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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현장 in] '이전 vs 재건축'…위험하고 불편한 울산농수산물시장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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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개장해 낡고 협소…'옮기는 게 답' 여론에도 9년째 제자리

시장 법인 5곳 중 1곳만 이전 반대…"기득권 누리려고" - "재건축이 합리적" 맞서

연합뉴스

차들로 혼잡한 울산 농수산물도매시장
(울산=연합뉴스) 김용태 기자 = 지난 2일 울산 농수산물도매시장 내부가 협조한 주차공간으로 혼잡한 상태다. 2019.2.23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이렇게 위험하고 불편하다고 아우성인데, 왜 옮기지 않나."

올해 설 대목을 일주일여 앞둔 1월 24일 새벽 울산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건물 1개 동이 모두 불에 타 붕괴하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1천21㎡ 규모 수산물소매동 단층 건물은 불과 약 25분 만에 전소돼 무너져 내렸다.

소방서 추산 재산피해액은 13억5천만원이었는데, 상인들이 주장하는 피해 규모는 그 몇 배에 달했다. 화마로 점포를 잃은 횟집과 생선가게 등 78곳은 현재 텐트로 된 임시 판매장에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시장에서는 3년 전에도 추석 연휴를 6일 앞두고 불이 나 4개 점포가 불에 탔다. 방문객과 상인들이 많은 저녁 시간이어서 자칫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감식 결과 두 화재 모두 전기적 요인에서 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좁고 낡은 시장에 전자제품 사용이 늘고 전선이 어지럽게 얽히면서, 지금도 화약고 같은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여기에 부족한 주차공간, 교통 혼잡, 청결하지 못한 시장 환경 등 누적된 불만이 더해지면서 "시장을 옮기자"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농수산물시장 이전은 2010년부터 검토됐지만, 이전 대신 재건축을 원하는 일부 상인들의 요구와 국비 공모사업 탈락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울산시는 교착 상태에 빠진 시설현대화사업을 마무리하고자 최근 시장 종사자와 전문가 등이 포함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또 시설현대화 타당성을 조사하는 용역도 연말까지 끝낸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이전이나 재건축 가운데 최적 안을 선정한 뒤 내년에 정부가 시행하는 공영도매시장 시설현대화 국비 공모사업에 신청, 약 10년간 이어진 논란과 갈등을 끝낸다는 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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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4일 오후 울산시 남구 농수산물도매시장 수산물종합동 화재 현장이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도심 한복판에 낡고 좁은 시장…이전 추진 번번이 무산

농수산물도매시장은 국비와 시비 등 71억원이 투입돼 1990년 3월 개장했다.

현재 4만1천㎡ 부지에 도매시장과 소매시장 건물을 포함해 총 13개 건물(전체면적 2만4천757㎡)이 들어서 있다.

도매 거래 규모가 증가하고 소매 점포가 과밀화하면서, 공간이 협소하고 건물이 노후화됐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시장 주변은 주차 무질서가 만연하고, 각종 쓰레기와 오물 투기 등으로 열악해진 환경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도심에 위치해 접근성이 편리한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도심 교통 혼잡을 가중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시는 2010년부터 시장 이전을 검토했고, 2011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주관으로 타당성 검토 용역을 시행해 이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4년에는 국비 지원을 받고자 정부가 주관하는 도매시장 시설현대화 공모사업에 응모했으나, 2차 현장실사에서 탈락했다.

당시 시는 "시장을 이전하는 대신 현재 건물 재건축을 희망하는 일부 종사자들의 반대가 공모 탈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시는 지난 19일 '울산농수산물도매시장 시설현대화사업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본격적인 운영에 돌입했다.

송병기 경제부시장이 위원장을 맡은 추진위는 공무원, 유통·물류·도시계획 전문가, 유통 종사자, 생산자 등 위원 26명으로 구성됐다.

시는 또 올해 시설현대화 타당성을 조사하고 농수산물도매시장 활성화 방안을 찾는 용역을 다시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용역에서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오면 상반기에 농림축산식품부에 시설현대화사업을 위한 국비 공모에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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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농수산물도매시장 전경. [울산시 제공]



◇ '이전' 여론 우세, '재건축' 반론도 팽팽

시장 상인과 고객, 자치단체 모두 시설현대화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그 형태가 이전이냐, 재건축이냐를 놓고는 의견이 여전히 맞서고 있다.

현재 농수산물시장에는 울산중앙청과, 울산원예농협, 울산수산업협동조합, 울산중앙수산시장, 울산건해산물시장 등 5개 법인과 소매동 번영회 2개가 있다.

이 중 중앙청과만 재건축을 주장하고, 나머지 4개 법인과 2개 번영회는 모두 이전을 원하고 있다.

이런 구도만 보면 사실 여론의 무게중심은 이전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형국이다. "용역 결과에 따르겠다"고 공언한 울산시도 시장 이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대립하는 양측의 논리와 그 근거는 꽤 팽팽하다.

이전을 찬성하는 법인과 상인들은 도매시장 기능 향상을 위해 도심 외곽으로 이전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중앙청과만 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기심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한 상인은 24일 "중앙청과는 경매장 등이 시장에서 가장 좋은 요지에 자리 잡고 있어 장사에 유리한 점이 많다"면서 "만약 도매법인끼리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제도가 있었더라도 계속 시장 이전을 반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꼬집었다.

다른 상인은 "시장 이전은 규모 확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결국 법인 수 증가가 불가피하다"면서 "중앙청과는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이익이 감소하는 등 그동안의 독점적 지위를 잃게 될까 봐 고집을 부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가 지난해 '타당성 용역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수용하겠다'는 내용의 현대화사업 시행합의서를 각 법인과 번영회에 제시했을 때, 중앙청과만 서명을 거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앙청과의 억지스러운 몽니가 통하는 배경에 지역 유력 정치인의 영향력이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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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 울산시 남구 농수산물도매시장 수산물소매동 임시 판매장에서 상인들이 장사하고 있다. 울산시는 화재 피해를 본 수산물소매동 상인들을 위한 임시 판매장을 이날 개소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앙청과는 이런 주장을 모두 반박했다. 시장 이전을 무작정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재건축이 합리적이라는 점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우선 2014년 국비 공모에서 탈락한 것은 중앙청과 측의 이전 반대가 아니라, 당시 수행된 용역이나 사업계획이 부실했던 탓이라는 것이다.

특히 시장 이전에는 정부의 국비 지원이 어려운 상황인데도, 울산시 등이 마치 공모 신청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청과 관계자는 "2014년 공모사업 신청 때 울산시가 제시했던 용역을 보면, '인구가 49% 증가한다'는 등의 허황한 근거를 토대로 시장 이전 결론을 내렸다"면서 "실제로 평가결과에도 '기존 용역 결과를 단순 인용해 사업계획으로 미흡하고, 이전과 재건축에 대한 비교 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3년간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데, 기득권을 누린다는 주장이 맞느냐"고 반문하면서 "울산 도시 규모와 정체된 거래물량 등을 고려하면 시장을 확장해 이전하는 대신 현재 자리에 국유지 등을 편입해 재건축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다"고 덧붙였다.

합의서 서명을 거부한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지침이 정하는 추진위 구성도 안 된 상태에서 '결과를 무조건 수긍하라'는 서명을 강요해서 거부했던 것"이라면서 "추진위 운영과 용역 수행이 공정하고 정확하게 이뤄진다면 서명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병기 경제부시장은 "올해 진행할 용역은 현재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이전과 재건축의 경제성과 타당성을 면밀하게 따지는 과정이 될 것"이라면서 "그 결론을 토대로 법인 간 갈등을 수습하고, 공모 선정을 통한 국비 지원을 끌어내 울산의 숙원사업인 농수산물시장 현대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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