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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불 꺼진 재처럼 마음을 고요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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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서 열린 禪詩문학 포럼

시인 황지우·김명인·최승호 등 고려 혜심 스님의 선시 재조명

제1회 한국 선시(禪詩)문학 포럼이 20일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열렸다. 해남 일지암 주지 법인 스님과 황지우 시인이 주관한 이번 포럼은 '마음의 피뢰침: 禪 & 詩'라는 주제를 내걸고 불교와 문학의 대화를 전개했다.

첫 번째 포럼은 고려 때 진각국사(眞覺國師)로 불린 혜심(慧諶·1178~1234) 스님의 선시를 재조명했다. 혜심은 한국 선시의 선구자로 꼽히고 수백 수의 시를 남겼다. 김명인 시인은 "혜심의 선시는 선의 일상화와 함께 시의 일상화로도 간주된다"며 "법음(法音)의 전달이라는 종교적 상징뿐 아니라 높은 수준의 문학성까지 획득한다"고 평했다.

조선일보

대흥사 ‘한국선시포럼’에 참여한 승려와 문인들. 왼쪽부터 시인 최승호, 김명인, 법인 스님, 시인 박규리, 이은봉, 황지우, 법화 스님. /김승식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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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심이 남긴 선시 중 '못가에 홀로 앉았다가/ 못 속 한 스님을 만난다/ 말없이 서로 보며 웃으니/ 대답이 없어도 그대를 아네'가 널리 알려져 있다. 김 시인은 "못 밖에 내가 있고, 못에 비친 것은 그림자이지만, 생각해 보면 어느 것이 진아(眞我)인지 그 실체를 분간해낼 수가 없다"며 "맑고 고요한 못의 상징성으로 가능해지는 이 대면은 들여다보는 자와 거기 비친 그림자가 불이(不二)이므로 본체와 현상이 일체라는 깨달음으로 나아간다"고 풀이했다.

최승호 시인은 혜심의 호가 '무의자(無衣子)'인 것에 주목했다. 그는 '눈앞에 아무것도 없으니/ 없는 그대로 뚜렷하구라'라는 혜심의 시를 언급하며, 한 편의 시 같은 해석을 내놓았다. "옷 없는 놈, 무의자다. 조약돌이 무의자다. 모래알이 무의자다. 여울 물소리가 무의자다. 벌거벗은 허공이 무의자다"라고 노래했다.

차창룡 시인은 이날 포럼에 북한산 중흥사의 동명 스님으로 등장했다. 첫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로 1994년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차 시인은 2010년 홀연히 출가해 해인사에서 수행했다. 그는 혜심의 선시를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혜심의 시 중 '시정(詩情)에 젖어 홀로 배회하나니/ 그 흥이 다하여 고요히 앉으면/ 마음은 식어서 불 꺼진 재와 같아라'를 읊었다. 그는 "항상 마음을 불 꺼진 재처럼 고요하게 하고 들뜨지 않게 하라는 것이 이 시의 가르침"이라며 "혜심의 시는 아직 갈 길이 먼 저에게 수행 생활의 지침을 준다"고 말했다.





[해남=박해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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