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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의 인기작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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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124] 아케이드 오락실 시절 가장 인기 높던 대전격투 게임의 뒤를 잇는 인기 장르를 꼽아보라면 아마도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을 빼놓기 어려울 것이다. 마주앉은 혹은 옆에 앉아서 서로 실력을 겨뤄 패자는 플레이 기회를 날리고 떠나야 하는, 경우에 따라서는 연패로 열받은 플레이어가 이른바 '현피'를 뜨던 다소 냉혹한 세계로서의 격투 게임에 비해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은 코옵(Co-OP)이라 불리는 협동성으로 액션을 풀어내는 방식 덕분에 크게 싸울 일이 없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내 템을 네가 먹느냐는 문제로 다툼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략의 분위기는 그랬다는 이야기다.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은 이름 그대로 마치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듯 화면이 옆으로 흘러가면서 스테이지가 흘러가고 그 안에서 나름의 3차원 좌표가 구현되어 있어 일대다의 격투 상황을 뚫고 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삼는다. 강력한 캐릭터가 잡졸들을 쓸어내는 일당백의 호쾌함이 스크롤이라는 방식을 통해 일련의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여러모로 인기가 높았던 이 부류는 '파이널 파이트'로부터 오락실 시절의 대표 게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던전 앤 드래곤' '더블 드래곤' '천지를 먹다' '황금도끼'와 같은 인기작들을 통해 오랫동안 플레이어들의 기억을 사로잡아 왔다.

워낙 인기작이 많은 장르이지만 그 중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콘셉트로 사람들의 기억에 또렷한 게임 하나가 있다. 보통 정확한 이름을 몰라 '그 공룡 나오는 게임~' 정도로 통용되는데, 그 정도의 멘트만으로도 무슨 게임인지 상대가 알아듣는다는 점에서 이 게임의 유명함을 알 수 있는 게임이다. 정확한 제목은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 다.

◆독특한 설정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테일한 액션과 만나다

자동차 브랜드와 공룡이라는 다소 황당한 단어로 만들어진 게임 제목은 쉽게 들어오지 않아 한국에서는 대체로 '캐딜락'과 같은 제목으로 통했던 이 게임은 내용도 사실 좀 황당한 구석이 없지 않다. 과도한 산업 개발로 황폐화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하로 숨어든 인류는 600년 후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고, 인간이 떠난 지구는 새롭게 정화된 대신 중생대와 같은 환경이 되어 다시 공룡이 번성하는 세계로 거듭났다.

공룡과 인간은 평화롭게 공존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 인류 세력의 탐욕은 공룡을 자연 그대로 두려 하지 않았다. 공룡의 유전자를 개조해 전투용으로 쓰는 등 일을 저지르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그 무리를 처단하기 위해 주인공 일당이 나서는 이야기가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의 중심 이야기다.

대단히 디테일한 설정으로 현실감을 주기보다는 굵직굵직한 설정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를 그려내고자 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 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플레이어가 주먹으로 공룡을 두들겨 패는 독특한 감각을 보여주면서 기존의 벨트스크롤 게임과는 사뭇 다른 액션감을 드러낸다. 대전격투게임만큼 복잡한 커맨드를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캐릭터마다 속도와 파워를 적절하게 다르게 섞어내며 꽤나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선사했고, 간간이 섞여 나오는 샷건이나 기관단총 등 화약무기도 기존의 벨트스크롤과는 차별화된 지점으로 손꼽혔다. 게임의 볼륨도 난이도와 함께 풍부한 축에 속해 꽤나 인기 높은 게임의 자리를 구가해 온 바 있었다.

이미 출시된 지도 20년이 넘어가는 게임이지만 꽤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 있는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는 그런데 과거의 게이머들이 추억을 돌이키는 와중에도 항상 한 가지 의문을 남기는 게임이기도 하다. 공룡이 살아숨쉬는 부활한 지구라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까지는 그렇다 치고 이해하는데 도대체 왜 게임의 제목에까지 캐딜락이라는 자동차가 등장하는 것일까? 정작 게임에서 캐딜락 자동차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시점은 그리 많지 않고, 제목에 들어갈 만한 주연급 역할도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엔딩에서 플레이어 일행은 거대한 캐딜락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며 게임을 마무리한다. 도대체 이 게임에서 캐딜락은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

매일경제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 3스테이지는 캐딜락 엘도라도 모델을 탄 채로 진행할 수 있다. 뜬금없는 공룡과 캐딜락의 조합은 어떤 의미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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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소비의 절정을 상징하는 캐딜락과 포스트 아포칼립스

미국 자동차 제조 브랜드인 캐딜락은 1900년대 초부터 마차와 비슷하게 생긴 자동차를 만들던 브랜드였지만, 대개 캐딜락이라고 부르는 이름은 그 회사를 가리키기보다는 캐딜락 회사가 만들어 온 특정한 스타일을 지칭하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 캐딜락 엘도라도 모델이다.

미국식 거대한 차체에 뒤로 길게 빠진 차 후미, 수직으로 상어 지느러미처럼 서 있는 테일램프 등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캐딜락 엘도라도 모델은 캐딜락이라는 이름을 상징하는 스타일이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 럭셔리 카의 대명사로도 여겨졌던 캐딜락은 미국의 경제 호황기라는 부유함의 시대에 부유함의 아이콘으로 기능하던 브랜드였다.

그러나 캐딜락의 전성기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 함께 큰 침체를 맞는다. 캐딜락의 특징이었던 거대한 차체는 당연히 연비 측면에서 대단히 소모적일 수밖에 없었고, 오일쇼크는 가솔린 가격을 몇 배로 뛰게 만들면서 캐딜락과 같은 대형 차종의 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캐딜락은 자사 특유 자원소모적인 대형차 정책을 버리고 좀더 소형의 디자인을 시작했으나 소형차 전문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버텨내기는 어려웠다. 결국 캐딜락은 오일쇼크 이후 자동차계에 대두된 실용성 높은 소형차들에 맹주의 자리를 내어주며 '할아버지들이나 타는 바퀴 달린 소파'라는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된다.

오일쇼크 이전 미국의 황금기를 상징했던 캐딜락은 그래서 석유로 이루어진 근현대 문명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쏟아지는 부는 넘치는 석유 자원을 아낌없이 쓸 수 있는 시대를 구가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자원에 대한 걱정이 없던 황금기는 거대하고 육중한 디자인의 미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모든 화려함이 오일쇼크라는 자원경제의 대격변으로 무너졌다는 점에서 캐딜락은 전성기 산업부흥국 미국을 상징하는 아이콘일 수밖에 없었다.

현대 기계문명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캐딜락은 그래서 포스트아포칼립스 환경을 다루는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에서 찬란했던 기계문명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등장물이 된다. 재미있게도 게임 안에 등장하는 적들은 마치 영화 '매드맥스'에서 본 듯한 폭주족스러운 스타일을 고수하는데, 이들 또한 가솔린 시대로부터 파생된 스타일이라는 점은 캐딜락과 폭주족이라는 대척점을 만들어낸다. 가솔린 시대의 럭셔리로서 존재하는 캐딜락과 동시대의 폭주족 스타일이 대립하는 것이 '캐딜락 앤 다이노소어'의 기본 구도다.

◆복원된 자연의 대척점으로서 의미지어지는 캐딜락과 폭주족들

다시금 공룡이 돌아올 정도로 자연화된 지구 위를 석유문명의 황금기를 구가한 가솔린차가 달리는 장면은 다소 황당한 설정이면서도 동시에 '매드 맥스'가 구현했던, 무너진 가솔린 시대가 품은 과거 영광에의 향수를 상징한다. 오일쇼크로 사라져버린 산업문명의 황금기는 다시금 자연의 복원을 외치는 흐름과 사뭇 충돌하는 하면서도 게임 속 폭주족들과는 달리 친환경을 새롭게 추구해야 할 가치로 내세우며 같은 편에 서도록 한다.

2019년의 캐딜락은 여전히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이지만, 과거와 같이 기름먹는 하마를 주요 콘셉트로 내세우지 않는다. 캐딜락의 차들은 이제 연비에 신경을 쓰며, 환경을 생각하는 이미지 속에 고전적인 브랜드 디자인을 녹여내고자 한다. 환경과 에너지 같은 이슈가 중심이 되는 시대의 럭셔리 브랜드는 환경을 생각한다는 이미지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는 구시대의 워너비로 의미지어지는, 가솔린을 펑펑 태워대는 50년대 캐딜락 모델을 탄 주인공들이 공룡과 환경을 지켜내는 이야기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폭주족이라는 이들을 대척점으로 삼으면서 나름의 설득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제는 거대한 캐딜락 엘도라도 모델도, 거친 폭주족들의 스타일도 힙한 스타일들에 자리를 내주고 역사의 뒤로 물러난 모양새지만, 산업문명이 멸망한 뒤 복구된 대자연에 돌아온 인류를 상징하기에는 또 그만한 아이콘도 없기 때문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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