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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김상욱·유지원의 뉴턴의 아틀리에](15)절대적 기준이 사라진 세상이 현재 우리 인류의 ‘안정된 상태’…물과 얼음의 불연속적 차이처럼 글자의 굵기 따라 성격도 바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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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이

경향신문

몬드리안의 작품 ‘Composition A’(1920년). 현대미술은 재현과는 무관한 미술을 위한 미술을 해냄으로써 상전이의 문턱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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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상전이는 과연?

“유쾌한 사람은 농담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며, 상쾌한 사람은 농담에 웃어줄 줄 알며, 경쾌한 사람은 농담을 멋지게 받아칠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농담의 수위를 높일 줄 안다.” 김소연 시인의 <마음사전>에 나오는 글이다. 모두가 같으면서 다른 ‘쾌(快)’다. 쾌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얼음, 물, 수증기도 모두 같으면서 다른 ‘물’이다.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물의 상태가 차례로 변한다.

얼음은 물이지만 물과 다르다. 생전 처음 얼음을 본 사람은 얼음이 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 것이다. 물리적으로도 이 둘은 다르다. 물은 흘러가지만 얼음은 굴러간다. 물을 설명하는 이론으로부터 얼음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둘 사이에는 물리적으로 불연속적인 변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상전이(phase transition)’라 부른다. 상전이가 일어나면 이전과 이후는 다른 상태가 된다.

20세기 초는 인류 역사의 ‘상전이’

과학기술의 발전은 미술에도 영향


20세기 초는 인류 역사의 상전이라 할 만하다. 19세기 중후반 과학기술의 발전이 세상의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증기기관차는 국가를 마을 하나 크기로 만들었고, 전신기는 거리 자체를 없애버렸다. 뉴욕 전신기사의 저녁은 유럽 전신기사의 새벽이었다.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시차로부터 즉각 느낄 수 있었다. 전등은 도시에서 밤을 몰아냈고, 전동기로 작동하는 승강기는 수십층의 고층빌딩을 가능하게 했다. 끊임없이 열을 내는 방사성물질이 발견되고, 신비한 엑스선은 사람의 내부를 보여줬다. 마술이 일상이 되는 세상이었다.

사진기에 ‘재현’의 역할을 뺏긴 뒤

미술 그 자체를 위한 미술 찾으려

할 수 있는 모든 새로운 시도 거듭


과학기술의 발전은 미술에도 심대한 영향을 줬다. 미술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재현하는 것이다. 미술이 시작된 이유는 기억하고 싶은 대상이나 기억을 간직하려는 충동이 아니었을까. 르네상스를 열었던 서양의 원근법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시도가 정점에 다다른 기술이다. 하지만 사진기가 발명되자 미술의 목표에 문제가 생겼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주는 기계가 있는데 그림을 왜 그려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미술의 상전이, 바로 현대미술의 탄생이다.

미술이 대상의 재현을 포기한다면 이제 미술의 새로운 목적은 무엇이 돼야 할까? 칸트는 인간이 미적 경험을 할 때 그 어떤 목적에도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유희한다고 했다. 실러는 한 걸음 더 나간다. 예술은 그 자체의 목적, 즉 스스로의 완결성 말고 그 어떤 목적과도 결부되어 있지 않다. 미술이 재현을 포기하려고 한 당시의 세상은 바로 자본주의 산업사회다. 인간을 기계 부품으로 만든 분업화된 공장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거다. 미술 자체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재현해야 할 대상이 없다면 그림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것들을 바닥부터 재검토하는 수밖에 없다. 점묘법의 조르주 쇠라는 화면을 ‘점’으로 분해했다. 점은 모든 도형의 근본 요소다. 앙리 마티스는 사물이 가진 성질이 아닌 오직 색채들 사이의 관계만으로 색을 칠한다. 폴 세잔은 모든 사물을 원기둥, 원뿔과 같은 기본 도형으로 구성했다. 파블로 피카소는 원근법을 파괴하고 색채를 무시하고 사물을 기본 도형으로 해체했다. 입체주의의 종착점이자 현대미술의 정점을 찍은 이는 바로 피에트 몬드리안이다.

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캔버스 앞에 앉아있다고 상상해보자. 우리가 재현해야 할 대상이란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사각형의 캔버스다. 사각형은 가로세로 직선으로 이뤄져 있다. 당장은 이것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캔버스에 가로세로 선들을 그리자 단조로운 사각형들이 만들어진다. 변화를 주기 위해 사각형의 크기를 달리해본다. 사각형 내부에 색을 칠한다. 이것 역시 세상과 상관없어야 하기에 색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노랑, 그리고 흰색, 검은색을 칠한다. 이것이야말로 재현과 무관한 미술을 위한 미술이 아닌가. 몬드리안의 1920년작 ‘노랑, 빨강, 검정, 파랑, 회색의 구성’을 보라. 이제 현대미술은 상전이의 문턱을 넘어섰다.

몬드리안의 혁명이 완성되던 시기

물리학 역시 세상의 실재성을 포기


흥미롭게도 현대미술의 상전이가 일어나던 시기에 물리학에서도 상전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마티스가 야수주의를 완성한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이제 시간과 공간은 자연을 기술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관측자에 따라 달라지는 물리량의 지위로 전락했다. 몬드리안의 혁명이 완성되던 시기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공간에 생명을 부여했다.

상전이 이전과 이후는 같지 않다. 미술은 이제 실재하는 세상이라는 절대적 기준 없는 세상에서 미술 그 자체를 위한 미술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가히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라 할 만하다.

물리학은 이미 세상의 실재성을 포기한 지 오래다. 상식적 의미의 인과율이나 결정론은 양자역학의 상전이와 함께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다음 상전이가 오기까지는, 수증기가 되기 전의 물과 같이 이것이 우리의 안정된 상태다. ※ 참고문헌 : 조주연의 <현대미술 강의>(글항아리).

김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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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은 물리학자로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다. KAIST를 졸업하고 독일 막스플랑크 복잡계연구소 연구원을 지냈으며, <김상욱의 양자공부> <김상욱의 과학공부> 등을 펴냈다.


■ 라이트의 우아함과 볼드의 대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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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폰트 디자이너 버튼 하세베가 디자인한 알다(Alda). ⓒ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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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봄이 오면 따뜻해진다. 따뜻하면 경쾌하고 가뿐해진다. 얼음이 녹고 만물의 움직임이 많아지고 우리의 두툼하던 차림새가 가벼워지면서 기분도 산뜻해진다. 온도가 달라지면 열의 양만 차이 나는 것이 아니다. 온도는 속도와 관계가 있다. 분자의 움직임이 빠르고 활발해진다. 분자들의 배열과 거리가 달라지면서, 어느 순간 얼음이 물이 되듯 국면이 완연히 달라진다.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들은 그대로지만, 상태가 달라져 성질도 달라지는 것이다. 이 현상이 ‘상전이’다.

온도와 속도 등 물리량의 변화는

우리의 정서와 기분에도 영향 줘


나아가, 온도와 분자들의 속도라는 물리량의 변화는 우리의 정서와 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17~18세기 이탈리아 작곡가들은 곡을 쓸 때 감정을 먼저 설정한 후에 그 감정을 속도에 실었다. ‘알레그로’는 본래 ‘유쾌하게’나 ‘밝게’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의 일상 용어다. 이 ‘감정 표시’가 빠른 속도에 실리며 지금은 음악의 전문용어로 ‘템포 표시’가 됐다. 속도는 단순한 시간 차이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속도의 국면이 달라짐에 따라 특정 속도만의 감흥을 가진다. 그렇기에 봄에는 어쩐지 밝고 빠른 알레그로가, 가을에는 슬프고 느린 아다지오가 떠오르지 않는가?

음악의 빠르기별 특유의 감흥처럼

폰트도 무게별로 고유한 성격 가져


이런 양상은 폰트에서도 나타난다. 글자 무게에 따른 각 웨이트별 고유한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폰트는 이차원 평면조형이지만 ‘웨이트(weight)’라는 용어를 쓴다. 즉 획의 두께 아닌 글자의 무게로 구분한다. 글자 가족(family)의 구성은 인간 가족의 규모 및 구성원 조합만큼이나 양상이 다양하긴 하지만, 주로 라이트(light), 레귤러(regular), 볼드(bold) 등 세 가지 웨이트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용어만 더, ‘폰트(font)’가 모여 가족을 구성한 것을 ‘타입페이스(typeface)’라 부른다. 여기 소개하는 알다(Alda)체의 경우 ‘알다 라이트 이탤릭’은 ‘폰트’이고, ‘알다’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여섯 가지 폰트를 통칭한 것이 타입페이스다.

볼드는 라이트에 비해 단순히 굵어지거나 무거워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라이트에는 라이트다운 고유 특성이 있고, 볼드에는 볼드만의 특성이 있다. 이름부터가 ‘라이트’는 가늘기보다는 가볍다는 뜻이다. 참고로 ‘씬(thin)’은 극도로 라이트한 웨이트에 쓰는 표현이다. 재미있게도 ‘볼드’는 ‘대담’해서 두드러진다는 뜻이다. 볼드보다 무거워지면 폰트의 성격에 따라 ‘헤비(heavy)’ ‘블랙(black)’ ‘팻(fat)’ 등으로 간다. 라이트는 대체로 우아하고 사뿐한 성격을 가지며, 볼드는 묵직하고 불룩하며 때로는 캐리커처마냥 유머러스하기도 하다.

젊고 재능있는 미국의 폰트 디자이너 버튼 하세베는 웨이트별로 고유한 차이에 주목, 이 차이를 하나의 타입페이스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그 방편으로 그는 물리적인 일상 속 물질의 특성을 탐구했다. 볼드체는 구부러지는 강철밴드의 특성을 관찰하고 응용했다. 획과 세리프가 각지고 뻑뻑하다. 라이트체는 흐물흐물한 고무줄의 특성을 반영해 부드럽고 유연하다(그림 왼쪽 위).

고체와 액체의 상태는 이분법적으로 늘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 또 고체같은 액체, 액체같은 고체 등 고체와 액체의 성질을 모두 가진 물질들이 존재한다. 가령 슬라임이라고도 불리는 플러버는 고체일까, 액체일까? 땅콩버터는 또 어떤가? 뻑뻑한 땅콩버터보다는 꿀이, 꿀보다는 묽은 물이 더 액체처럼 느껴진다. 점성이 달라서 그렇다. 물의 점도는 1cP(점도 단위)인 반면 땅콩버터는 20만cP에 육박한다. 물은 담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흘려 넣기만 하면 쉽게 변형되지만, 땅콩버터를 변형시키는 데에는 물보다 20만배의 힘이 더 든다.

디자이너 하세베, 물질 특성 탐구

하나의 타입페이스 ‘알다’ 변형해

여섯 종 폰트에 각각의 물성 부여


일반적으로 고체는 변형이 어렵고 액체는 변형이 쉽다. 하세베가 선택해 관찰한 강철밴드와 고무줄은 모두 고체지만, 고무줄이 변형하기가 쉽기에 상대적으로 액체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이렇게 볼드와 라이트에 각각의 물성을 부여한 후, 하세베는 알다의 레귤러에도 볼드와 라이트의 중간이 아닌 레귤러답게 견고한 고유성을 세심히 부여했다. 이렇게 세 가지 웨이트 로만체의 특징적인 국면들을 설정한 다음, 역동적인 이탤릭체는 각 웨이트별 고유성을 한층 강화했다. 그 결과 입체적인 구조를 가진 타입페이스 가족이 구성됐다(그림 오른쪽 위). 이 폰트들의 물성에 기반한 디테일은 이제 여섯 종 모두에서 물과 얼음이 다르듯이 상당히 불연속적인 차이가 난다(그림 왼쪽 아래 표시한 부분들 비교).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디테일이 불일치함에도 불구, 이 여섯 종 폰트들을 섞어 쓰면 서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온전한 조화를 이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의 가족인 타입페이스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하세베는 이 어려운 문제를 절묘하게 해결했다(그림 오른쪽 아래). 물과 얼음이 서로 다르게 보여도 같은 물인 것처럼, 알다의 라이트와 볼드는 즐거움을 주는 친근한 외관을 공통되게 지닌다. 그리고 타이포그래피적인 주요 구성성분들만큼은 서로 정교하게 일치시켰다. 비록 서로 다른 물질들의 상태를 참고했지만 타이포그래피적으로는 ‘같은 물질’이 되도록 기술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서로 다른 국면의 라이트도 볼드도 엄연히 하나의 같은 타입페이스 ‘알다’가 될 수 있었다.

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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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원은 타이포그래퍼로 홍익대 겸임교수다. 서울대와 독일 라이프치히 그래픽서적예술대학에서 시각디자인·타이포그래피를 공부했다. 전시, 북디자인, 저술과 번역을 하고 있다.


김상욱·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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