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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금)

아침식사, 꼭 먹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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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반드시 챙겨야 하는 건 아니라는 연구결과 속속 나와
"아침에 배고프면 먹어라. 하지만 거른다고 죄책감 느끼진 말라"

조선일보

세계인이 먹는 아침식사는 재료, 종류, 조리법, 맛이 천차만별이다. 왼쪽부터 영국식 아침식사와 한국 콩나물국, 프랑스 팽페르뒤(프렌치토스트), 삭힌 오리알을 넣은 중국 피단죽./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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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최명선(37)씨는 매일 아침 ‘밥을 먹느냐, 마느냐’ 고민이다. "출근 준비하느라 바쁜 아침 시간을 쪼개가며 굳이 아침식사를 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어요. 대부분 주변 사람들은 ‘아침 거르면 좋지 않다’고들 말해요. 특히 함께 사는 부모님은 ‘아침 안 먹고 나가겠다’고 하면 범죄라도 저지르는 양 ‘절대 안 된다’며 반드시 챙겨 주시는데, 죄송하지만 먹는 것도 고역이에요. 딱히 배 고프지 않고 입맛도 없는데, 아침 밥을 꼭 먹어야 할까요?"

아침식사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신성한 의식’처럼 여겨진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등 대부분 국가와 문화권에서 마찬가지다. 아침식사 옹호론자들은 ‘밤새 고갈된 에너지를 채워줘야 하루를 생산성 높게 보낼 수 있다’ ‘학생은 아침을 먹어야 공부를 잘 한다’ ‘살을 빼려면 오히려 아침을 거르면 안 된다’ 등을 근거로 내세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한민족은 밥으로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야 건강하다’는 확신이 굳건하다.

하지만 아침식사에 대한 믿음을 뒤흔드는 연구 결과가 최근 다수 발표되고 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아침식사를 반드시 먹지는 않았으며, 먹더라도 현재 우리가 아침식사용으로 적합하거나 옳다고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식품을 섭취한 사례도 흔하다.

의료계와 언론에서는 오랫동안 아침을 거르면 나중에 더 많은 간식을 먹게 돼 결과적으로 체중이 늘어난다고 권고해왔다. 하지만 아침을 먹으면 오히려 살이 찐다는 연구 결과가 지난달 30일 영국의학저널(BJM)에 실렸다.

호주 모나쉬(Monash)대학 연구팀은 과거 발표된 13개의 무작위 대조군 연구 결과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아침을 먹는 사람이 거르는 사람보다 하루 평균 259.79kcal을 더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침을 거르면 인체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대사율이 약간 낮아지고 점심과 저녁에 조금 더 많이 먹었지만, 아침식사로 섭취한 칼로리를 모두 메꿀 정도는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아침을 먹지 않는 경우가 밥 한 공기는 덜 먹는 셈이 되었고, 이에따라 체중도 평균 0.44kg 덜 나갔다.

이 연구 결과가 아침식사를 걸러야 살이 빠진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아침을 챙겨 먹어야만 살이 빠진다는 기존의 인식이 진리가 아님을 시사한다. 영국 킹스칼리지에서 유전역학을 연구하는 팀 스펙터 교수는 "일찍 식사하는 걸 선호하는 체질을 가진 사람이 있는 반면 늦게 식사하도록 프로그램 된 사람도 있다"며 "우리는 개인별로 서로 다른 대사율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에게 일괄 적용되는 (다이어트) 방법이나 원칙은 없다"고 했다.

아침 식사가 죄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유럽 의사들은 1500년대까지 아침을 먹지 말라고 권했다. 전날 섭취한 음식물이 완전히 소화되기 전 또 식사해 뒤섞이면 몸이 불결해진다고 봤다. 의사들은 식사 대신 가벼운 산책을 권했다. 도덕적 이유로 아침 금식을 권하기도 했다. 중세 도덕론자들은 아침식사를 7대 죄악 중 하나로 비난했다. 가벼운 점심과 조금 더 충실한 저녁 이렇게 하루 두 끼면 하루 식사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이런 식습관이 이어저서인지, 이탈리아에서는 "아침 식사를 거하게 하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믿으며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과 비스킷 또는 빵 한 조각으로 가볍게 때운다.

유럽에서 아침식사를 먹어도 된다는 인식은 16세기에야 인정받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었던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에일 맥주 한 잔과 귀리 비스킷을 궁정 아침 메뉴에 포함시켰다. 프랑스 프랑수아 1세는 ‘5시 기상, 9시 아침식사, 5시 저녁식사, 9시 취침’이란 규칙을 세우며 아침식사를 옹호했다. 이후 아침식사는 건강하고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의 일상으로 여겨졌고, 대중들도 아침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우리 조상들은 아침식사를 했지만 그건 점심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19세기까지 조석(朝夕)으로 하루 두 끼 식사가 일반적이었다. 먹을 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홍차에 과자나 샌드위치 따위 간식을 곁들인 영국의 티타임(teatime)도 두 끼만 먹었기에 탄생했다. 아침과 저녁 사이 허기를 참지 못한 베드포드(Bedford) 공작부인이 1840년쯤 시작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루 세 끼 식사가 보편화된 건 19세기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공장에 출근하기 전 식사하고 일하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저녁에 집에서 식사하는 패턴이 정착됐다. 이처럼 하루 세 끼가 절대적이지 않은 것처럼, 아침식사를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건 신화(myth)일 뿐 의무가 아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 의과대 아동의학과 교수 애런 캐롤은 지난 2016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아침식사에 대한 우리의 맹신은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거나 연구 결과를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캐롤 교수는 ‘아침을 챙겨 먹는 아동이 그렇지 않은 아동보다 우수한 학업성적을 낸다’는 연구 결과를 예로 들면서 "못 먹던 아동을 제대로 먹이면 학업성적이 향상되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이 아침을 먹었다고 해서 성적이 향상됐다는 연관관계는 없다"고 했다. 그는 "아침에 배고프면 먹으라. 하지만 거르고 싶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지는 말라. 아침식사에는 마법의 힘이 없다"고 주장했다.

방송과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는 약사 정재훈씨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엄청난 양의 저녁 식사 뒤에 굳이 아침을 또 먹으면 살이 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맞다"며 "수십 년 전부터 교과서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아침을 먹는 게 건강에 좋다는 주장을 계속할 수는 없다"고 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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