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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0 (목)

김정은 "나도 아버지…자녀들이 평생 핵을 지니고 살길 바라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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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앤드루 김 전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이 22일(현지시간) 미 스탠퍼드대학의 월터 쇼렌스틴 아시아ㆍ태평양연구소에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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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내 자녀들이 핵을 지닌 채 평생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간) 앤드루 김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은 지난해 4월 당시 CIA국장이었던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앤드루 김 전 센터장에 따르면 당시 폼페이오 장관은 김 위원장에게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의향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물었고, 김 위원장은 “나는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내게는 아이들이 있다”며 “나는 내 아이들이 핵을 지닌 채 평생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앤드루 김 전 센터장은 이날 스탠퍼트대학의 월터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에서 진행한 공개 강연에서 그동안 북미 막후 협상의 한가운데에서 느꼈던 소회와 전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앤드루 김 전 센터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에 빠짐없이 수행해 김 위원장을 여러 차례 면담하는 등 지난해 북미대화 재개와 지속에 핵심적 역할을 한 인사다.

앤드루 김 전 센터장은 가까이서 지켜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이 ‘정말로 핵심을 짚어내고 기술적으로 아주 정통하며 정말로 긍정적인 방식으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김 전 센터장은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아들 김 위원장을 비교했을 때 김 위원장이 상대적으로 훨씬 나은 협상 상대라고도 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그의 스타일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며 “두 사람을 비교해야 한다면 이 문제를 풀 상대로서 단연코 그의 아버지보다는 그와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내에서) 필요한 걸 얻기 위해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데 대해 모든 사람이 김 위원장의 주장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김 위원장은 그런 사람들을 관리할 노력을 한다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은 사람보다 관리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가려는 사람과 일하고 싶다”며 ‘협상가’로서의 김 위원장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줬다. 또한 “내가 보기에 김 위원장은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강한 열망을 갖고 있다”며 “그것이 그의 나라를 번영으로 이끌고 체제 안전을 증진할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앤드루 김 전 센터장은 “나는 예언가가 아니다”라면서 말을 아끼면서도 “첫 만남보다는 (2차 북미회담이) 더 생산적일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자신들의 노력을 충분히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좌절감을 갖고 있지만, 원하는 만큼 인정받으려면 좀 더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앤드루 김 전 센터장은 북한이 모든 유엔 제재 해제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등 남북 프로젝트의 재개를 원한다고도 밝혔다. 그는 “북한은 종전선언의 확보를 원한다. 북한은 또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North also wants to be recognized as a nuclear state)”며 “북한은 막판에는 미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관계를 개선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북한에서의 ‘김씨 가문’의 지배를 계속 보장하기 위해 오래 지속하는 평화 메커니즘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밝힌 핵보유국 인정은 지금까지 북미 협상에서 거론된 적이 없는 사안이다. 그러나 이날 강연의 전체 맥락에서 볼 때 앤드루 김 전 센터장의 발언은 북한이 지금 핵보유국 인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뜻이라기보다 비핵화 의지로 북미 대화를 추동해 나가는 한편, 압박수단으로 핵보유국 인정을 거론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앤드루 김 전 센터장은 “그들(북한)도 한 정권 내에 합의를 봐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며 “왜냐하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굴러가게 될지 그들이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지금 합의를 보길 원하면서 그에 집중하는 이유는 아마도 트럼프 행정부가 그들이 상대하길 원하는 미국 정부라는 평가를 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앤드루 김 전 센터장은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해 핵·미사일 시험의 지속적인 중단을 출발점으로 ▲포괄적 신고 및 전문가 사찰 ▲핵무기·운반체·핵물질 폐기를 거쳐 북한이 2003년 탈퇴한 NPT에 재가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센터장은 그러면서 “북한은 주요 대량살상무기(WMD) 시설에 대한 미국 전문가의 평가를 허용하고, (핵·미사일) 시설을 신고하며, 합의된 시간표에 따라 한반도에서 핵무기와 운반체 시설, 관련 핵물질을 폐기·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고 대상과 범위에 대해선 “핵·탄도미사일은 물론 생화학 무기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포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북한에 줄 수 있는 상응조치에 대해서는 경제·정치·안보적 측면의 3대 인센티브로 분류했다. 경제적 인센티브로는 ▲인도적 지원 ▲북한 은행의 국제 거래 완화 ▲북한 수출·수입 제재 완화 ▲북한 경제구역 내 조인트벤처 (제재) 면제를 꼽았다. 이어 ▲여행금지국 해제 ▲연락사무소 개설 ▲오케스트라 공연 등 문화 교류 개시를 북한에 제공 가능한 정치적 인센티브로 꼽고, ▲김씨 일가와 고위 인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등재 해제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철회도 정치적 인센티브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김 전 센터장은 이와 함께 ▲종전선언 서명 ▲북미간 군사협력(military to military engagement) ▲평화협정 체결 및 외교관계 수립을 안보적 인센티브로 제시했다. 그는 북한이 희망하는 대북제재 해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목표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가 가시권에 노출됐을 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전 센터장이 공개 강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8년 동안 미국 CIA요원으로 복무한 전직 정보기관 고위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강연에 나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앤드루 김 전 센터장은 애초 지난해 여름 CIA를 떠날 생각이었으나 북미 협상이 극적으로 진전되고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한동안 ‘임무’를 연장했다가 지난 연말 사직했다. 김 전 센터장은 현재 스탠퍼드 대학의 월터 쇼렌스틴 아시아 태평양연구소에서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날 강연을 시작하면서 미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하게 개인적 의견이라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북미협상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사라 그의 발언에 미 정부의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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