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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34] 일본 총리의 3·1절 축전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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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전후(戰後) 일본 총리를 역임한 언론인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은 1919년 5월 15일 자 동양경제신보에 다음과 같은 사설을 싣는다. “어느 민족인들 타민족에게 복속되는 것을 유쾌하게 받아들일 리 없다. 조선 민족은 고유한 언어와 오랜 독립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들은 독립을 회복할 때까지 일본 통치에 계속 저항할 것이며 지식과 자각의 증진에 비례하여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5월 20일 자 요미우리신문에는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기고문을 남긴다. "물질도 영혼도 그들의 자유, 독립을 강탈하였다. 조선인들이여, 일본인들이 그대들을 모욕하고 고통스럽게 하여도 그들 가운데 이와 같은 일문(一文)을 남긴 자가 있음을 알아주오. 일본이 정의로운 인도(人道)의 길을 걷고 있지 못함에 대한 명백한 반성이 우리 일본인 사이에도 있음을 알아주오."

단잔은 1922년 '대일본주의의 환상' 사설에서 식민지 포기, 일·중 관계 개선, 개방적 무역이 일본의 살길이라는 '소일본주의'를 제창한다. 당시 일본 내부에서도 일본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음을 통절히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3·1운동은 그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 후 역사는 그들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3·1운동이 제시한 민족 자결, 비폭력 사상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전후 일본이 추구해 온 반전(反戰)·평화 염원과 일치하는 현재진행형의 보편적 이념이다. 일본은 한국만큼이나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 나라다. 3·1운동은 일본의 역사이기도 하다.

나는 언젠가 일본 총리가 3·1절 축전을 보내오는 날을 꿈꾼다. 일본 국민을 대표해 일본 정상이 한국 정상에게 전하는 3·1절 축전만큼 ‘과거를 직시(直視)한다’는 수사(修辭)에 구체성을 부여하고 진정성을 입증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과거 앞에 겸허해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독일 총리는 유럽 화합을 위해 연합국 전승기념식에도 참가하는 용기를 낸다. 동아시아 화합을 위한 일본의 용기를 기대하고 싶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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