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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자유 수호 못하면 보수 아냐"…골드워터의 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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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보수정치 정립, '보수주의자의 양심' 국내 출간

연합뉴스

미합중국 제40대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미합중국 제40대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인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역대 대통령 중 한 명이다. 재임 기간 공산 진영과 대결에서 승리하고 인플레이션을 극복함으로써 미국인에 희망과 낙관주의를 되찾아준 지도자라는 찬사를 받으며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인기 상종가를 구가한 이런 레이건이 공화당 역사상 가장 인기 없던 '최악의 대선후보' 후계자이자 추종자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레이건은 미국 보수주의 정치 노선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배리 골드워터를 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정치인이다.

정치 신인 레이건이 전국구 차세대 스타로 발돋움한 장면 역시 1964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 지지 연설이다. 이 연설은 레이건 최고의 명연설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연설에서 "평화와 전쟁 사이에서 선택은 없다. 오직 싸우느냐 항복하느냐의 선택만 있을 뿐"이라고 말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16년 뒤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런 철학을 뚝심 있게 밀어붙여 스스로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명명한 소련을 기어코 굴복시켰다.

보수 계열 싱크탱크들은 사실 레이건의 이러한 성공이 모두 골드워터가 정립한 보수 정치철학 기반과 골드워터의 희생을 바탕으로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골드워터가 눈앞의 정치적 이익 대신 영구한 통치 철학으로서 보수 가치를 정립하는 일에 헌신했기에 지금 미국의 보수 정치와 공화당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 본산' 헤리티지 재단을 만들고 이끈 에드윈 퓰너는 이런 골드워터 정신을 알리는 전도사를 자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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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자의 양심



골드워터는 특히 '원칙과 양심'이 없는 보수는 보수가 아니라는 신념을 온몸으로 실천했다. 특히 자유를 구현하려는 '양심'이야말로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와 구별되는 지점으로 믿었다.

무엇보다 골드워터는 보수를 표방하면서도 '따뜻한 보수주의자', '진보적 보수주의자'로 자신을 칭해달라는 정치인들을 혐오했다. 이러한 이중적이고 비양심적인 태도 자체가 보수주의에 대한 이해와 신념 부족 탓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론적 체계를 담아 골드워터가 1960년 펴낸 책이 바로 그 유명한 '보수주의자의 양심'이다.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과 함께 양대 보수 바이블로 불리며 350만부가 팔린 스테디셀러지만 국내에는 이제 처음으로 도서출판 '열아홉'에서 번역 출간됐다.

골드워터는 책에서 닉슨, 아이젠하워 등 전직 대통령들이 '가슴을 가진 보수주의자', '진보적 보수주의자' 등으로 불리길 원한 데 대해 "이런 공식화는 바로 보수주의가 협소한 기계적 경제이론이라는 고백이나 다름없다"면서 "경리 직원의 지침으로는 아주 잘 어울릴지 모르지만, 포괄적 정치철학으로는 의지할 만하지 않다"고 혹평했다.

이처럼 보수 철학을 정립함으로써 '보수 아이콘'으로 떠오른 덕분에 골드워터는 1964년 대선에서 록펠러 등 명망가들을 꺾고 공화당 후보로 선출되지만 '극우주의자'라는 오명과 함께 대패했다.

심지어 그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자유의 수호에 있어 극단주의는 결코 악이 아니다"라고 외칠 정도였다. 타협 대신 원칙과 양심을 지키는 게 보수의 유일한 살 길이라는 일갈이었다. 이처럼 원칙을 지킨 참패는 미국 보수주의 정치의 탄탄한 버팀목으로 되살아나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사즉생(死卽生)의 전형이었던 셈이다.

골드워터가 책에서 정의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차이점은 지금도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교과서처럼 거론된다. 그는 "보수주의자는 인간 전반을 고려하는 데 비해 진보주의자는 인간 본성의 물질적 측면만을 바라보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골드워터는 당시 '명백한 적'인 소련에 대해서조차 의회가 정치적 계산을 거듭하는지 의문을 갖는다. 그에겐 이런 태도가 정치적 득실만을 따짐으로써 보수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행태로 보였다.

이처럼 그는 책에서 '개인의 자유', '시장경제', '작은 정부', '강력한 국방' 등 현대 보수 가치의 어젠다를 정립했고, 이는 현재까지 공화당 노선의 전범으로 이어진다.

그는 이른바 선심성 복지 논란과 관련해 "연방 보조금은 공짜가 아니다"라며 "공짜 주택, 공짜 학교 보조금, 공짜 의료, 공짜 연금 등을 통한 매표(買票)"를 비난했다.

그는 노조의 등장이 오히려 개별 임금 노동자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도 있다고 봤다. 노사 간 힘의 균형이 깨지고 소수의 노조 지도자에 권력이 집중되면서 "국가 경제 안정과 국가 정치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노조가 "조합 본연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고, "조합 가입은 자발적이어야" 하며, "조합의 정치적 활동은 제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대소련 전략은 마치 이 책에서 제시한 방안을 그대로 답습한 듯 보인다.

골드워터는 "섣부른 협상은 양보를 초래한다"면서 "자유와 정의를 담보한 것만이 '평화'"라고 했다. 또 "자유를 지키는 한 가지 길"을 언급하며 "우세한 군사력으로 소련에 맞서 소련의 퇴각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얼마나 원칙과 양심을 중시했는지는 낙태와 동성애자 군 복무 등에 찬성한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현재 공화당 방침과 배치되는 것이지만 골드워터는 "국가가 개인 자유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게 진정한 보수라고 믿었다.

골드워터의 상원의원 지역구(애리조나)를 물려받은 존 매케인은 그에 대해 "공화당을 동부 엘리트 조직에서 레이건 당선을 위한 '묘판'(breeding ground)으로 바꿔놓았다"고 했다. 골드워터가 없었다면 공화당은 '가치 조직'이 아니라 '명망가 조직'에 머물렀을 것이란 얘기다. 박종선 옮김. 268쪽. 1만5천원.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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