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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코믹으로 흥행 홈런···이하늬, 언제부터 이리 웃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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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열혈사제’서 검사 역할로 호평

영화 ‘극한직업’ 이어 찰진 연기 선보여

미스코리아로 데뷔해 섹시한 이미지서

코믹ㆍ액션 등 스펙트럼 넓히는 계기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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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열혈사제’에서 열정이 충만한 박경선 검사 역할을 맡아 코믹 연기를 선보이는 이하늬. [사진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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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의 심스틸러
배우 이하늬(36)가 2연속 홈런을 쳤다.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이 1500만 관객을 동원한 데 이어 지난 15일 시작한 SBS ‘열혈사제’는 방송 3회 만에 시청률 16.2%(닐슨코리아)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국영화가 줄줄이 흥행에 실패해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하고, 평일 미니시리즈도 마의 10% 장벽을 넘지 못해 온갖 막장 요소를 동원하는 상황에서 스크린과 브라운관 양쪽에서 동시에 승전고를 울린 셈이다. 어느새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어버려 정체기를 겪고 있던 코미디 장르에서는 더욱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하늬가 이름만으로 기대감을 갖게 하는 배우는 아니었다. 2006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선발돼 이듬해 미스유니버스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해 아름다움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력을 갖고 있었지만, 연기력을 논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필모그래피였기 때문이다. 서울대 국악과 출신으로 전공을 계속 살리길 원했던 그는 “연예인 데뷔는 하지 않을 것”이라 못 박기도 했다. 하여 드라마 ‘파트너’(2009)와 영화 ‘히트’(2011) 등을 시작으로 연기를 시작한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됐지만 이렇다 할 대표작은 없는 상황이었다. 되려 2015~2017년 진행한 ‘겟잇뷰티’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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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짜-신의 손’에서 우 사장 역할을 맡아 허당미를 선보였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명품 바디라인을 자랑하는 뇌섹녀 이미지로 그를 소비하려는 시도도 계속됐다. 데뷔작 ‘파트너’에서 맡은 한정원 변호사 역할을 묘사한 ‘법조계의 넘버 원 팜므파탈’란 수식어는 어디에 붙어도 어색함이 없었다. ‘상어’(2013)는 호텔의 팜므파탈 기획비서실장, ‘타짜-신의 손’(2014)은 도박계의 팜므파탈 우 사장이다. 허당끼 풀풀 풍기는 우 사장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였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이 기억하는 건 결국 이하늬의 연기가 아닌 몸매였으니 얼마나 속상했겠는가.

다행인 것은 코미디에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 그녀가 그를 둘러싸고 있던 전형성을 하나씩 깨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모던파머’(2014)에서 촌빨 내리는 패션을 선보이는 최초이자 최연소 여자 이장을 연기한 그는 ‘사남일녀’(2014)에서는 아예 여자다움을내려놓았다. 민낯으로 돌직구를 날리고 노상 방뇨까지 서슴지 않으며 털털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것.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마동석ㆍ이동휘와 함께 호흡을 맞춘 ‘부라더’(2017)는 그의 몸에 코미디가 자연스럽게 밸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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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 어머니 문재숙은 무형문화재이자 이화여대 교수이고, 언니 이슬기도 가야금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국악인 집안이다. [사진 사람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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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 편으로는 그의 뿌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을 계속했다. 4살 때부터 가야금을 배운 전공자로서 도움이 필요한 자리라면 마다하지 않고 앞장섰다. 2017년 중국에 빼앗긴 세계 최대 규모 가야금 공연 기네스 공연 기록을 되찾기 위해 1168명이 함께 가야금을 연주하는 모습이나 ‘판스틸러-국악의 역습’(2016)에서 흥겨운 가락을 풀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천상 국악인의 모습이다. 절친 김지연과 함께 가야금 듀오 야금야금으로 공연까지 하고 있으니 가히 ‘두 얼굴의 아가씨’다.

이러한 시간들이 없었다면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2017)에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주체적인 장녹수 혹은 가야금부터 장구춤과 승무까지 능한 예인 장녹수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한 축만 있었더라면 밸런스가 맞지 않아 흔들거렸을 테니 말이다. 덕분에 악녀 혹은 요부로 대표되는 장녹수가 다시 한번 되풀이되는 것을 피한 것은 물론 MBC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상을 비롯해 코리아 드라마 페스티벌ㆍ더 서울 어워즈 등 3관왕에 오르는 등 상복도 뒤따랐다.


‘극한직업’의 장 형사나 ‘열혈사제’의 박경선 검사가 빛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놓고 웃기려고 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웃음을 선사한다. 거기에 기존 여성 캐릭터가 해오던 클리셰를 답습하지 않으면서 이를 역으로 활용하는 영리함을 보인다. 누가 추리닝 입고 날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말보다 발이 먼저 나가는 이하늬의 모습을 상상했겠는가. 볼살이 흔들리게 뛰어가는 그는 섹시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지만, 충분히 아름답다. 마약반 홍일점 여형사로 돋보이진 않을지언정 형사 5명이 모였을 때 시너지가 난다. 그것도 팍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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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직업’에서는 장 형사 역할로 걸크러시 매력을 선보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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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검사 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서울중앙지검 특수팀 검사로 깡으로 똘똘 뭉친 것은 기본 넘치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검사장 라인을 제대로 타기 위해 남다른 충성심을 보여준다. 그동안 정의를 위해 혹은 권력을 위한 검사는 많이 봤지만 “한과 박스를 푸는데 심장이 나댄다”라거나 “잘생겨서 봐준다”고 내뱉는, 철저하게 욕망에 충실한 검사는 처음이다. 똘끼와 열정이 충만한 덕에 시청자들이 ‘열혈사제’가 아닌 ‘열혈검사’라고 오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해 8월 미국 최대 에이전시인 윌리엄 모리스 엔데버(WME)와 매니지먼트사 아티스트 인터내셔널그룹(AIG)과 손잡은 타이밍도 훌륭하다. 연기력 역시 매 작품 상승세를 타고 있는 데다 아시안 배우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된 지금이야말로 할리우드 진출의 적기이기 때문이다. 막 데뷔한 신인 시절 섣부르게 시도했다면 그녀가 가진 많은 장점이 모두 묻혀 버렸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아직 정점이 어딘지 모른다는 것, 그게 지금의 이하늬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아닐까.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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