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9 (목)

눈으로 읽는 미식의 향연. 김서령 '배추적~' 박찬일 '오사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포츠서울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제공 | 모비딕북스


[스포츠서울 김효원기자] “글로 맛보는 음식의 향연!”

맛집과 음식이 흔한 세상이다. TV를 켜면 연예인들이 음식을 먹고 검색창에 ‘맛집’을 치면 수만개 음식점 리스트가 주르르 뜬다. 그러나 정작 영혼까지 흔드는 맛을 찾기는 쉽지 않다. 최근 눈으로 읽는 미식 서적이 잇따라 출간돼 영혼을 흔드는 맛을 경험하게 해준다. 요리사 박찬일의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모비딕북스)와 칼럼니스트 김서령의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푸른역사)다. 좋은 글을 읽는 재미에 밥 먹는 것을 잊게 해주는 책이다.

◇박찬일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박찬일은 글 잘쓰는 요리사다. 그 이전에 그는 명실상부 애주가다. 그런 그가 오사카에 무시로 드나들며 선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오사카는 술꾼들이 퇴근 후 와글와글 술을 마시는 곳이고 박찬일은 그 분위기에 취해 더없이 즐겁게 먹고 마셨다. 그렇게 10년쯤 오사카를 드나든 박찬일은 오사카에서 괜찮은 술집과 밥집을 엄선해 책으로 엮었다.

우리말로 선술집으로 부르는 다치노미야에서 부터 야키니쿠야(고기구이집), 이자카야, 가쿠우치, 고료리야, 바, 스낫쿠 등 술집 70여곳과 라멘, 우동, 소바, 스시, 카레, 양식(요쇼쿠), 덮밥, 정식(우리나라의 백반), 카페, 빵집, 식재료점 등 37곳 등 모두 107곳을 골라 넣었다.

비싼 집은 맛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박찬일은 비싼 집보다는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집에 방점을 뒀다.

글 잘쓰는 요리사답게 가게 분위기와 맛을 소개하는 글에서도 내공이 넘친다. “구시카쓰는 고운 빵가루를 묻혀 튀기는 것이 정석이라 입에 닿는 촉감도 특이하다. 재료에 따라 묽은 반죽만 묻히기도 하고, 빵가루만 묻히거나 두 가지 다 묻히기도 한다. 주인은 채소를 먹어보라고 권한다. 그 중에서도 아스파라거스, 연근, 꽈리고추(시시토) 등을 추천한다. 삼겹살도 있고, 심지어 스팸도 튀겨준다. 뭐든 튀긴다. 그게 구시카쓰의 멋이다. 아, 입 안 가득 뜨겁게 번지는 라드의 맛, 구시카쓰의 촉감이 살아난다”, “라멘은 이제 작은 우주다. 이 집에 와서 이런 나의 해석과 가설은 더욱 힘을 얻었다. 도리소바자긴. 소바라는 전통적 명칭을 쓰고, 고급의 대명사인 도쿄 긴자를 비튼 것으로 보이는 위트(자긴이라니!), 심지어 크림소스 같은 국물을 뽐낸다. 니보시라고 부르는 마른 멸치를 강조한 니고리 라멘도 있다. 니고리는 진하다는 뜻이다. 육수를 우려낸 멸치를 갈아서 내린 것으로 보인다. 자기 색깔이 선명한 이 가게가 라멘 마니아들을 잘근잘근 씹어버린다” 등 문장을 읽노라면 당장 오사카 선술집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왜 오사카였을까? 오사카에는 ‘먹다 망하고(구이다오레)’, ‘마시다 쓰러진다(노미다오레)’는 말이 있다고 한다. 아침 8시부터 술집에 줄을 서는 사람들, 평일 대낮에 양복 입고 혼술하는 노신사들, 늦은 오후부터 모여 싸구려 소주를 서서 마시는 사람들 등 애주가들이 넘친다고. 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마시는 이유를 박찬일은 나름대로 탐구하고 답을 찾았다. 맛있는 술집이 거기 있기 때문.

스포츠서울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제공 | 푸른역사



◇글을 읽는 즐거움-김서령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칼럼니스트 김서령은 음식에 관해 그 누구보다 정성스러운 글을 쓰는 작가다. 그런 그가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지인인 푸른역사 출판사 대표가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글들을 찾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김서령의 글은 고유의 빛깔과 냄새를 가지고 있다. 염무웅 선생이 “읽을 때마다 예민한 감각과 풍부한 어휘와 생생한 비유에 감탄했고 글이 만들어내는 삶의 진실에 전율했다”고 한 글이다.

안동 양반가에서 나고 자란 김서령은 종갓집 며느리였던 엄마가 부엌에서 만들어내던 수많은 음식에 대한 추억을 옛이야기처럼 술술 풀어낸다. 일년 내내 제사음식을 마련하느라 허리를 펴고 잠잘 새가 없었던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는 작고 어린 딸의 모습이 아스라히 흑백 영화처럼 펼쳐진다. 음식에 대한 묘사를 읽노라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며 잊고 있던 추억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음식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삶의 비밀까지도 이어내는 솜씨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가령 “생 속의 반대말은 썩은 속이었다. 속이 썩어야 세상에 관대해질 수 있었다. 산다는 건 결국 속이 썩는 것이고 얼마간 세상을 살고 난 후엔 절로 속이 썩어 내성이 생기면서 의젓해지는 법이라고 배추적을 먹는 사람들은 의심 없이 믿었던 것 같다”, “이기심과 탐욕과 분노와 공포 같은 걸로 흐려진 인간성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선하고 고운 그 무엇, 썩은 감자 속에서 길어 올리는 매끄러운 녹말 같은 그 무엇, 어쩌면 인(仁)이거나 사랑이거나 자비라도 불러도 좋을 그 무엇, 바로 그것을 대면할 수 있는 가장 가깝고 너그러운 장소가 저 산꼭대기 선방이나 성균관의 명륜당이 아니라 부엌이라고 나는 확실히 믿는다”와 같은 문장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어루만진다.
eggroll@sportsseoul.com


[기사제보 news@sportsseoul.com]
Copyright ⓒ 스포츠서울&sportsseoul.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