑의 대상이 치료 방법을 제공하지 못할 대상이거나, 더 큰 병을 선물 할 대상이라면 병 자랑은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 믿을 수 있는 대상과 은밀하게 병을 제대로 치료하는 노력만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 정용민은 누구?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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