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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보육시설 찾아온 성범죄자 “자원봉사 왔어요” 무사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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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점 드러난 아동성보호법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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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복지센터 도와온 20대, 시설 아이들 성학대 징역 11년

성범죄 처벌 전력 있지만 복지센터 측은 전과 사실조차 몰라

현행법상 취업 제한만…봉사자는 이력 조회 강제 규정 없어


제주의 한 아동복지센터에서 12년째 자원봉사를 해온 강모씨(28)는 이 시설에 다니는 5~6세 아이들을 상습적으로 성학대한 혐의로 최근 징역 11년을 선고받았다. 피해 아동 대부분은 부모가 없거나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미성년자였던 2006년 10월 아동·청소년 성범죄로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 2017년에는 3세 남아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강씨는 집행유예 기간 중에도 자원봉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계속 저질렀다.

아동 성범죄 전과자인 강씨가 자원봉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성범죄자 취업제한’ 규정의 허점 때문이다. 현행법은 성범죄자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취업이나 노무제공을 하는 것을 금지한다. 하지만 자원봉사자에 대해서는 제재 규정이 없다. 수년에 걸쳐 아동 성범죄가 이루어졌는데도 해당 아동복지센터는 강씨가 아동 성범죄 전과자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21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지난 14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 위계 등 추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씨에게 징역 11년을 선고했다.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의 취업제한도 함께 명령했다.

강씨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당 보육원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센터 관계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2012년 겨울부터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설 밖으로 외출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본격적인 범행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강씨는 휴대전화 게임을 하게 하거나 장난감을 사주며 아이들의 환심을 샀다. 함께 외출을 한 다음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며 유사성행위를 강요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재판에서 확인된 피의 사실만 10건이다. 피해 아동이 시간이나 장소를 특정하지 못해 불기소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성범죄로 처벌이나 치료감호를 선고받은 이들이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취업하거나 노무를 제공하는 것을 최대 10년까지 금지한다. 취업예정자가 성범죄 경력조회 동의서를 제출하면, 해당 기관장은 관할 경찰서에 신청 서류를 제출하도록 돼 있다. 이후로는 각 행정기관이 연 1회 이상 관할 기관의 성범죄자 근무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점검 결과는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3개월 이상 공개된다.

문제는 자원봉사자의 경우 범죄 경력조회가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의 자원봉사기관을 등록·관리하는 행정안전부 민관협력과 관계자는 “아동·여성을 대상으로 한 기관은 자원봉사자도 성범죄 이력조회를 하도록 교육하고 있다”면서도 “이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자원봉사 특성상 규제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 여가부 아동청소년성보호과 관계자는 “자원봉사자는 자발적으로 봉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범죄 경력조회까지 의무화하면 참여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관련 입법을 준비 중인 한 의원실 보좌관도 “자원봉사는 3시간만 하는 사람도 있고 10년 이상 하는 사람도 있다. 일괄적으로 범죄 경력조회를 강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자원봉사자가 많이 찾는 아동복지센터는 보호자 없는 아동이 많아 피해 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사각지대”라면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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